매거진 소소하다

눈 내리는 풍경

FREE STYLE ㅣ 이건우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7-02-13 오후 3.13.00.png 영화인


작가프로필 ㅣ 이건우

저는 영화연출을 전공했고, 영화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영화 매니아는 아닙니다.

오히려 스토리 매니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미지나 캐릭터, 혹은 물음표가 있는 설정 등에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착상되면, 마치 꽃에 물을 주며 어떤 나무로 성장할 지 궁금해하는 것 같이 아이디어를 스토리로 키워나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고작 두달 사이에도 계절은 변한다.

오랜만에 보는 너의 머리도 벌써 이만큼이나 자랐구나.
헤어질때만 해도 듬성듬성 까까머리였던 것이,
어느새 푸릇푸릇한 청년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니,
너의 계절이 변하는 동안 나의 시간은 그저 고집불통이었던 것만 같구나.


너를 만나러 가던 익숙한 그 길을 따라 걸어본다.
황량해보이던 너의 가슴에도 이제는 꽃이, 수많은 꽃들이 피어 있음을 보고
안도감과 함께 내 가슴 한켠에선 질투가 피어나는 걸 부정할 도리가 없다.

이름모를 조그만 벌레들이 그런 나를 조롱이라도 하 듯,
윙윙거리며 내 곁을 따라붙는다.
손으로 훽훽 저어도 포기할줄 모르는 이 아이들과의 싸움은,
지리하고 아무 소득 없던 너와의 싸움을 떠올리게 한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정말 어쩌면,
네가 보낸 숲의 요정일지도 모르는데...
윙윙거리며 반갑다고 인사해주는 걸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저 너무 무례하기만 했구나.


좁은 길을 지나 탁 트인 너의 정원에 들어오자,
기분좋은 봄바람이 불어온다.
눈을 감고 간절히 나는 바란다.
아 바람아, 내 마음 속까지 불어와 이 해묵은 모든 것들을 날려버려주길...

코끝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눈을 뜨니
기적처럼 너의 정원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아니, 올라간다.
하늘로, 하늘로, 높이, 더 높이
땅에서부터 시작된 생명의 씨앗을 품은 채
너의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르는,
그 바람을 타고
나는 삶의 모험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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