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미식회 ㅣ 명월
클로드 아실 드뷔시, 프랑스, 1862-1918.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 중 <조각배>의 선율을 혹시 기억하는가? 이곡은 1960년대 중반에 시작해 70년대까지 장수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전설 따라 삼천리>의 시그널 뮤직이기도 하다. 애초에 4곡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곡이지만 관현악으로 편곡된 버전에 우리는 아마 더 익숙할 것이다. <조각배>를 들으면서 드뷔시의 음악세계를 시작해보자.
드뷔시라는 음악가를 한문장으로 설명하자면 그는 인상주의 회화와 상징주의 시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들로부터 받은 영감을 그만의 스타일로 음악에 반영한 음악가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특히 피아노 곡은 인상주의 작법을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대상이었는데 시기별로 그 표현법이 변화하며 스스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드뷔시의 음악은 처음에는 가벼운 충격을 준다. 모호한 듯 미묘한 화성이 빚어내는 낯선 색채감, 뚜렷한 방향성 대신 정처 없이 부유하는 선율 라인 그리고 한없이 느슨한 가운데 모종의 구심점을 암중모색하는 리듬. 이 같은 음향의 새로운 문법은 듣는 이로 하여금 익숙했던 그간의 음악 구성을 점차 해체시키게 만든다.
그의 음악 어법에는 발생 요인이 있는데, 항상 무언가 서술하거나 감정의 주관 표출에 초점을 맞추었던 19세기 낭만 어법을 향한 반감, 장황하고 지리멸렬한 바그너의 독일식 수사학에 대한 염증, 당시 프랑스 예술계에 풍미했던 인상주의 회화와 상징주의 시인들의 작품으로부터 받은 지대한 영향이 그것이다. 이 모든 요소들의 상호 협력 작용이 그의 작품 스타일 탄생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드뷔시라는 작곡가의 특별한 재능이 전제된다. 새로운 음악 어법의 창시자 드뷔시는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창의적 천재다.
그에게 영향을 미친 인상주의 화가의 대표주자는 마네와 모네, 르누아르 등이다. 이들은 그때까지의 그림이 '주제의 표현'에 역점을 둔 것과 달리 '그려지는 방식'을 우선시했다. 그것도 오브제가 화가의 눈에 포착된 바로 그 순간의 인상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 같은 즉물성과 반복 가능하지 않은 순간의 기록은 드뷔시의 음악에도 진한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드뷔시가 더욱 깊이 천착했던 것은 바로 상징주의 시인들의 작품이었다.
상징주의는 19세기 중 후반 프랑스의 시인들 사이에 퍼진 일종의 '문학적 인상주의'이다. 형식에 얽메이고 서술적이었던 고답파(진실에서 동떨어진 낡은 세계의 인식 방법을 따르는) 창작 태도를 일거에 내던진 보들레르, 랭보를 비롯해 말라르메, 베를렌 등을 거쳐 20세기의 폴 발레리에 이르기까지 순수한 언어 예술로서의 시를 추구했던 일대 혁신의 시 정신이다. 그들은 언어가 가지고 있는 환기력을 활용해 일상의 표피적 세계에선 파악할 수 없는 느낌, 감정, 심리 상태를 총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는 일찍이 보들레르가 사용했던 열려 있는, 즉 애매한 상징 언어들을 통해 보이는 것 속의 안 보이는 것들을 보게 하며 그것들이 연상시키는 냄새와 소리까지도 느끼게 만드는 복합적인 발상에 근거한다. 이 '공감각'을 추구할 때 시인들은 현실보다는 내면의 풍경에 더 끌리고 익숙한 것들보다는 이국적이고 신기한 것들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렇게 채택된 소재들은 실체를 잡을 수 없고 정의하기 힘든 부류의 언어들을 통해 얼핏 막연한 듯하지만 내부의 질서가 뚜렷한 순수 음악의 상태를 지향하는 모습을 띄게 된다. 드뷔시가 일군의 상징주의 시인들로부터 얻은 영감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드뷔시는 주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작품들을 통해 인상주의 작법을 시도했다. 단일 악기나 제한된 성부들만으로는 효과적인 표현이 힘들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피아노 음악은 작곡가의 대표적 장르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 SPO,글_김순배.참고>
_드뷔시의 생애_
드뷔시 그가 태어날 당시 파리는 인상주의 운동이 시작되려 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양친은 도기상을 경영했고, 드뷔시는 맏아들로 남녀 4명의 동생이 있었다.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으며 아버지는 자주 직업을 바꾸고 이사를 다녔다. 두 여동생은 칸의 백모의 집에 맡겨 두었는데 어린 드뷔시는 이 백모를 찾아가는 것이 큰 기쁨이었고, 피아노의 기초도 여기서 배우기 시작했다.
우연히 시인 베를렌의 이모가 되는 모테 부인에게 음악의 재능을 인정받은 것이 그가 음악가가 되는 계기였다. 아마추어이면서도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모테는 무상으로 레슨을 맡았으며, 드뷔시가 10세가 되는 해엔 파리 음악원에 입학이 허가되는데, 이윽고 그의 관심은 피아노에서 작곡으로 옮겨 가게 된다.
드뷔시의 가곡에는 베를렌의 시에 의한 것이 매우 많다. 베를렌에 대한 경도가 이윽고 상징파 문인들과 접촉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는 말라르메의 <화요일 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에서 착상을 얻어 32세에 완성했는데 초연은 대호평이었다. 이 불후의 명작은 드뷔시가 장기간 탐구해온 독자적인 어법의 결정으로 이미 구상하고 있었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완성에 대한 커다란 자신감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이듬해 1895, 그가 33세에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오페라의 구상은 다듬어졌으나 완성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그는 3곡의 <녹턴>, <빌리티스의 노래>가 잇달아 완성되면서 그의 악풍은 점점 더 다듬어져 갔다. 주로 피아노 교수의 수입에 의존했기에 생활은 매우 궁핍했으나, 1898 36세에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상연 결정의 낭보가 전해져 마지막 완성 단계에 들어갔다. 이듬해 릴리 테크시에와 결혼, 가난하지만 충실한 생활을 그는 시작한다.
그로부터 3년 후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겨우 완성, 초연되었다. 완전히 반 바그너적인, 즉 반 독일적인 오페라의 상연은 찬반 양론을 일으켜, 위고의 <에르나니> 초연을 연상케 했는데 상연을 거듭할 때마다 그 성공을 확고히 해 나갔다. 이는 1904년 그가 41세 때의 일이다.
그러나 그의 반드시 행복하지는 않았다. 미성의 유뷰녀 에마와의 연애로 인해 아내 릴리와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사건으로 많은 친구들고 그를 떠나 드뷔시의 마음은 고독의 그림자로 드리운다. 이 분위기는 에마와의 사이에 둔 딸을 위한 <어린이의 세계>독주곡에서조차 묻어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유 자재의 작품을 전개해 갔다. 신비극 <성 세바스티앙의 순교>_성악곡(1911)가 그 첫번째 작품이었는데 발레 <유희>의 초연(1913)은 실패였다.
그리고 이 해에 친구인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관현악곡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등, 이미 새로운 음악이 격력하게 태동하고 있었다. 대가 드뷔시의 명성은 확고부동했으나 그의 육체는 이미 암에 결렸으며, 또한 세계대전의 발발은 그의 애국심을 괴롭혔다. 1915해, 그의 나의 53세에 수술을 받고 기력이 쇠하여진 그는 남은 기력을 모아 프랑스 전통에 의한 곡 6곡의 소나타 작곡을 결심했으나 셋째 곡인 바이올린 소나타(1917)을 써 냈을 때는 이미 기력이 쇠진했다. 1918년, 그의 병상은 극도로 나빠지고 3월 25일 독일문의 포성이 멀리서 울리는 가운데 파리의 자택에서 56세의 생애를 조용히 마쳤다.
드뷔시를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음악 표현의 본질적인 변혁을 일으킨 음악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른바 인상주의의 음악의 시조인 드뷔시는 독일 음악가 바그너로 대표되는 무르익은 후기 낭만파 음악에의 가장 용감한 도전자였다. 그의 음악이 근대 음악 사상에 이룩한 획기적인 역할은 인상주의 회화와 마찬가지로 서양 음악의 표현 능력을 밑바닥에서 변혁하는 것이었다. 특히 동양적인 음감의 적극적인 섭취는 주목해야한다. 그의 영향을 받은 음악가는 수없이 많지만 그 직접의 정신적 후계자를 찾아내는 일은 매우 어렵다.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한 세계사의 커다란 변모가 드뷔시를 고립시키고 말았다고도 할 수 있다.
<최신명곡해설, 클래식 명곡해설 작곡가편 참고>
_모더니즘의 새벽을 열었던, 상징주의에 동화된 드뷔시_
드뷔시의 음악의 입구에는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 가 있다. 말라르메(1842-1898)는 베를린, 랭보와 아울러 프랑스 상징파의 시조의 아들로서 16세에 시를 시작했는데 특히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강한 영향을 받았던 시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19세기 말엽 프랑스 시단의 기운은 유물론, 자연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징을 사용하여 개인의 사상과 감정을 환기하거나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이념세계를 암시하려는 문학운동인 상징주의로 모아지고 있었다. 이는 비주류 인상주의 화가들이 대세로 자리잡아가던 상황과 궤를 같이 함으로써 19세기 말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과 인상주의 화가의 만남은 필연적이었다.
문학사가 귀스티브 랑송(1857-1934)은 <불문학사> 라는 유명한 저작에서 상징주의 문학 특히 시에 관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
"이 새로운 시상은 전통적인 문장구성법과 작시법에 만족하지 않았다. 상징주의자들은 표현의 규격화를 지향하는 모든 일반 법칙에 이 시상을 해방하여 표현을 더욱 개인화하려고 시도했다. 실제로 만인에게 이해될 수 있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낱말을 논리에 따라 모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직 시인에게 지각된 인상을 표현하기 위해 낱말을 감각에 따라서 모으는 것이 문제였다."
말라르메는 더욱 과감하여져서 고전과 낭만의 산물인 연극성을 아예 팽개친 채 오로지 한 편의 긴 시로 <목신의 독백> 을 개작한다. 그것이 바로 1876년애 195부 한정판으로 만들어졌던 시집 <목신의 오후>이다. 그 시집 곳곳에 삽화를 그린 화가는 당연 마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됐는가? 상징과 인상이 하나로 조응하는 이 한 편의 장시에서 '지시적 의미' 라는 역할을 오래도록 수행해왔던 일상 언어는 증발한다. 그 언어들의 체계적 집합인 '논리적 증명'도 사라진다. 대신 랑송이 지적했던 것처럼 '시인의 감각'에 의해 다시 태어난 언어들이 그 시인이 '지각한 인상'을 그려낸다.
<목신의 오후>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해보면,
대강의 줄거리는 어맇다.
숲이 무성한 대지 언덕 위 빈인반수의 목신이 어느 무더운 여름날 오후 잠에서 깨어 하얀 살결과 금빛 머릿결의 물의 요정들과 만났던 일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목욕을 한 것이 백조의 무리인가, 아니면 백합곷이 핀 것일까. 이같은 생각으로 멍하게 생각을 더듬는다. 몽롱한 육감, 관능적인 희열. 얼마 후 회상의 요정은 사라지고, 온화한 날씨에 싱그러운 풀의 향기가 감도는 고요한 오후 목신은 다시 잠에 빠져든다. 갑자기 그는 숲속의 웅성거림을 느끼고 다가오는 물의 요정들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지만 의식한 요정들은 놀라 달아나고 홀로 남은 목신은 환영을 쫓는다.
(장르:발레, 음악:드뷔시, 대본:로빈스, 초연안무:니진스키, 초연일:1912, 초연장소:파리 샤트레극장)
이 작품에서 묘사된 것은 님프의 장밋빛 육체를 꿈도 현실도 아닌 상태에서 영원시 사모하는 목신의 관능적인 세계이다. 이 목신의 관능적인 세계가 인간의 육욕을 상징하는 것인지, 또는 이러한 욕망도 한낱 일장춘몽에 불과하다는 허무의 표현인지, 이해 관해 독자들의 상상력은 여러모로 자극받게 될 것이다. 시칠리아 열사의 해안을 배경으로 하여, 인상파적인 풍경속으로 환상처럼 떠오르는 목신의 모습에서 가장 순수한 하나의 미의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아, 뉘우친다 해도 쓸데없구나!
어느 날엔가 다른 님프들이 행복을 향해
내 이마 모서리에 그 여인들의 머리카락을 매고서 데려가리라
나의 정열이여, 빨갛게 익은
석류 알맹이는 터져, 꿀벌의 날개짓이 윙윙거리는 소리
욕망을 영원한 꿀벌 둥지에 흡수시켜 흘러가느니......"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참고>
난해하다. 그렇지만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분명히 있다. 일상적인 소통으로 수렴되는 메시지의 전달 대신, 어떤 비의적인 속삭임과 몽환적인 이미지가 펼쳐진다.
"존재하는 모든 것과 의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의 궁극적 실체, 즉 영혼을 해방시키고자 한다면, 또 사물의 영혼을 드러낼 모든 상징을 충심으로 기다리면, 수많은 짐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문학이 마침내 자유를 얻어 진정한 언어를 얻게 되리라."
-스테판 말라르메
시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아니다, 하지만, 언어가
부재하는 나의 영혼, 무거워진 육체는 정오의 씩씩한 침묵 앞에 결국 쓰러진다.
이제 그만하고, 불경한 생각을 잊은 채,
목마른 모래 위에 잠들어야 한다
아, 포도주의 효혐 좋은 별들에게
입술을 여는 것은 이리도 좋은가!
한 짝의 수정들이여 안녕히! 나는 그대가 둔갑한 그림자를 보리라.
이 장면은 머잖아 다가올 모더니즘의 초입이다. 마침내 세계는 질적인 고유성을 상실하고 자아 속으로 흡수된다. 이제 세계는 나의 욕망, 혹은 꿈으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드뷔시는 바로 이 상징주의 시에서 모티브를 얻어 인상주의 풍의 에로티시즘을 음악으로 구현한다. 그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애 대해 "말라메르의 시를 극히 자유롭게 회화화한 것이다. 목신의 갖가지 욕망과 꿈이 오후의 열기 속을 헤맨다"고 말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목신은 요정의 자태를 뒤쫓다가 잠들지만 음악은 오히려 깨어난다는 점이다. 드뷔시의 음악을 가장 분석적으로 해석하는 지휘자로 평가받는 피에르 블뤠즈1925- 는 "현대시가 보들레르에게서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것처럼, 현대음악은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고 했다고 한다. 음악사에서는 그렇게 드뷔시라는 음악가를 통해 모더니즘아라는 장이 열린 것이다.
참고하자면, 모더니즘은 기존의 리얼리즘과 합리적인 기성 도덕, 전통적인 신념 등을 일체 부정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 도시 문명이 가져다 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 등에 기반을 둔 다양한 문예사조를 말한다. 기존의 사회질서, 종교, 도덕의 전통을 밑받침하고 있던 확실성에 대해 회의를 품은 니체의 허무주의, 마르크스의 유물사관과 혁명이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의 선구적 사상들이 이미 그토대를 마련해놓았으며, 세계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황폐화시킨 제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크게 성행했다.
모더니즘은 다양한 양상으로 세계 여러지역에서 전개되었는데, 표현주의, 미래파,이미지즘, 다다이즘, 주지주의 등이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드뷔시가 상징주의적이며 인상주의적이었던 성향은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드뷔시는 바그너 숭배자였다. 그가 22세 때 1884년, 로마대상을 받고 이듬해 이탈리아로 떠났을 때만 해도 그는 바그너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나 다시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말라르메가 자신의 집에서 주최했던 '화요회'에 참석하면서 상징주의와 인상주의에 동화되어간다. 드뷔시는 그렇게 후배 작곡가들과 교류하면서 바그너와는 점차 멀어진다. 물론 그것을 개인의 자각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그너의 블록보스터적 추구에 대한 염증은 당시 프랑스 음악계에서 점점 강하게 번져가던 흐름이었으며, 드뷔시는 바로 그 흐름 속에 있었던 것이다.
베토벤으로부터 막을 올린 독일 낭만주의는 오래도록 유럽음악의 대세였으며, 그 핵심은 선율로 빚어내는 서정성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직진하는, 동기와 주제가 변화, 발전해 마침내 종지에 다다르는 기승전결의 진행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해온 음악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감수성의 변화는 시작되고 있었다. 아도르노가 말했듯이 예술가는 스스로 고립되는 경향을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감수성과 마주하기 마련일 것이고, 결국 드뷔시에게 던져진 숙제는 낭만적 선율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상징주의 시인들이 언어의 지시적 일상성에서 탈피해 새로운 울림과 뉘앙스를 창조했던 것처럼, 인상주의 화가들이 순간의 느낌으로 재구성된 풍경을 화폭 위에 펼쳤던 것처럼, 드뷔시는 마침내 색채와 이미지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 탈출은 아직 완전하지 못했다. 드뷔시의 음악은 여전히 선율의 뒷맛을 남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뷔시는 쉽지 않은 첫걸음을 뗀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크 이후부터 음악을 지배해온 기능화성, 곧 조성음악의 기본적 뼈대로 대대로 기능해온 그것과 결별했다. 으뜸, 딸림과 버금딸림으로 음악의 시간적 진행을 구축했던 수사법은 드뷔시에 이르러 마침내 낡은 것으로 인식되면서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자리를 내줘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 들었던 <조각배>를 작곡할 때만 해도 드뷔시는 선율과 충분히 결별하지 못했음을 느낄 수 있다. 1888년부터 2년간 작곡된 이 곡에서 선율은 여전히 중요한 뼈대로 기능한다. 종결부에서 드러나는 바그너적인 느낌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상태이다. 그렇더라도 <조각배>의 매혹적인 분산 화음은 누가 보더라도 드뷔시의 독창성이다. 물결이 번지는 듯한, 또는 도화지에 잉크가 퍼지는 듯한 드뷔시 특유의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지휘자 불레즈가 "현대음악의 여명"으로 자리매김했던 <목신 오후에의 전주곡>은 그보다 약 4년 뒤인 1892-1894년에 작곡된다. 문을 여는 악기는 이번에도 플루트다. 아지랑이처럼 아련하게 흔들리는 황홀한 주제가 흘러나온다. 이어지는 소리의 향연은 회화에 가깝다. 조성과 리듬의 규칙성이 깨어지면서 꿈속에서 본 것 같은 낯선 화폭 속으로 듣는 이를 끌어들인다. 이 노래가 어떻게 어디서 끝날지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렵다. 기승전결의 기능주의적 완결성을 거부하는 모더니즘의 얼굴이 그렇게 드러난다.
현대적 회화성은 1903-1905년에 작곡된 <바다>에서 더 분명해지는데, 그는 아예 이 작품을 '관현악을 위한 3개의 교향적 소묘'라는 부제를 붙였다. 아울러 첫 악장을 <바다 위의 새벽부터 정오까지> 2악장을 <파도의 희롱> 3악장을 <바람과 바다의 대화>라고 이름을 붙였다. 드뷔시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곡은 바다 그 자체를 오선지에 옮겨놓은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드뷔시는 "바다의 술렁거림, 바다와 하늘을 가르는 곡선, 잎사귀를 스치는 바람소리, 새들의 울음소리"에 주목한다. 그것은 "이쪽의 생각과 아무 관계없이 음악으로 펼쳐들어오는 것"이다. 드뷔시는 그렇게 바다를 "스스로 자신의 화성을 담고 있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 음악은 주체의 감각으로 선택한 순간적이고 인상적인 '풍경의 발견'을 뛰어넘어, 또 다른 차원의 회화성을 성취한다. 드뷔시는 이렇게 그의 곡 <바다>에서 '바다 그 자체'의 시간 속으로 성큼 걸어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음악은 드뷔시와 함께 20세기 속으로 들어선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문학수 참고>
드뷔시는 감각과 직관이 마주보며 지르는 탄성을 목도한 음악가가 아니었을까 싶다. 충일한 관찰 속에서 그의 감각은 순간의 직관과 만나 예술은 그 자신을 뛰어 넘는 주체로 서게 된다. 나에게 있어서 드뷔시의 음악은 그냥 거의 완전히 편안하게 느껴진다. 마치 내가 물로서 같은 결로 출렁이는 또다른 물을 만난 기분, 심지어 온도도 거의 흡사해 합쳐지는 순간을 나조차 모를듯이.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조금 더 성찰을 거쳐야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더니즘의 새벽을 연 드뷔시를 살짝 엿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여전히 국가나 사회가 요구하는 어떠한 목적이나 기능이 그 무엇보다도 어쩌면 한 사람의 인간됨보다도 더 중요시 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당시 모더니즘의 문을 연 드뷔시의 반항은 어떤 의미를 주는가였다. 나아가 지시적이고 결과적이며 직선적인 사고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 터전에서 '주제의 표현됨'보다 '방식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승전결을 느낄 수 있는 선율의 진행을 굳이 벗어나려했던 드뷔시의 음악 어법이 주는 철학적 의의는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순간의 포착, 그러니까 다시는 같은 순간을 반복할 수 없는 그런 예술을 추구한 그의 인생관이 궁금해졌다.
시간과 목적에 따라 한 방향으로 인생이 직진한다고 믿는 자에게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자 결과 혹은 미래를 위한 발판 정도일 수 있다. 물론 결과론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수긍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하루하루가 과연 정말로 그러한가 볼 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에게 던져진 현재만을 직면하고 있고, 계속해서 현재에서만 실존하고 있는 것이 우리 생의 좌표다. 우리에게 있어서 인생은 현재의 연속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을 뿐이다. 그 현재들이 출렁일 때 우리의 인생은 위태로울지언정 극히 인간다움을 뿜는 아름다운 미가 되어 흐른다. 우리는 과거에 의해 살지 않는다. 또한 미래를 위해 살지도 않는다. 우리의 생은 과거의 종속도 미래의 필요도 아니다. 우리는 현재 그저 살아 있다.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를 들었을 때 엷게 든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아라베스크 문양은 참으로 우리의 생을 닮아있다.
현대 예술의 난해함이나 기괴함이 나는 늘 낯설었는데, 드뷔시를 얼핏이나마 엿보고 나니 그가 열어준 현대 음악의 세계가 왠지 나의 세계 같은, 낯섬을 끌어 안은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나아가 과거 상징주의 문학의 탄생에 박수를 보내며 ,그 귀한 역사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저마다의 현재에서,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면서 나의 나됨을 만나는 고요한 시간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