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연애 ㅣ 변채림
대학 때는 일본어랑 미술사를 전공했는데, 교양으로 들었던 건축사가 너무 즐거워서 흔한 건물덕후가 되었습니다.
건축이라는 건 위대한 인류가 일궈나가는, 장대한 역사의 배경..일 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건물을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는 인간에게는 다른 어떤 예술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작가 프로필 ㅣ 변채림
해가 중천에 뜨면 나가서 맥주를 마시고 공원이나 도시에서 광합성을 하는 게 제일 좋아하는 일과입니다. 햇수로 5년 차 인스타그래머로, 글보다는 사진으로 일기를 씁니다. 호주 멜번으로 이사온지 10년이 좀 넘었고 작년 초에 호주 여권을 받았는데도 영어는 여전히 삶의 장애물입니다. 미래에는 소박하게 사회에서 한 사람 몫을, 구실을, 제대로, 하는 게 꿈인 것 같습니다. 사회가 제시하는 고정관념을 나도 모르게 체화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종로에서 팔 년을 살았다. 더 어릴 때의 기억은 또렷하지 않기 때문에 종로는 내 마음의 '고향'을맡고 있다. 드문드문 한국에 돌아가 고향을 비로소 실감하는 것은 낡은 낙원상가나 종로경찰서, 교보빌딩, 일본문화원 같은 사소하고 희끄무레한 얼굴들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작년 초에 기억을 따라 걸었던 그곳에는 초면인 가게들이 즐비했다. 내가 추억하는 고향은 시대의 흐름을 제 때 타지 못한 나머지 서울답지 않게 퀴퀴한 모습인데 이제는 그 봉건주의적 낡음 위에 21세기적 자본주의를 집요하게 두른 어엿한 모습이었다. 소박한 간판과 인테리어가 적절하게 촌스러운 카페에서는 핸드드립 커피를 팔거나 무명 예술가들의 수제 상품을 팔거나 했다. 마지막 방문 이후 단지 몇 년 밖에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 북촌은 고여있던 시간을 따라잡듯 삼켜버렸다. 물론 고향의 변모가 안타깝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안부를 묻지 않은 친구를 다시 만날 때처럼 설렘도 컸다. 낯선 카페 앞에는 그래도 내가 기억하는 정갈한 보도가 여전했고 멀리 작게 보이는 종로타워의 새 천년스러운 얼굴이 새삼 무척이나 반가운 하루였다.
그 반가운 고향에 머무는 동안, 어느새 나의 집이 된 멜번이 그립기도 했다. 근 십 년을 살고 있는 이 도시를 빼고 마음의 '집'으로 삼을 곳은 이제 없다. 멜버른의 낡음과 새로움이 적절하게 섞인 모양새는 심미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만족스럽기 때문에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도시의 이상향은 멜번을 많이 닮았다. 하지만 누군가 이곳을 고향으로 여기던 사람이 한참만에 다시 방문한다면 본인의 기억과 다름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시 전망대가 있는 91층 아파트가 시내 강변에 추가된 건 불과 십 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 강변에서 대도시의 자본을 뽐내는 카지노 몰이나 강 건너 연방 광장도 그즈음 자리를 잡았다. 광장의 현대적인 조형이 너무 현대적이어서 일부 시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글로 읽어서이지 시민들의 적대적인 공기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눈감고도 그리는 내 도시의 어여쁜 모습은 사실 밀레니엄식으로 새 단장한 얼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멜번만큼이나 북촌도 못 본 사이 아주 변해 있었지만 재회의 설렘이 컸던 것은 예상치 못한 변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령 1999년에 완공된 종로타워는 종로의 낮은 스카이라인을 뚫고 계동 교실에 앉은 내게도 보였다. 그 건물 한 채가 북촌의 변화에 지대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열서넛의 나에게도 낡음 사이를 비집고 오묘한 모양새의 21세기가 보였음은 물론이고 모든 어른들이 한 마디씩 코멘트하는 탓에 내게도 그 최신식 건물의 존재감과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물론 공간의 변화는 대개의 경우 사사롭고 자연스럽기에, 여기 있던 건물이 그새 어디 갔지? 여기 이게 언제부터 있었지? 하는 당혹감으로 찾아올 때가 많다. 저번 주 개장한 집 앞 기차역은 교통체증을 완화하기 위해 100미터 정도 이사를 갔다. 역사 이동을 안내하는 표지판 없이 초연히 손님을 맞는 뻔뻔함에 당황한 것은 단 며칠뿐이다. 벌써 새 일상이 된 역사의 계단을 아침저녁으로 오르내리며 그 자연스러움에 감탄한다. 공간의 변화는 이처럼 사사롭게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종로타워 같은 건물이 생겨 종로통의 중학생에게도 21세기의 도래를 시각적으로 일깨워 준다던지, 기찻길이 살짝 옮겨진다던지 하는 사사로움들이 축적되어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누군가에게는 큰 변화로 다가오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변화’라는 단어는 양가적인 이미지를 지닌다. 특히 ‘고향’이나 ‘집’이라는 키워드에 대입해 봤을 때, 변화라는 말은 즉각 우려 혹은 기대라는 사뭇 다른 두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요즘 멜번은 주택가고 시내 한복판이고 건물 공사가 심심치 않다. 속도가 빨라진 것인지 단순히 내가 변화에 예민해진 것인지, 그 어느 쪽이든 변화는 점점 더 확연하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차곡차곡 쌓인 변화를 되짚어보고는 낯설게 느낄까. 글쎄, 내 집의 변화에는 우려보다 기대가 앞선다. 멜버른은 오래된 것을 치워야 할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도시를 계획하는 정부는 대중의 편의와 타협하는 선에서 낡음에 대한 존중을 추구한다. 합리성에 기반한 고집은 근미래에 사용자의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내 고향의 새로운 모습이 일면 낯설지만 설레었던 만큼 내 집의 변화가 벌써부터 반가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