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STYLE ㅣ 한공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에서는 '힐링'이 트렌드가 되었다. 다양한 힐링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쫒아다니고 있다. 나 역시도 돈을 아끼지 않으며 이것저것 힐링 콘텐츠들을 경험해 보았다.
테마여행, 요가원, 책, 영화, 음식, 힐링카페, 마사지센터, 테마파크, 팟캐스트, 전시 등등 서슴없이 '힐링'이란 단어를 앞에 붙인 콘텐츠들. 과연 정말 난 힐링을 받았을까?
내가 이렇게 '힐링'에 집착하는 이유는 30년 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삶의 경험이 나를 병들게 했다...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 3때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학원-독서실을 전전긍긍하며 좁은 닭장 속에서 살았다. 대학을 가면서 유통기한이 만료된 알루미늄 캔을 따고 뛰쳐나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 캔은 크기가 생각보다 거대해 이 나라 전체를 덮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경험했던 힐링콘텐츠들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이었다. 트렌드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힐링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그들은 정작 힐링의 본질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국내에서 경험한 최고의 힐링콘텐츠라 강추하고 싶은 것은 <어둠속의 대화> 이다. (이 콘텐츠에 대한 설명은 스포가 될 것 같아 참겠다. 아무 정보없이 그냥 체험하는 것을 추천한다)
자 그럼 '힐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피톤치드가 팡팡 나오는 녹색 숲?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있는 음식? 백사장과 에메랄드 빛 바다가?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시원한 마사지? 아니면 요가? 명상? 다도? 그것도 아니면 종교적 치유?
난 힐링의 본질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봤다. 일단 사전적 의미부터 보자.
Healing: 치유
간단하다.
치유라. 그럼 힐링을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럼 어떤? 병이 들었는가...부터 따져봐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고통을 겪고 상처를 받는다. 우리가 아이일 때는 조갯살 같은 보드라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삶의 다양한 경험으로 인해 그곳엔 깊은 스크래치를 남겨졌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뽀송뽀송한 마음이 너덜너덜해 졌다. 제각각의 삶은 제각각의 고통이고 제각각의 트라우마겠지만 신기하게도 우린 공통적인 병과 공통적인 증상이 있다.
그건 우리가 공통적인 환경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린 같은 병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현대사회에 살면 누구나 걸리는 병이 있다.
특히 한국인들이 유독 심하게 걸리는 병이다.
난 그 병의 이름을 <대상병>이라 부른다.
<대상병>에 걸리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늘 소외된 기분이 들고 우울증과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하고 몸도 자주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에 깔려있는 기분이랄까? 가끔 이 병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자주 있다. 내가 살아있는 생명인지 죽어있는 물건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고싶어서 폭음이나 폭연, 섹스등 극도의 쾌락에 몰입해보기도 하지만 금새 허무해지고 원상태로 돌아온다. 주변인에게 그 고통을 호소해봤자 소용이 없다. 누구나 똑같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우리가 <대상병>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간단하다. 우리가 살아온 방식 때문이다. 고도 자본주의에 살아가면서 우리의 중심이 '인간'에서 '물질'로 대체되었다. 어릴 적부터 '성공을 하고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주입받고 타인과 경쟁하며 살아왔다. 세상에 난 유치원 때부터 타인과 경쟁했다. 자본주의 사회를 탓하고 싶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우린 인간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다. '인권' '소통' '다양성' '민주주의' '생명' '환경' '관용' '지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아야 될 소중한 가치들을 교육받지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살아왔다. 잠깐! 그럼 도대체 우린 뭘 배우며 살아온걸까? 도대체 왜 사는걸까?
그 결과 우린 모두 '대상병'에 걸리고 말았다. '대상병'이란 우주의 모든 것을 '대상(對象)'으로 인식하는 병이다. 대할 대, 형상 상. 영어로는 Object, Target. 대상병에 걸리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도구로 인식한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생명과 만족을 유지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대상병에 걸리면 누구하고도 소통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하고도 말이다. 대상병 환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킨다. 그래서 모두가 소외되는 것이다. 사랑받고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득하나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면 사랑은 소통을 통과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린 너무도 쉽게 매우 딱딱해지고 말라버렸다. 아니 그런 껍질에 갇혀버렸다. 우린 쉽게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모두가 이기적이어서 그것이 별로 흠이 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있다. 그저 내가 더 잘났어, 내가 더 행복해~외치듯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음식사진, 명품 브랜드, 운동으로 다져진 몸, 섹시한 몸 사진을 올리며 스왝을 날린다. 어느 새 '탐욕'이 이 나라의 트렌드가 되어버렸다. 모두가 당연히 그래서 그것이 별로 흠이 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있다. 그리고 이기주의는 악순환으로 돌아간다. 온갖 다양한 차별이 횡행하고 갑질을 당한 자는 자기보다 연약한 자에게 분풀이를 하듯 또 갑질을 한다. 어느 새 이곳은 정글이 되어버렸다. 물론 다양한 공동체가 존재하지만 공동체의 초목적은 언제나 구성원들의 이익이다. 집단이기주의는 개인이기주의로 이어진다. 이제 가족도 해체되어버린다. 그래서 가족에게도 쉽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된다. 각자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거짓된 미덕하에 우린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친구는 말할 것도 없다. 아무도 나를 도울 수 없다...는 믿음이 견고해지고 그 프레임에 갇혀버리고 결국 곤경에 빠졌을 때 쉽게 자살을 고려한다. 대한민국이 자살율 1위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모두가 고립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린 힐링을 원한다. 날 가둔 딱딱한 프레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조그만한 숨쉴 틈이라도 찾길 원한다. 그래서 탁 트인 공간이나 도시를 벗어난 자연, 일상에서의 탈출, 낯선 경험을 원한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했다고 쉽게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프레임을 단단히 붙잡아 고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가 탐욕적으로 힐링을 바랄 때 그 프레임은 더 단단히 조여온다. 탐욕은 프레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나의 만족에 집착할 수록 내 삶을 소유하려 할 수록...소통을 거부하게 되고 이기심에 충만해 진다. 그래도 "아~ 나 힐링받았어~"외치며 자기 위로를 한다.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미처버릴지 모르니까. 과연 정말 우리는 진정한 힐링을 받은 것일까?
다양한 힐링 콘텐츠를 쫓아다니느라 바쁜 사람들에게 자유함을 주고싶다.
진짜 힐링 받는 노하우를 알려주겠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대상병에서 낫는 법은 무척 간단하다.
그냥 거꾸로 가면 된다.
대상의 반대말은?
상대이다.
상대(相對)의 상자는 대상의 상자와 다르다. 상대의 상자는 서로 상이다.
그래서 결혼대상이란 말은 잘못된 말이다. 결혼이란 서로 함께하는 것이고 목적이 될 수 없다.
원리상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도달하는 과정이다.
아직 누군가와 소통을 통해 연애도 하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며 대상자를 고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결혼하기 위해서는 대상병에서 나아야하며 대상병이 낫기 위해서는 소통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인간은 목적을 떠나 존재 자체로 누구나 소중하고 아름답다.
신의 피조물이기에 내가 감히 가치를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내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대상병에 걸린 사람은 자기 자신과도 소통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평생 모른 채 죽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껍데기로 살아가는 것이고 주변인을 볼 때도 껍데기만 보고 그것에만 집착하게 된다.
상대하면 된다.
세상 모두와 상대하다보면 소통하는 행위가 자연스러워지고 대상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 프레임이 어느새 스르르 녹아내리면서 점점 자유해진다.
힐링의 본질은 소통이다.
먼저 내 자신과 소통하고
내 주변인과 소통하고
우주 전체와 소통하면서
어느 새 우주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사실 난 우주의 일부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사실은 변함없다.
내가 인정하는 일만 남았다.
난 우주를 소유할 수 없다. 그저 우주와 소통할 수 있다.
소통은 인류 최고의 이데아, 사랑의 본질적인 방법이다.
신은 우리가 신과 소통하면서 동시에 이웃과 소통하길 바란다.
하지만 소통은 쉽지 않다. 무지 어렵다.
왜 소통이 힘든걸까?
그건 탐욕 때문이다.
탐욕은 모든 존재의 원초적 본능이요 중력이다.
탐욕이 커질 수록 점점 짓눌려지며 프레임이 점점 옥죄어온다.
우주적 존재가 소주잔만한 프레임에 갇혀버린다.
그 어려운 것을 해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난 이부분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고민해보았다.
첫째, 사람이랑 대화할 때 눈을 보며 말하기
나의 이탈리아 친구는 항상 눈빛으로 말한다. 언젠가 그가 전화로 나의 눈빛과 눈동자 색깔을 기억한다는 말에 놀랐다. 그는 실제로 주변 지인들의 눈동자 모양과 색을 모조리 기억한다. 그만큼 눈으로 하는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왜 그러냐 물었더니 눈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실제로 거짓말을 할 때 상대방 눈을 피하게 된다. 그리고 뭔가 부끄러운 일을 했을 때 타인의 눈을 보지 못한다. 타인의 눈을 보려면 우선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양심에 걸릴만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해보면 많은 한국인들이 눈을 보며 대화하지 못하는 원인이 단지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닐까? 자존감이 낮은 이유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런 생각은 잘못된 사회 통념과 비교의식에서 만들어졌다. 우린 모두 있는 그대로 위대한 존재이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건 내가 무엇을 가졌건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일단 타인의 눈을 보려면 먼저 자신과 소통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많이 사랑해줘야 한다.
둘째, 인문학적 경험
중고생 '동아리' 특기 적성 선생님을 하고있다. 학생들은 여전히 공부와 시험 걱정하느라 인문학적 교육과 경험이 뒷전이다. 부모들은 여전히 공부-시험-대학 그 이후에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각학교 동아리들을 보면 남녀공학이라도 성비가 균등하지가 않다. 어느 동아리는 모두 남자이고 어느 동아리는 모두 여자이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성비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반대의 성을 가진 학생들이 좀처럼 가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젠더감수성이다. 난 이런 현상이 인문학적 미성숙의 연장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이런 문화에서 자라다보면 이성을 대상화하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내가 꿈꾸는 교육은 남녀가 함께 섞여 소통하고 토론하며 함께 자라는 것이다. 또 어릴 적부터 문학과 예술에 친숙해지고 다양한 인문학적 경험을 통해 스스로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 깨닫는 것이다.
나 역시 서른이 넘어 시와 소설을 읽기 시작하고 미술사에 관심을 갖게되고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교양을 뽐내기 위해서 혹은 스펙을 쌓기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인문학적 지식을 달달 외웠다. 하지만 지식이 아닌 체험으로 삶은 새롭게 전환되었다. 문학책을 읽으며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말캉말캉한 무언가가 가슴속에 번지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현상들을 경험했다. 난 그것이 내가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난 좀비가 아니라 생명이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 그래서 독서낭독모임에서, 클래식 듣기 모임에서, 미학스터디를 하며 힐링을 받는다. 구성원들은 우리가 읽은 책을 가지고, 우리가 들은 음악을 가지고, 우리가 본 그림을 가지고 토론한다. 그것 뿐이다. 그런데 엄청 힐링을 받는다. 모임이 끝난 캄캄한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가슴이 벅차오른다. 헤르만헤세, 베토벤, 고흐와 소통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난 확실히 힐링을 받았다.
셋째, 운동하기
몸과 마음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혹시 자신이 정신을 몸보다 위에 두고 있다면 그건 아직 미성숙한 것이다. 나는 하나의 덩어리이다. 그래서 마음이 어수선할 때 운동을 하고, 몸이 안 좋을 때는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현대인들은 몸 쓰는 것에 매우 더디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도 이해하지만...건강하지 못하면 그 어떠한 힐링보다 우선 몸 자체의 힐링을 받아야 한다. 운동을 하면 자신에게 민감해지고 이해하게 된다. 매우 귀찮지만 매우 절실하기에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해야 한다.
일시적인 다양한 스포츠 경험 이전에 매일 규칙적인 운동을 말한다. 돈과 특별한 시간내기가 필요없는 운동을 권한다. 달리기와 맨손체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건강해질 수 있다. 누구나 비슷할 것이다. 운동을 해야하고 살을 빼야하는 것은 아는데... 지금 당장 하기 싫은 다양한 핑계가 새록새록 샘솟는다. 그런 사람에게 팁을 주자면 자신만의 숫자를 만드는 것이 좋다.
예로 <매일 1시간 달리기> <매일 윗몸 일으키기 50개 하기> 등으로 숫자를 정하고 지키는 것이다. 그저 오로지 숫자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옛성현들의 가르침에도 도를 이루는 첫번째 단계가 상수(숫자를 세는 것)라 했다. 하늘천 자를 100번 쓰기 라든지, 검을 100번 휘두르기 라든지, 정권찌르기를 100번 한다 라든지...그런 식으로 숫자로 접근했다는 뜻이다.
넷째, 일기쓰기
내 삶의 주인은 나 자신이기에 스스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줄 알아야한다. 즉 오늘 하루 벌어진 일을 우연이라고만 넘기며 흘려보내지 말고 자기 전에 공책을 펴고 뭐라도 한페이지 끄적여 본다. 그 한페이지가 어제의 한 페이지와 내일의 한페이지를 이어주고 나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하루하루 즉흥적으로만 살아가다보면 발전이 없고 수동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보통 일기를 쓰려하면 정말 쓸 것이 별 거 없다. 그만큼 우리는 소소한 일상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특별하지 않은, 소소한 것에 가치를 두고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은 자신을 사랑하는 과정이 된다. 진정한 힐링은 특별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소박함에서 찾아온다. 어쩌다 먹은 한우 등심에서 얻는 기쁨도 좋지만... 이른 새벽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치치 거리는 밥솥의 연기소리와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를 들으며 상을 차리고 흰 쌀밥에 풍미를 느끼며 소박한 아침을 먹고 몇개 안되는 그릇을 뽀드득 거리며 설겆이 할 때... 진정한 힐링이 찾아온다. 출근 길 골목에서 마주한 광경... 어린이집 차를 기다리는 어느 꼬마와 엄마가 나누는 정겨운 대화...그것만으로도 세상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런 것을 쓰자는 것이다. 일기가 힘들다면 주기적으로 에세이를 쓰는 것도 좋다. 소박한 일상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힐링의 시작이다. 오늘 하루가 기쁨의 대상이 아닌 상대라면 나도 있는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담으며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에필로그
10년 전인가 교회에서 몽골로 의료 선교를 간 적이 있었다. 난 의대를 나오지 않았지만 의료팀에 합류하여 몽골주민 치료를 도왔다. 그때 몽골 간호학교 학생 너민이라는 여인을 만났다. 그녀도 의료팀에 합류하여 우리를 도왔다. 그녀는 크리스찬이 아니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때 마다 그녀에게 영어로 전도를 했다. 그녀는 잘 모르겠다며 어려워했다. 더 쉽게 이해시켜 주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치료에만 전념했다. 대신 우리는 함께 일하는 동안 매우 친해졌다. 쉬는 날 선교팀들은 다 함께 몽골 평원에서 말을 탔다. 그때 난 마치 사극에서 나오는 장군처럼 말을 잘 타는 너민을 보고 놀랐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말을 타며 자랐다고 했다. 시냇가에 도착해 말에게 물을 먹일 때, 그녀는 물 속에 풍덩 뛰어들어 내게 물장구를 쳤고 결국 모두가 함께 뛰어들어 놀았다. 너민은 선교팀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애정이 넘쳤다. 다른 사람들 도시락을 다 챙겨주고 나서야 자신의 도시락을 먹었고, 누구라도 힘들어서 지쳐있으면 뒤에 슬쩍 다가와 어깨를 마사지 해주었다. 그리고 길을 가다가 처음 보는 누구에게나 쉽게 말을 붙이며 친하게 지냈다. 일정 마지막 날 모두 함께 저녁을 먹을 때, 그녀와 함께 몽골 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내가 울자 그녀도 따라 울었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촌스럽게 생겨서 별로 관심도 갖지 않다가... 선교대상자라 생각하고 애써 전도하려 노력하다가...결국 포기하고 우린 그저 소통을 했다. 그 과정에서 난 자유해졌고 진정한 사랑을 느꼈다. 너민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봤던 사람중 가장 큰 사람으로 느껴졌다. 타인을 바라는 것 없이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히려 그녀에게 전도된 느낌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힐링을 받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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