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누리에 축복이 가득한 날

KEYWORD ONNEPAGE 생일 ㅣ 화이

by 한공기
화이 프로필.jpg 땅고댄서


어느 날 미드를 보다가 문득, 우리나라도 땅고를 매개로 한 드라마가 있으면 많은 이들에게 땅고라는 춤을 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작가 프로필 ㅣ 화이

아르헨티나 땅고 댄서이자 땅고 아카데미 '엘 불린' 대표

도서 '탱고레슨' 저자



“생일이 언제세요?”

“크리스마스이브예요.”

“와... 좋으시겠어요!”


왜 크리스마스이브가 생일이면 좋겠다는 반응이 나올까? 뭐가 좋을까? 성탄의 기쁨에 생일따위는 묻혀버려도 되기 때문에?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쓸쓸함을 교회의 찬송가로 덮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남들의 북적이는 흥겨움에 떠밀려 탄생의 괴로움은 잠시 잊어도 되기 때문에?

저 반응을 마주할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고개를 삐딱하게 치켜 올리려는 의지를 애써 누르곤 한다. 그리고 네, 뭐.... 하고 웃음으로 꼬리를 흐린다. 12월 24일이라고 할 수도 있는 걸 굳이 크리스마스이브라고 대답하는 꼬인 심성이라니.


어렸을 때에는 생일파티라는 걸 했었다. 별로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사진에는 남아 있기 때문에 파티를 했던 것은 확실하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당시 홈 베이킹의 유행을 따라 솥처럼 생긴 오븐에 케이크를 구워 주시곤 했었다. 사진 속 내 생일상에는 장미꽃 장식이 근사한 제과점의 케이크가 아니라 삐뚤삐뚤 초코크림으로 축 생일 이라고 쓰여 있던 카스테라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벽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인 금색 은색의 반짝이로 된 모루가 걸려 있고, 나는 생일 주인공답게 머리에 반짝이 색지가 붙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사진에 있는 친구들이었던 꼬맹이들은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그 때 생일 파티는 즐겁고 행복했을 것이다. 사실 내 생일날 파티를 했던 것인지에 대해선 확신할 수가 없지만.


철이 들고 나서는 생일파티를 해 본 기억이 없다. 아침에 엄마가 끓여주시는 미역국을 먹으며 가족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줬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 방학을 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매년 내 생일에 교회에 가서 크리스마스이브 예배를 드리고 새벽송을 부르며 동네를 돌았다. 나름 절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나는 교회를 가는 게 더 의미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대학교 때 내 친구들은 다 대구, 진해와 같은 지방에 살았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네들은 집에 내려가고 없었다. 다행히 대학교 1학년 때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와 크리스마스 겸 생일을 같이 보낼 수 있었다. 그 남자친구와 헤어진 이후,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남자친구가 없었다. 기껏 누구를 만나도 내 생일을 같이 보낼 만큼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부터는 생일을 혼자 보냈다. 친구들은 애인과 데이트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날이 아니던가. 우정을 위해 내 생일쯤은 희생해 줘야 하는 거였다.


뮤지컬을 하던 시절, 한번은 크리스마스이브 파티에 공연 행사를 뛴 적이 있다. 선배들과 동료들과 어울려 낮에 이벤트로 노래를 하고, 저녁에 유명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하는 파티에 춤과 노래를 하러 갔다. 공연이 끝나고 나니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가족이 있는 선배들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고, 결혼을 하지 않는 동료들은 각각 애인을 만나러 공연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흩어졌다. 나는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간만에 제대로 된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으며 10여분정도를 남겨 놓은 내 생일날, 나는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목 놓아 엉엉 울었었다.


“얼마나 근사해. 누나 생일날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하잖아.”


후배 녀석 하나가 그렇게 내 생일을 축하해 줬었다. 내가 크리스마스이브가 생일인 게 뭐가 좋으냐고 울컥 뱉어버렸던 그 날이었다. 후배는 내가 속상해 하는 걸 보고 위로한답시고 순발력 있게 둘러댄 거였지만, 나는 그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 어쩐지 그간의 설움이 그 한마디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달까. 이제는 생일을 챙기는 게 새삼스러운 나이일 수도 있고, 가족들과도 카톡으로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걸로 퉁 치는 게 익숙해진 지금이지만, 나는 아직도 내 생일이 되면 그 후배 녀석의 말을 떠올린다.


“뭐가 좋아요. 남들 선물 두 번 받을 때 난 한번만 받아서 손해예요.”


웃으며 너스레를 떨지만 이제는 손해를 봐도 전처럼 서럽지 않다. 누구 말대로 내 생일날 온 누리에 퍼지는 축복에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이들이 가득한 까닭이다. 그리고 혼자 우쭐해한다. 그게 내 덕분인 것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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