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힐링 보고서 ㅣ 서은진
작가 프로필 ㅣ 서은진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인간이 느끼는 당연한 감정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순간들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 이야기들은 흘러서 지나갈 뿐 그냥 내 안에서 소멸되는 것이 바쁜 현재의 삶이다. 나는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평범한 감정들을 ‘나만의 보고서’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나의 힐링 보고서>는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한 나의 감정, 생각, 처세를 담는다. 작은 순간들에 느낀 감정을 표현한 짧은 시와 이야기를 덧붙여 <나만의 힐링 보고서>가 차곡히 쌓여 갈 것이다.
내 이름은 카이
내 이름은 카이
내 심장엔 악마가 놓친 얼음 조각이 박혀있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차가운 심장은 사람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사랑한다 했지
따뜻한 사람은 다가와 내 심장을 녹여보려 했지만
날카로운 얼음 조각에 찔리고 깊은 상처만 입고 떠나간다.
한 명, 두 명, 세 명.....
내게 손을 내미는 사람들
그들은 또 상처를 입고 떠난다.
온기라고는 느낄 수도 없는 사늘한 결계가 쳐지고
나는 웅크리고 앉는다.
어느덧 결계는 거대한 나만의 눈의 성을 만들고
소일거리로 얼음조각 퍼즐을 즐긴다.
눈싸움도 하고
빙판 위에서 썰매를 타고
잘 갈아진 우유 얼음 위에 팥을 얹어서 입 속에 넣는다.
한껏 달콤함을 만끽한 오후
차가운 얼음침대 위에서 잠을 청한다.
내 이름은 카이
결계가 쳐진 나만의 성에서 즐겁다
눈을 감았다 뜨면 희미한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인다.
기억하지 못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
내 심장은 가늘게 뛰고 있었다.
게르다를 기다리고 있다보다
세찬 바람 속 온기를 바라는 ‘카이’
올 겨울 들어서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혹독한 날씨. TV 화면에는 한파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한 커피숍에 앉아서 한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한적한 커피숍, 한파의 영향으로 실내도 싸늘함이 느껴졌다. 나와 그 남자는 그 공간에 있었다. 소개로 만난 한 남자는 조용하고 착한 인상을 가지고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 남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얼음왕국과 같이 냉정하고 차가운 나의 마음에 놀랐다. 사람을 받아들이려고 하기보단 이미 내 안에 벽을 쌓아놓고 평가하고 저울질하고 있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내 안의 벽은 견고하게 벽을 쌓아놓고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받아들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기보단 냉정하게 평가하던 나의 모습에서 마법에 걸려 심장이 얼어붙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없는 동화 <눈의 여왕>의 ‘카이’가 떠올랐다.
얼마 전 조카와 함께 읽었던 그림책 <눈의 여왕>에서 카이가 눈의 여왕과 함께 썰매를 타고 눈이 가득한 세상을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진정한 사랑은 모든 고난을 이겨내게 한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악마 트롤이 하늘로 올라가다 마법에 걸린 거울을 놓친다. 그 거울이 수천수억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인간 세상 사람들의 심장과 눈에 박혀버린다. 거울 조각이 박힌 사람들은 차갑게 변하고 무엇이든 나쁘게 보고 평가하게 된다. 카이는 트롤이 떨어뜨린 거울 조각이 박히고 단짝 친구였던 게르다를 멀리하고 차갑게 변한다.
어느 겨울날, 카이는 눈의 여왕을 만나게 된다. 눈의 여왕은 카이에게 모두를 잊게 하는 입맞춤을 하고 자신의 궁전으로 데려간다. 카이는 눈의 여왕의 궁전에서 얼음 조각으로 된 퍼즐을 풀어야만 벗어날 수 있다.
오랜 친구를 잃은 게르다는 사라져버린 카이를 찾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모험 끝에 마침내 눈의 여왕의 궁전에 도착한다. 카이를 보고 게르다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은 카이의 심장에 박힌 거울 조각을 녹인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카이는 게르다와 함께 얼음 조각 퍼즐을 맞추고, 둘은 무사히 그곳에서 벗어나고 마법과 같은 모험은 이야기가 된다. 카이와 게르다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행복하게 살게 된다.
이미 알고 있는 많은 이야기 속의 <눈의 여왕>
<눈의 여왕>은 1845년, 덴마크의 작가 한스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이 발표한 창작동화로, 변해버린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기보다는 진실된 사랑으로 감싸주었을 때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고 한다. 동화 <눈의 여왕>은 생각보다 긴 줄거리를 가지고 있어서 육아용으로 나온 그림책은 대부분 게르다의 모험이 많이 생략되어 있다. 원래의 동화 버전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요술쟁이 할머니, 왕자와 공주, 까마귀, 산적의 딸, 라플란드 할머니와 핀란드 여자 등 더 많은 캐릭터가 나오고 흥미진진하다.
2013년 개봉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얼음왕국>의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와도 비슷하다. 진실된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던 엘사와 안나는 서로의 마음을 알고 해피엔딩을 맞았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한장면
엘사의 이미지는 화려하지만 냉정해 보이는 눈의 여왕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리고 나의 죽어버린 연애세포도 냉정해 보이는 ‘눈의 여왕’처럼 완벽히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나만의 성에서 게르다를 기다리고 있지만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한다. 따뜻한 온기가 그리우면서도 막상 정든 성을 떠나긴 쉽지 않다.
여담이지만, 동화 속의 배경이 되는 덴마크는 막상 현재와 같은 한 겨울이 되어도 영하 2도 정도였다. 그림책으로만 읽으면 당연히 덴마크가 완벽한 동장군의 나라라고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동화 속 배경은 덴마크를 넘어, 핀란드 라플란드까지 이른다. 동화 속의 이미지로만 덴마크를 완전한 눈의 나라로 그렸지만 그 시선은 좀 더 넓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따뜻한 온기가 필요한 건 추운 나라여서가 아니라 마음이 각박해서일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심장을 녹여줄 게르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