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누는 대화 | 임나무
매일 500 페이지를 읽습니다. 제가 글을 쓴다면 '카프카'처럼 쓰고 싶어요. 카프카를 읽으면 약간 푸르스름한 흑백영화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작가 프로필 ㅣ 임나무
취미가 독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엄청난 독서광.
자신이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웬 일이우, 형님.
아이구 엄동설한에… 어서 요기 아랫목에 앉아요.
형님이라니까 이상해요?
가족 아니라도 여기 한국에선다 그렇게 불러요.
얼마 전엔 동네 아줌마들끼리 형님, 형님 하는 드라마가 아주 히트를 치기도 했다우.
내가 그렇다고 인역더러 할머니라고하겠수, 아님 아줌마라고 부르겠수?
안 그래도 언제 한 번 안 오나 했는데 시간을 달려서 고마 함 오셨구려.
애썼수, 형님, 먼 길 오시느라.
허리춤에 그건, 뭐 손수건에 동물 과자 싸온 거유?
이제 그거 팔아서 먹여 살릴 식솔도 없는데 뭣하러 그걸 만들어요?
어디 맛 한 번 봅시다.
… 괜한 느낌인가, 진흙 맛이 좀 나는 거 같은데 업둥이 딸이 몰래 넣은 거 아닌가 몰라.
아니,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생사람 잡지 말아요, 맛이 특이해서 혼잣말 좀 한 건데 뭘.
보아하니 그 손수건은 딸래미가 수놓은 건가보네, 죽은 다음에는 철 좀 들었나?
쳇, 자기 딸 흉본다고 또 쌜쭉하기는…
둘째 아들은 아직도 하릴없이 황금물고기를 만든다고요?
하이고… 거기 가서도 다들 심심할 새는 없겠네요.
그나저나 형님, 어디 손 한번 잡아봅시다.
형님 사는 콜롬비아는 도대체 어디 처박혀 있는 동네인지 관심도 없는데,
내 살다 살다 그 동네 유령을 붙들고 이렇게 하소연을 다 하네요.
세상 등졌을 적에는 갓난쟁이만큼 쪼그라들더니만,
되레 그때보다 풍채도 좋고 건강해 뵈고 눈도 훤하신 거 같아요.
여러모로 그쪽에서 훨씬 ‘좋은 날들’을 보내고 계신 듯하니 다행이우.
형님 인생살이를 가만 생각해보니, 이 나라 여편네들 저리가라 할 만큼 한이 깊겠습디다.
한이 뭐냐고요?
음… 슬프고 억울하고 화나고 서럽고 외롭고 암담하고 막막한데, 죽을 수도 없는 기분?
형님이 나무 밑에 형님 남편 묶어놓고 찾아가서 붙들고 울 때 그 기분이 아마 한일꺼요.
내 보기엔, 뭐니뭐니해도 망상에 빠져서 가산 죄다 탕진한 그 양반이 제일 큰 원흉이구만요.
그런데 작가 양반이 말 한번 잘했지,
형님 정말 그 모진 날들을 ‘광적인 인내심’으로 버텨냅디다.
독한 양반 같으니...
시집간 후로 형님이 형님 인생에서 뭣 하나 스스로 선택한 게 있수?
괜히 생각하는 척하지 말아요, 단 한 가지도 없었으니까.
그 왜, 형님댁 거실에 자동피아노 들여놓았던 적 있쟎우.
궁금한 거 못 참는 형님 남편이 피아노 뜯어서 열어보고 줄을 다 헝클어놨던 거 기억나요?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댄스파티 연다고 동네 사람들 모조리 집에 초대했었쟎아요.
맞아요, 자동피아노에서 엄청난 불협화음이 쏟아졌었지.
난 그게 형님 인생이랑 똑같다 싶었다오.
그런데 형님은 그 불협화음을 고스란히 받아 안습디다.
마치 동네 사람들이 망가진 피아노의 연주에 맞춰서 밤새 춤을 추었던 것처럼,
형님도 그냥 맞춰서 살아냈지요, 눈이 멀고 몸이 쪼그라들어 죽는 그 날까지.
동네에 들어온 집시들이 사람들을 타락시키든 말든,
군인들이 밀고 들어오고 자유파와 보수파가 전쟁을 하든 말든,
미국인들이 빈민 노동자들을 부려먹다가 학살을 하든 말든,
형님은 하루하루 그 동물 과자 팔아서 돈을 벌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 집을 넓혀 지었쟎우.
동네 점쟁이 여편네가 낳아 온 손주도 묵묵히 받아 키우고,
전쟁에 나선 둘째 아들에게서 열일곱 명이나 배다른 손주들이 찾아왔어도 모두 세례를 받게 해주었지요.
자식들을 위험에서 구해내고, 개미떼가 파먹어가는 집을 지탱하고, 난장판이 된 삶을 수습하는 것도 인역 몫이었고...
게다가 형님 손으로 장례를 치른 자식과 며느리, 손주, 증손주가 대체 몇이냐 말이오.
형님, 나 요새 너무 힘들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 쏟고 살았던 거… 알고 온 거유?
정말 답도 안 나오는 순 쭉정이 패를 손에 쥐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피박에 광박이네요.
그런데 순 날강도 같은 이 세상은 좀 봐주기는커녕 언제까지나 고!를할 것만 같아요.
그냥 판 엎어버리고 싶은 참담한 심정, 형님 알아요?
화내는 거 아니에요.
그냥… 나도 형님처럼 살다가는 거구나,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구나 싶었다오.
허망한 노력일랑 하지도 말고 헛된 기대 따위 뚝뚝 분질러서 버렸어야 했수.
인생은 내가 뭘 선택하고 결정해서 만들어가는 거라고 하는 말들, 다 개나 줘버리라고 해요.
여태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부렁에 속고 산 게 너무 분하고 억울하네.
인생은, 양피지에 쓰여진 예언 같은 건가 봐요.
그래요, 멜키아데스 노인네가 뒷 골방에 끼적여 남겨놓았던 그 누더기 같은 양피지 조각들 말 이우.
그 예언은 이루어지기 전에는 해독되지 않고, 이루어지고 나면 사라져버리지요.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 치고 피해보려 노력한들 그 모든 것조차 이미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사는 것뿐이에요.
그러니 돼지꼬리 달린 아이가 태어난 것에 너무 한스러워 말아요, 형님.
형님이 그토록 두려워하고 막아보려 했었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수.
나도 이제 그만 마음을 추스를 때가 된 것 같아요.
더 이상은 내 힘 이상으로 너무 애쓰지 않을라구요.
그래 봤자 소용도 없지 않습디까?
힘 빼고 멀찌감치 물러서서, 어딘가에 적혀져있을 내 운명대로 흘러가게 둬볼라요.
걱정 말아요, 억지로 팔자에 대들지 않는다는 거지, 나도 쪼그라들 때까지 버티기야 하겠지요.
대신 가끔 찾아와 줘요, 우르슬라형님.
세상에 목숨 붙어있는 것들 중에는 이 외로운 아줌마 말에 귀 기울여줄 이가 많지 않아요.
백 년이 다 뭐야. 영원한 고독이구만뭘.
잘 가슈, 또 와요 형님.
[책 소개]
마르케스의 작품,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남미의 소설이다.
거리로는 한국에서 가장 먼 대륙이지만 문학적인 정서가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제국주의 침략과 독립, 독재로이어지는 남미 각국의 근대사가 우리의 역사와 닮아있고,
바닥에 놓인 개개인의 삶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는 작품이라고 하니 나에게도 나만의 방식으로 읽을 권리가 있으리라.
광포한 역사의 흐름 밑바닥을 살아내는 한 여인의 가족사에서 한없는 고독을 발견한 순간
그녀의 유령이라도 불러내서나의 외로움을 읍소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땅, 마콘도는 워낙 사람과 유령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마을이라 유령을 불러내는 건 일도 아니다.
나에게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영원히 고독한 여자의 일생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