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문어 토마토 파스타

소소하다 ㅣ 곽정빈

by 한공기



KakaoTalk_20160508_223016445.jpg 연구원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8 and Half. 그 식당은 정말이지 우연찮게 발견한 곳이었다. 비탈진 내리막길. 적당한 허기를 느끼면서 난 무심하게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고, 딱 봐도 5 평 정도밖에 되지 않을 식당이 내 시야를 비집고 들어왔다. 간판조차 붙어있지 않아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다면 감히 식당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그 작은 공간으로 나는 끌리듯 들어섰다. 평소와는 다르게 망설이지 않고 무작정 들어선 것이었다. 뭐 어찌됐든 살펴나 보자는 심정으로 자리에까지 앉아본다. 여기는 대한민국. 자본의 논리대로 움직이며 그 자본을 쥔 손님이 왕인 곳이었다. 여의치 않으면 일어서면 될 일이었다.

곧 군데군데 백발이 성성하지만 제법 건장한 체구에 뿔테 안경을 쓴 푸근한 인상의 주인장이 내게 다가온다. 이 식당의 주인이자 서빙이자 주방장이었다. 그리고 기어코 그가 마치 백일 휴가를 나온 막내 아들이라도 맞이하는 양 나를 향해 세상 끝없는 미소를 짓는 순간, 왠지 나는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메뉴판을 달라하니 메뉴판이 없다고 했다. 묻건대 듣자 하니 이곳은 주말에만 운영하는 식당이며 그날 그날의 가장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서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오늘 먹는다면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메뉴라니... 자리를 다시 일어서지 않을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날의 메뉴는 통영에서 갓 올린 돌문어 토마토 파스타와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바질 페스토 오일 파스타였다. 마침 일행도 있었기에 두 메뉴를 모두 시켰다.

주방장이 요리를 하는 동안 식당을 둘러봤다. 좁은 실내에는 각각 2인, 4인용 테이블 단 두 개가 놓여져 있고, 겨우 가슴 높이의 가림막만이 거실과 구분되는 반 평짜리 부엌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벽면 선반마다 얼기설기 세워진 책과 액자 및 소품들은 통일성이 없었고 어떠한 일련의 의미도 찾기 어려웠다. 아니 식당 자체가 그랬다. 마치 오면 올 것이고 오지 않을 거면 오지 말란 식이었다.

조심스레 주말에만 식당을 운영하는 이유를 물으니, 주인은 덤덤하게 재료를 손질하면서 딸과 여행을 가기 위한 여행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세상에 그렇게나 적절한 이유가 있을수 있을까? 그제서야 모든 이에게 한없이 공평한 그 미소가 이해가 되었다. 의미 없이 나열된 듯했던 각종 가게 소품들이 별안간 애틋하고 사랑스러워졌다. 단 두 개뿐인 테이블과 주방장 한 명이면 족히 차버리는 조막만한 부엌도, 식당에 간판이 없는 것에도 자연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느덧 내 앞으로 차려진 두 파스타를 음미해본다. 화려하고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담백하고 정갈했다. 아스파라거스는 아삭했고, 올리브와 바질 페스토의 향은 풍성했으며, 문어의 식감은 쫄깃하기 그지 없었다. 전혀 억지스러움이 없고 일절의 과함이 없이 재료 본연의 자연스러운 맛이 느껴지는 가히 건강한 맛이었다. 무엇보다 그날 구할 수 있는 제일 신선한 재료를 이용한다니, 그야말로 딸을 위한 아비의 마음이 느껴지는 요리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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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문어 토마토 파스타를 해보았다. 올리브 오일을 팬에 충분히 두르고 얇게 썬 마늘을 잔불로 오래도록 볶아 마늘향을 배이게 하고, 미리 손질해둔 방울 토마토와 문어를 넣어 같이 볶다가, 토마토의 형태가 무너질 때즈음 파스타 면을 투하하고 면수를 조금씩 부어가면서 파스타를 조리했다. 마지막으로 후추와 파슬리를 치고 소금 간을 조금씩 더하면서 맛을 본다.

역시나 처음 시도하는 음식에는 꼭 아쉬움이 남기 마련인가 보다. 재료가 혼합되어 내는 감칠맛은 그 나름대로 즐길만한 것이었지만, 이 요리는 재료 각각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문어는 미리 데쳐 두었다가 마지막에 오일만 두르듯이 얹어주는 느낌으로 해야 했을 것이고, 토마토는 과육은 제거하고 껍질로만 조리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아쉬움은 아쉬움으로 묻어두고, 요리는 그래도 먹을 만한 것이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다만 다시금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이 요리 주인의 요리를 대하는 자세였다.

그날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로 요리한다는 것에서는 그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절대 오만한 자신감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축적되어 자연스레 드러나는 자신감일 터였다. 신선한 재료를 고르는 법, 그 재료를 손질하는 법, 같이 겸해서는 안 될 재료들, 가열하고 조리하는 시간,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 무수한 도전과 실패의 날들로 빚어진 거침없되 망설임없는 자신감. 그 당위. 그리고 세상 어떤 재료라도 그 재료의 성질을 잘 이해하고 이용할 줄만 안다면, 그 어떤 요리로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음식을 구분짓는 뚜렷한 경계는 세상에 없다는 것을 그는 몸소 보여주는 듯했다.

그 철학은 바로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비단 요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와 관계하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 나는 과연 그들 각각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에 맞게 대면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내 입맛대로 한 데 버무려 나 자신의 이해대로만 그들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 어쩌면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지독히 편향된 식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성스런 그의 요리를 먹으면서 세상을 향한 편견없는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요리 또한 그 사람을 반영하는 지표이리라. 대접하고자 하는 이를 위한 마음이 우선한다면, 자연히 가장 좋은 재료를 엄선하게 될 것이고, 그 재료의 맛을 가장 잘 살리는 법으로 조리하게 될 것인데, 그런 요리가 어찌 맛이 없을수가 있을까?


마치 거울을 보듯 내가 만든 문어 토마토 파스타를 내려다 본다. 언제가 이 요리를 넘치는 감사함을 받은 그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대접할 수 있는 날이 올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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