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네가 말하는 사랑의 정의 1

소소하다 ㅣ 이건우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7-02-13 오후 3.13.00.png 영화인


작가프로필 ㅣ 이건우

저는 영화연출을 전공했고, 영화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영화 매니아는 아닙니다.

오히려 스토리 매니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미지나 캐릭터, 혹은 물음표가 있는 설정 등에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착상되면, 마치 꽃에 물을 주며 어떤 나무로 성장할 지 궁금해하는 것 같이 아이디어를 스토리로 키워나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사랑에 빠진다' 는 표현만큼 그 찰나를 정확히 포착해 설명해주는 말도 없는 듯하다.


영어로는 'falling in love' 라 하고, 일본어로도 '코이니 오찌루 (恋に落ちる)’라 하여 '떨어질 낙'을 쓰는 걸 보면 만국공통이라 할 수 있겠다. 전 세계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사랑에 빠진다고 표현하는 그 순간만큼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이 '사랑의 이름으로!' 하고 외치며 단결하여 그야말로 파시즘적 행태를 자행하기 시작한다. 먼저 이성의 육중한 문을 걸어 잠그고 그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가두어버린 뒤, 그동안 제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오던 각종 세포들을 세뇌시켜 그들로 하여금 사랑의 대상의 충실한 노예가 되게끔 만들어 버린다. 상황이 이쯤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 곤 그 순간의 자신의 운명을 사랑의 대상을 향해 던지는 것뿐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여러 가지 표현을 빌어 자신의 이러한 상태를 열심히 설명한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쿵쾅거린다.'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는 것은 보통의 표현이고, 더 나아가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초월적인 경험조차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사랑에 빠지는 상황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그 다음에 오는 이성의 반작용에서 온다. 아드레날린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육중한 문을 열고 나온 이성의 레지스탕스들은 현재 피해 상황을 보고받는 것과 동시에 한 가지 큰 존재적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내가 빠진 것이 사랑이 맞는가?', 혹은 '사랑이란 무엇인가?' 와 같은 질문이다.


"오빠는 왜 사랑한다는 표현을 안 해?"

아니,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분명 나는 너와 함께 쌓아 올라간 시간의 탑 위에서 맞이한 어느 순간, 속절없이 너에게 빠져들고 말았으니 말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오빠를 보면서 책 읽는 옆모습이 좋아,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모습이 좋아, 가게에서 점원에게 말하는 오빠 말투가 좋아, 오빠랑 대화할때가 제일 즐거워 (등등)... 뭐 그런 것에서 사랑을 느끼는데 오빠는 나한테 그런 게 없어?!"

충격이었다. 사랑이 그런 것이었단 말인가? 좀 더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이고 가슴이 애리는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내게 사랑을 느끼는 순간을 하나하나 열거할 때마다, 그 달콤한 말이 하나하나 귀에 미끄러져 흘러들어올 때마다, 몸 안의 세포는 빅뱅을 일으키며 환희의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잘 것 없는 나 자신을 그렇게 자세히 관찰해주었던 그녀에게 송구스러움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 이런 소소한 것들도 사랑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새로운 시각도 얻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예수의 사랑'의 레벨을 자신에게 강요하고 상대에게 부과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사랑을 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니깐 나는 그동안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너의 깊은 눈이 너무 예뻐.'라고만 생각했지, 그래서 '사랑한다' 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한 나의 사고방식은 현실에서 연애를 하며 느끼는 뭉클한 여러가지 감정들을 엄격하게 재단하며 '아직 너희는 사랑의 영역에 갈 준비가 되지 않았어!' 라고 감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전 세계의 어느 누구든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비슷하게 경험하지만, 이성이 각성한 이후 사랑을 어떻게 정의내리고 가꾸어가는가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아마도 연애경험이 많다면 그 정의는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편일 것이다. 반면 연애고자에 가깝다면 그 정의는 매우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편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어느 것이 맞다, 틀리다의 영역은 아니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DNA적 성향, 환경적 요인, 교육적 요인, 그리고 제각각의 경험이 그 사람의 그릇을 만든다고 보았을 때, 당연히 다른 그릇에 담긴 사랑의 모습 역시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랑은 대상의 영역에서 관계의 영역으로, 또는 그 반대로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에너지와 같은 것이라는 걸 자각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내 그릇에 담긴 것이 맞다고 우기는 오류를 범하지 않고, 대상과 관계 사이에서 유연하게 흐르며 사랑이라는 에너지를 공유해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고하고 싶다. 사랑의 정의를 멋대로 자신의 그릇에 담아두지 말라, 둘 사이를 오고가며 그곳에서 흐르는 에너지에 집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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