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WORD ONE PAGE <편식> ㅣ 곽정빈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1)
몇 일전부터 기타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저 막연하게 "언젠가는..." 이라는 말만 연신 되뇌면서 차일피일 미루어오던 버킷리스트 하나를 드디어 진한 가로선과 함께 지워버렸다. 원체 우유부단하고 걱정이 앞서는 스타일이라 뻔히 있는 흔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런 결단들이 빨라졌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날이 지나고 해가 거듭할수록 점점 더 명료해진다. 요즘의 나는 정말 내 인생의 한 가운데에서 인생을 진짜로 살고 있는 것만 같다.
내 선택 하에 이루어진 지난 일들을 뒤돌아 보면 묘한 희열감을 느낀다. 국어책 읽기보다 수학공식 푸는 것을 좋아한 결과로 공대에 진학을 했다. 전공공부에 매진하기보다 폭넓은 대외활동을 하면서 다양하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안정적이지만 뻔한 삶보다는 다소 불안하더라도 자유로운 삶을 동경해 세계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그런 기조를 유지한 이 연장선 위에서 난 지금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올해 연말 즈음엔 경쾌한 스트로크로 아주 멋드러지게 기타를 쳐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타가 능숙해진 만큼 내 삶 또한 더욱 그럴 것이다.
물론 나름 많이 넘어지고 또 깨지고 남모를 눈물도 훔쳤었고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다사다난한 일도 여럿 겪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지금 이 순간으로 귀결된 것이라 생각하면 그건 또 그 나름대로 괜찮지 아니한가? 이건 마치 아주 잘 구성된 한 편의 극과 같이 느껴진다. 그래. 굴곡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그렇게 생각하니 지난 일들이 모두 다 보상받는 느낌마저 든다. 하나하나 사소했던 그 일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 순간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의 인생은 편식의 기록인지도 모른다. 타인과 나를 뚜렷하게 구분 짓는 나만의 개성. 이 우주에서 단 하나만 존재하는 유일한. 다른 어떤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나 자신만의 확고한 주관. 수많은 선택지 중에 굳건히 꽂아내는 나의 깃발. 나의 방향성. 나를 나로써 규정하는 모든 것. 그것이야 말로 나의 자아.
내 지난 편식이 지금의 나를 의미하듯이 나는 편식주의자다.
그리고 나는 편식주의자로서 당당하게 나만의 방식대로 세상을 편식해 나갈 것이다.
(2)
위 글은 사실 다 보기 좋은 거짓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난 내 극단적 편식의 너머가 두렵다.
매일같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전 직장 동료들과의 카톡방이 있는데, 그 중에는 아직 그곳에 다니는 친구도 있고 다른 곳으로 이직한 친구들도 있다. 나는 그곳에서 유난히 빨리 퇴근하는 내 모습을 과시한다. 자연히 적을 수밖에 없는 급여를 변호하기 위해서 선수를 치는 격이다. 이를테면 난 퇴근하고 매일같이 삶의 통찰이 가득 담은 글을 쓰고 있고 말이야. 매주 수요일마다 지적인 친구들과 인문학을 공부하고, 요리를 취미로 하고 있으며, 심지어 최근에는 기타까지 치기 시작했어 라는 식이다.
쿨한척 얘기하지만 실은 하나도 쿨하지 못하다. 말이 많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불안해질수록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실제로는 정말 잘한 선택인지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선택은 저질러버렸고 되돌릴 수 없지만 지금 이 상황이 계속해서 불안한 것이다. 아직까지 버텨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친구들은 하나 둘 결혼도 하고 차도 하나씩 뽑았고 대출을 꼈을지언정 집도 마련해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변변찮은 적금 하나도 제대로 붓지 않고 있다.
지난해 회사가 역성장을 했다. 야심차게 시작한 벤처기업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중이다. 신사업을 계속 찾으려고 하는 것만 봐도 기존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했음을. 그 와중에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임을 알 수 있다. 결코 오래갈 회사는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이 몸이 말이야 세계여행까지 갔다 왔는데, 뭐든 못할 것 같아? 지금 당장이야 이곳에서 밥벌이를 할 뿐이지 여기서 정착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같은 방식으로 언제 어디서든 나 하나 정도야 아주 거뜬하게 보란듯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딱 그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심의 유효기간은 고작 1년 남짓이었다. 근래 입사 이후 처음으로 내가 머지않아 곧 실업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이전의 나는 그런 일이 당장에 벌어져도 아무렇지 않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난 동요했다. 당장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다. 나름 나 스스로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부여했던 요즘의 삶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고 자신있었던 삶이었는데 그 모든게 결국엔 그럴듯한 변명 위에 세워진 껍데기라는 걸. 가볍게 부는 미풍에도 휩쓸려 날아가버릴 만큼 가벼운 것이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직전 직장에서는 회사가 망할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향후 일 이년 후를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빠른 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고, 어떤 기업이든 영속하는 기업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긍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대기업을 운운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이 회사보다 오래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확률은 내 자식이 4년제 대학을 나오고 첫 취업을 할 때까지 유효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일은 다시 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정말 화가 나는 것은, 기껏 돌연한 찬바람에 몸을 움츠려대는 쫄보 주제에 왠갖 고상한 척 인터넷에서 글이나 싸지르고 앉아서는 자기 위안하는 꼴이 정말이지 아니꼽고 볼썽 사나워서다. 그런 내가 진짜 별로라고 생각한 최근이었다.
(3)
한 채식주의자를 기억한다. 그녀는 육식에 대한 욕구가 대량생산 시스템에서 비인도적으로 사육되고 도축되는 가축들로 채워야 할만큼의 것인지 회의감이 들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채식을 설명했다. 분명 육식의 욕구가 남들보다 작았기 때문은 아니리라. 그녀는 식탐의 크기보다 그 의지의 크기가 큰 사람이었다.
그녀와 관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녀의 채식은 결코 단기간의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세상에 대한 확고한 자기신념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모든 관계에 진실로 임했고, 끊임없이 독서했고, 사유한 것을 실천했으며, 다소 허약하고 또 느렸지만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제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옆에서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와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까지도 모두 저 자신을 증명하는 낱낱의 생생한 증거인 것처럼 느껴졌다. (장담컨대 그녀는 분명히 아직도 채식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채식은 단순한 원초적 기호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내린 결정과 그것을 실천하는 의지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정말이지 숭고해 보였다. 세상의 습관과 욕망을 거스를 수 있는 단단한 의지. 매 순간순간을 본인의 의지를 따라 나아갈 수 있는 존재. 카인의 표식을 지닌. 굳이 나서지 않아도 세상에 그 존재를 진하게 드러내는 인간.
그녀는 내가 알았던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를 삶 그 자체로써 증명하는 인간이었다. 이상적 인간. 진정한 의미의 편식주의자.
(4)
그럴듯한 깨달음을 얻은 양 글을 마무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마저 쓰레기가 될 수는 없다. 글 몇 개로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면 이 편식.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마도 곧 괜찮아지겠지만 앞으로도 자주 계속해서 불안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금 찾아왔을 때는 나를 완전히 잠식해버릴지도 모른다. 어쩔수 없다. 그것이 내가 택한 편식의 대가니까. 마음에 들지 않을지언정 나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불안해하는 것도 나이고, 이 새벽녘까지 붙들고 쓴 글 뒤에 숨어버리고 싶은 것도 나이다. 모두 인정하고 마주해야할 내 자신의 모습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불안을 동반한 이 편식을 나는 계속 해나갈 거란 것이다. 나는 편식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나를 증명하는 것이 편식이라면, 끝까지 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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