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새로운 선택의 표면 아래에는

KEYWORD ONE PAGE <편식> ㅣ 김혜진

by 한공기
20170305_154339.jpg 간호사
저의 키워드는 행복입니다.결국 모든 것이 이 길 위에 있더라구요.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사람도, 글과 음악, 인생의 목적과 같은 것들이 행복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프로필ㅣ 김혜진


피아노를 전공하고 이후 간호학을 공부하였음.

피아노 치는 간호사

복지와 힐링에 관심이 많음




한 2년전, 아는 동생의 추천으로 김영하 작가의 강의영상을 보게 되었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여러가지 교훈을 담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일반적으로 서른이 되면 많은 부분에서 굳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십대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던데만 가게되고, 먹는것만 먹게되고, 생각하던대로 생각하게 되니 서른이 되기 전에 다양한 곳으로 여행해보고, 여러가지를 먹어보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라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일부가 되어 얽히며 살아가지만 인간은 결국 자신의 세계에서 산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통해 타인과 세상에 영향을 미치므로 평생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 강의를 듣고 나서 나는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미 서른이 넘어서 들었던 강의라 나의 모든 것이 굳어가기 시작하는 시기일 수 있겠다는 경각심이 들면서 이젠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그냥 단순한 생활 패턴에 먹던 음식 위주로 먹고 관심 있는 몇 가지 분야 외에는 무관심한것 같았다. 생활패턴이나 음식은 그렇다 치자. 결정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나중에 나이만 먹고 열려 있지 못한 사람이 되어 있는 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다지 좋지 않을것 같았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는 이미 늦은 것'이라는 절반의 유머 섞인 명언이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세상은 빠르고 시기와 기회는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개인의 선택에 있어서는 고전적인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 해결책이지 않을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 혹 가장 빠른 것이 되지는 않더라도 내가 듣고 실천할 수 있을만한 때에 듣게 된거겠지. 그래, 좋다. 내가 이것을 언제나 기억하고 내가 하던대로만 선택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얼마 전,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집 근처의 체육관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있었다. 조용한 성격이지만 제대로 운동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조깅, 등산, 수영, 스쿼시 같은 운동을 즐겼는데 대학시절 재미를 붙였던 스쿼시 강습이 있어 신청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인원제한이 있는 강습에다가 인기가 있어서인지 기존 등록자들이 재등록을 하여 자리가 나지 않았고, 나는 다른 프로그램을 신청해야했다. 프로그램 중에 댄스 프로그램들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것 앞에서 하는 갈등이 시작되었다.


댄스라... 이 나이에 댄스? 대학교 1학년 때 과에서 체육대회를 위한 치어리더를 해본 것 외에 댄스라는건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는 장르인데 음.. 해, 말어.. 괜시리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 다시 다음달까지 스쿼시를 기다려볼까, 선택하기 좀 어렵네.


그러다가 내가 생각을 멈추면서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앞서 말한 김영하 작가의 강의가 생각나서였다. 이왕 나 자신의 틀을 깨 보겠다며 마음먹고 사는 거라면 선택의 긍정적인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 상책인것 같았다. 시간도 적당하고, 스쿼시 하기 전에 가볍게 몸 풀기로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연극 같은거에 소질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를 표현하는데 조금 적극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시나 하여 전화해서 신청하는 연령대를 물어보니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 그러니까 나보다 더 있으신 분들도 오신단다. 그래, 더 늦기 전에 안 해본 것도 경험해 보는거지 뭐. 해봤다가 아니면 그만두자.


약간의 기대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어색하게 느껴져 조금 늦게 쭈뼛거리면서 들어갔던 첫 날. 이미 음악은 틀어져 있고 강사 선생님을 따라 다들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얼떨결에 따라하기 시작한 동작들. 오, 이거 스트레칭 제대로 되네. 해볼만 하겠는데. 난생 처음 하는 동작들에 이어 요가매트를 펴고 복근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다리를 올리고 윗몸일으키기 하듯 상체를 올려야하는데 중고등학교 시절 받았던 단체기합 같다. 순간, 내가 에어로빅 수업에 잘못 들어왔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렇게 30분을 기초운동을 한 후에 그제야 댄스를 배우는 시간. 한 동작 한 동작을 알려준 다음 음악에 맞춰서 배운 동작들을 해본다. 첫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길, 한 번 그냥 시작해 본 재즈댄스가 참 신선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아, 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스트레칭, 복근운동을 고루 하는데다가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순발력을 동시에 기를 수 있는 운동이었기 때문이었다.


첫 날의 신선함으로 탑승 성공. 좌충우돌하며 댄스를 배우는 요즈음, 즐겁게 배우기 시작하니까 조금 더 잘해보고 싶어진다. 가끔은 남들은 잘만 하는것 같은데 나만 왜 이렇게 빨리빨리 적용이 잘 안되는 것처럼 느껴지는건지. 꼭 피아노를 배울 때 오른손과 왼손을 처음 같이 칠 때처럼, 팔만 하면 되는데 다리는 안되고, 다리만 하면 되는데 팔을 같이 하면 안되는 것 같다. 에라.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면서도 강사 선생님의 시범 영상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팔은 이렇게, 다리는 이렇게 하며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도 한다.


그렇게 석달이 지나던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의 성향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공부를 할 때, 그리고 피아노를 칠 때의 습관이었다. 학습도 연습에 있어서도 강의를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강의를 듣고나서 항상 처음부터 다시 책을 보았고, 안되는 부분은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다시 연습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조용한 곳에서 차분히 생각하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고 난 후 밖으로 내놓기를 원했고, 그것이 익숙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바로 배워서 적용해야 하는 댄스처럼,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도 그렇게 순발력 있게 해야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런 나의 성향으로 그런 장면들 앞에서는 다소 어색함을 발산하지는 않았던가 싶은 것이다. 아차, 싶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지. 여지없이 비어있는 부분이었고 다른 테크닉으로 익혀야 하는 부분들이었다. 둥그런 사람, 열려있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나는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할 수 있는대로 채워나가는 사람이고 싶고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변화를 위한 걸음을 걸어야 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이 선택이 변화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지 못하고 시작한 것이었지만 꼭 특별한 선물을 받게 된것 같다. 왜 다양한 선택을 해보는 것이 중요한지, 표면적인 선택 안에는 어떤 자아의 면들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외에도 사람은 전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한정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선택 자체에 대하여도 자신의 편견과 오만함으로 나름대로의 한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한 활주로를 차단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또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자신의 고립된 패턴을 넘어서는 선택을 하는 때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 경로는 한정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강력하게 내재되어 있었던 나 자신의 편식적인 선택 패턴이 타인을 향한 편견까지 형성하였음을 생각하게 되었던것 같다.


이제 재즈댄스를 시작한지 10월이면 4달째다. 운동이 되어서 좋기도 하고 이전에 내가 하지 않아왔던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만, 무엇보다도 갈 때마다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연습을 하고 내가 깨달은 것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더 없이 좋은 것 같다.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계단이니까. 언제나 그렇듯, 변화는 작은 것에서 큰 것에 영향을 미칠것이고 나는 이것을 핀포인트로 삼아 내 행동패턴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성실히 밟고 나가 멋지게 이륙한다면 하늘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듯, 지나가버린 나 자신의 모습도 멀어져 있겠지.


역시, 늦었다고 생각될 때도 늦은 건 아닌건가보다.




김혜진 님의 다른 글을 읽고싶다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편식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