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식물국회'의 진짜 주범은 국회선진화법이 아니다.

안구건조증 걸린 미소녀가 본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ㅣ 변효선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18 오후 4.20.15.png 청년백수 정치깡패


대학교 들어가서부터 뭔가 마음이 뒤틀릴 때마다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비판하는 건조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야구에도 같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뭔가 정치와 야구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같은 사안을 보고서도 같은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시선이 확연히 달라진다. 수비방해냐, 진루방해냐를 두고 전혀 의미 없는 싸움을 시작한다. 그것도 목숨 걸고. 연고지에 따라 팀이 갈린다는 측면도 많이 닮아있다.


작가 프로필 ㅣ 변효선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정치에 관심이 많아 정치부 기자를 하고싶다.




2011년 11월,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 최루탄이 등장하는 전대미문한 사건이 터졌다. 국민들 60%이상의 반대와 야당의 저지에도 한미FTA를 기습 날치기하려는 한나라당에 반발해 당시 민주 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최루탄을 투철한 희대의 사건이다. 물론 이 사건 말고도 제헌국회 시절부터 날치기 통과와 이를 막기 위한 폭력 사태는 끊이지 않았다. 몸싸움은 기본이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망치, 쇠사슬, 전기톱, 소화기에 이어 급기야 최루탄까지 등장했다. 이런 국회의 폭력사태를 저지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합의를 이끌어내자는 국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태어난 법안이 바로 ‘국회 선진화법’이다.


이런 국회 선진화법이 ‘식물 국회’논란으로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말까지 법안 처리율이 약 40%에 불과해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면서 그 원흉으로 ‘국회 선진화법’이 지목된 것이다. 이에 새누리당과 정부는 이 ‘국회 선진화법’ 개정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저조한 법안 처리율이 과연 국회법 제도의 문제인가 아님 대화와 토론 문화에 미숙한 정치권 전체의 문제인가 깊이 반성해봐야 할 문제다. 정부와 여당은 노동개혁법, 테러방지법, 경제활성화법 등 여러 쟁점법안의 국회 계류 상황을 목전에 두고, 연신 야당 탓만 하고 있다. 이를 통과시키기 위한 의미 있는 토론이나 설득 없이 막연하게 “통과만 시켜주면 어느새 경제가 살아날 것” 또는 “청년들이 학수고대 하고 있는 법안”이라는 식의 추상적이고 확신 없는 말들만 되풀이하면서 말이다. 경제활성화 30개 법안 중 이견이 없는 25개의 법안은 이미 통과 됐다. 남은 5개의 쟁점 법안이 통과되지 않은 원인은 반대하는 야당이나 다수당의 독단적 법안 처리를 제한한 국회법이 아니라, 반대 의원들을 설득하지 못한 발의자들에게 있다.


입증의 책임은 오롯이 주장하는 이에게 달려있다는 명제는 토론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의 하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안의 처리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법안을 발의하는 자는 법안 통과 시 얻어지는 사회적 후생과 법안의 필요성을 명확하게 입증하고 반대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토론과 합의는 없고 ‘호통’만 치고 있다. 실제로 지난 달 27일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21번 비난할 동안 여야지도부를 만난 횟수는 단지 2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법안 통과의 관건인 야당 지도부와의 만남도 딱 1번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길거리로 나가 정부주도의 경제활성화법안 처리에 대해 서명운동까지 할 정성이면 야당 대표를 직접 만나 설득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그럼에도 법안 통과의 관건인 야당 지도부와의 만남은 굳이 고사하고 허공에 대고 호통만 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여당 대표도 “일이라는 건 만나서 해야 발전이 되고 시너지가 나오지 않나. 그런 뜻을 오래 전부터 (대통령에게)여러 번 전했지만 잘 안되더라.”고 볼멘소리를 할 정도인데 야당대표와의 만남은 오죽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라도 제 역할을 제대로 해줬다면 불행 중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다. 현행 국회선진화법을 존속시키겠다는 당론을 정했다면 그 제도를 존속시키기 위해 현행 제도 안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어야만 했다. 현행 국회 선진화법 제도와 현 정치권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법안 통과율이 최저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만일 야당이 진정 현 제도를 지키기 위한다면, 법안 통과율을 높이기 위해 대화와 토론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들이 대화와 토론에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중앙일보가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정기국회 개원일 이후 야당은 23번의 의원총회 중 공식적 정책 의총은 단 한번 뿐이었다. 나머지 의총은 투쟁이나 당 내분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다고 한다. 국회 선진화법을 고수하려는 야당마저도 정책 조율에 관련한 적극적인 토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정책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직접 TV토론에 참여하고 칼럼까지 써가며 설득했던 오바마 대통령, 재임 중 1023회나 기자회견을 했다는 루스벨트 대통령, 매일 출퇴근길에 부라사가리(매달리기 기자회견)에 응하는 아베 신조 총리, 무려 5시간의 기자회견 동안 106개의 질문을 소화했다는 푸틴 대통령까지.(*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설득의 기회’ 참고함)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이들의 반만큼이라도 대화와 설득을 위해 애썼다면 과연 19대 국회는 식물국회가 됐을까. 정말 망국적인 것은 죄 없는 국회선진화법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에 미숙한 정치인 본인들이라는 것을 왜 간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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