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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Dec 14. 2017

술값은 누가 낼까

술시에 만나요 ㅣ 윤성권

재생에너지 연구원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친구 셋이서 술을 마셨다. 1차는 성호가 냈다. 그리고 2차는 정서가 냈다. 그럼 3차는? 당연히 내가 낼 차례이지만, 2차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셔버린 관계로 3차까지는 가지 못했다. 다음에 내가 사기로 했다. 몇 개월 시간이 흐르고, 다시 셋이서 술을 마셨다. 축하할 일이 있다고 해서 정서가 1차를 냈다. 그리고 2차는 내가 냈다. 이렇게 한 번씩 돌아가면서 술값을 내는 게 얼핏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 상당히 불편하다. 만약 1차에 횟집에 가고 2차에 고깃집에 갔는데 3차에 봉구비어를 갔다면 과연 그것이 모두가 공평하게 술값을 낸 것일까? 모두가 더 즐거워지는 술자리가 되기 위해서 술값을 내는 방법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대학 시절 어느 날 친구가 아르바이트 월급을 받아서 한턱 쏜다고 했다. 그 자리에는 나를 제외하고도 여러 명이 있었다. 그 친구가 낸다고 했지만, 술값이 많이 나왔기에 우리가 돈을 조금씩 걷어서 친구에게 주었다. 그 친구는 본인이 다 내지 못해서 미안해했다. 근데 얻어먹은 우리도 미안했다. 즐겁게 술을 마셨는데 모두가 미안해지기만 했다. 그 친구에게 술을 한 번 살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왔다. 근데 술자리에는 그 친구를 포함하여 또 여러 명이 있었다. 계산할 때 다들 현금이 없는 관계로 내가 카드를 긁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만 대접하고 싶었는데, 얼떨결에 모두에게 대접한 꼴이 되었다. 며칠 후, 여러 명 중의 한 명이 전화를 했다. 지난번에 얻어먹은 것도 있어서 한잔 사겠다고 한다. 역시 이번에도 여러 명이 있었다. 결국에는 술값이 모자라서 부족한 금액을 또 내 카드로 긁었다. 사실 처음부터 한 사람이 내지 않고, 똑같이 술값을 냈더라면 미안한 마음도 없고, 술값이 많이 초과할 일도 없었을 텐데. 안타깝다.


지금까지 술을 천 번 이상 마셔보니 술은 마시지 않는 게 가장 좋다.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한다면 자기가 먹거나 마신 만큼 돈을 내는 일종의 술값 종량제를 추천해본다. 술값 종량제는 여러 장점이 있다. 첫째, 주문하는 데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간혹 누군가 술값을 낸다면 술과 안주를 주문하는 데 눈치를 봐야 할 때가 있다. 왠지 술값을 내는 사람만이 주문해야 할 것 같고, 술과 안주가 먹고 싶어도 그 사람에게 허락을 맡아야 할 것 같다.


둘째, 배가 부른데도 술과 안주를 억지로 먹을 필요가 없다. 위의 설명과 같이 봉구비어에서 술값을 내기로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횟집, 고깃집 모두 비쌌을 텐데, 여기서 너무 싸게 먹으면 내가 좀 미안한데”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봉구비어에서 횟집과 고깃집과 비슷한 수준의 술값을 내려면 술도 상당히 많이 마셔야 하고, 안주도 적지 않게 시켜야 한다. 더구나 1차, 2차를 거치며 배가 부른 상태이기 때문에 술과 안주를 많이 남길 가능성이 크다.


혹시 술값 종량제가 더치페이와 무엇이 다른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술값을 나누어 낸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더치페이도 결국에 같은 자리에서 많이 먹고 마신 사람이 유리하기 때문에 결코 공평하지 못하다. 또한, 술값을 나누어 낸다는 행위가 상당한 가격방어 효과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본인이 평소에 비싸다고 생각한 안주를 시킬 수도 있다. 또 그것을 본 사람이 자기도 먹고 싶은 것을 시키고 이러한 핑퐁이 몇 번만 왔다 갔다 하면 술값만 천정부지로 상승한다. 그래서 술이든 안주든 자기가 먹고 마신 만큼만 내는 술값 종량제를 도입을 권장해본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조만간 한잔하면서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정치인, 기자, 국세청 공무원이 같이 술을 마시면 술값은 누가 계산할까? 지금은 김영란법으로 각자 계산하겠지만, 그 전에는 가게주인이 계산했다고 한다. 우리는 정치인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고, 국세청 공무원도 아니라서 가게주인이 우리 술값을 계산해줄 리가 없으니 혼자 술값을 내서 서로 미안해지지도 말고, 더치페이 한다면서 술값만 상승시키지도 말며, 그 적당한 선을 찾는 데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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