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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Dec 14. 2017

설명충

한 시간 소설 ㅣ 신정훈

호주 멜번의 청소부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지수와 한겸은 커플이다. 지수는 예뻐서 인기가 많고, 한겸은 평범한데 인기가 많다. 이 소설에서 그들의 인기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독자들이 각자의 지수와 한겸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둘은 31살 동갑으로, 낭독회에서 만나 3 년 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낭독회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소재다. 서로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건강한 이성 교제를 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그들은 주말마다 서점에 들러 반나절 동안 책을 읽는다. 허기지면 중간에 나와 편의점 김혜자 도시락을 먹는다. 큰 돈 들지 않는 데이트다. 편의점 도시락은 그들의 검소함을 보여주는 소재다. 


한겸은 개인 사업자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리는 젊은 사업가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그는 느긋하고 조용해서 사업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홍대에 자기 명의로 된 곱창집과 압구정에 코인 노래방을 운영중이다. 20살 때 대학을 가는 대신 사업을 시작했다. 밑바닥부터 정상까지 올라가는 성공 스토리는 아니다. 한겸은 중산층으로 돈에 대한 큰 열망이 없었다. 어쩌다보니 장사를 하게 되고 돈을 벌게 됐다. 시작 단계부터 데리고 있던 동생들을 각 매장의 점장으로 채용했다. 그가 하는 일은 돈 계산과 직원들 월급 주는 것이다. 세세한 일은 동생들이 맡아서 처리하고 있다. 이삼일에 한 번 가게에 들러 직원들과 이야기하고 분위기 보는 정도다. 직원들이 벌어주는 돈 받으면서 다음 사업을 구상 중이다. 아마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세 번째 사업을 시작하진 않을 거다.


지수는 백수다. 크게 중요한 설명은 아니다. 임팩트를 위해 문단의 첫 문장으로 썼다. 1 년 전까지는 회사원이었다. 성균관대 문예 창작과를 졸업하고 중소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구체적인 대학명을 적은 이유는 후에 나온다.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야근도 없고 근무 강도도 힘들지 않았지만, 급여가 짜다. 30년 장기 근무해서 이사가 돼도 월 400 정도밖에 벌지 못 한다. 이 문장은 사족이다. 지수도 크게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 매일 책 읽고 글 쓰는 한량 생활하고 싶어 그만뒀다. 부모님은 한남동에서 작은 가구 소매점을 하는데, 벌이가 괜찮다. 공교롭게 둘 다 중산층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다른데 집중할 수 있다. 지수는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 생활을 유지한다. 부모님과 같이 살아 별도로 식비와 집세가 나가지 않는다. 한달에 50만원을 받는데, 만족스럽다. 데이트에 지출이 많은 편도 아니고, 가끔 해외여행 등의 큰 돈 쓸 때는 한겸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둘은 시간이 남아돈다. 아침형 인간으로 7시쯤에 기상한다. 집도 가깝다. 한겸은 홍대, 지수는 한남동에 산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책과 노트북을 챙겨 한남동 개인 카페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여름이라는 곳으로, 낭독회 여성 회원이 운영하는 카페다. 8시쯤에 도착해서 카페 오픈을 도와준다. 그 후에는 브런치와 그날의 커피를 마신다. 보통 10시가 넘으면 유명인인 사장을 보기 위해 온 손님으로 카페는 만석이다. 사장은 한겸과 지수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들이 오래 자리를 차지해도 별말 하지 않았다. 되려 아르바이트생에게 일을 맡기고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글쓰기는 소설의 핵심 소재다.


동호회 활동도 그곳에서 이뤄진다. 매주 일요일 오후 7시에 모여 그 주의 도서를 소리 내 읽는다. 지수는 힘 있는 목소리로 전달력이 뛰어나다. 한겸은 상대적으로 느긋느긋 읽는다. 그리 큰 소리는 아니지만 묘한 울림이 있어 동호회 회원들은 한겸의 낭독을 좋아했다. 처음엔 모두가 한겸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동호회를 만든 금새난은 한겸의 존재가 달갑지 않았다. 금새난은 중요한 인물이다. 동호회 가입 절차는 까다로웠다. 그것은 금새난의 동호회 설립 취지와 관계 있었다. 교양 있고, 돈 잘 버는 상류 지식인 모임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한겸의 존재는 동호회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올해로 37인 금새난은 골드미스다. 이 문단은 금새난을 위해 쓰여질 것이다. 유명한 인터넷 수능 강사다. 모임을 만든 4년 전에도 그녀는 잘나갔다. 억대 연봉을 버는 수능 언어 영역 강사였다. 그녀의 남편은 성형외과 의사였는데,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혼했다. 지적이고자 하는 욕구가 상당한 그녀였다. 사회적 지위와 다르게 무식한 남편이 꼴보기 싫어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했다. 금새난은 어릴 적부터 작가와 결혼하는 것이 꿈이었다. 부모의 등쌀에 못 이겨 선을 보고 결혼했지만, 남편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커 보니 궁핍한 작가의 삶이 멋져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문학적 소양도 있으면서 경제력도 뛰어난 사람이 그녀의 이상형이 됐다.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만든 모임이 낭독회다. 


금새난은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똑똑한 여자였다. 무엇이 돈이 될지 알고, 행동했다. 매일 새벽마다 헬스에서 몸매를 관리하고, 주기적으로 피부과에서 레이저 치료를 받는다. 얼굴 공사는 인터넷 강사가 되기 전에 끝냈다. 인기 강사는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실력에 외모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녀는 수술한 가슴의 골을 살짝살짝 비춰 학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외모와 실력, 열정 3박자가 맞아떨어졌다. 데뷔하자마자 학원 최고의 인기 강사가 됐다. 관리 덕분에 가끔 20대로 오해받는다.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인기 인터넷 강사인 금새난이 낭독회를 열겠다고 하자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그녀는 수강생 외에도 팬이 많다. 개인 SNS에 모집 공고를 올렸다. 설명란에 문학을 사랑하는 2, 40대 남녀를 대상으로 하며, 직접 쓴 문학 독후감(비평)을 하나씩 보내달라고 적었다. 읽는 것뿐만 아니라 그 후에 토론도 하기 때문이었다. 독후감과 함께 간단한 자기소개 (출신 대학, 직업)을 첨부하라고 했다. 욕을 많이 먹긴 했지만, 똑똑하고 돈 많이 버는 남자 만나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감수했다.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이 아니거나 변변찮은 직업이 없거나 혹은 쓴 글의 수준이 낮은 경우 가차 없이 쳐냈다. 그렇게 추려서 10 명의 인원이 선발됐다. 너무 남자만 뽑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여성 회원도 2명 뽑았다. 들러리 역할 할 사람으로 뽑았는데, 그중 한 명이 지수다. 들러리 2는 이 소설에서 비중이 없다.


첫 모임에서 의사, 변호사, 대기업 직원, 방송 PD 등의 인물이 모였다. 까다롭게 선별한 만큼 다들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했고, 달변이었다. 사르트르의 구토를 첫 책으로 골랐다. 모두 낭독하고 그 후에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예술, 철학, 과학, 역사, 경제 등의 전문 분야의 지식을 한껏 뽐냈다.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대화가 이뤄져 만족스러웠다. 금새난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만찬이었다. 어떤 음식을 고를까 천천히 고민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현재 진행 중이다. 


금새난과 동갑이기도 한 카페 여름의 여채연 사장은 자신을 낭독 모임에 끼워주는 것을 조건으로 매주 장소 제공을 허락했다. 이 문단은 이채연을 다룰 것이다. 카페를 운영하며 시사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그녀는 모임에 흥미를 느꼈다. 그녀는 호감 가는 외모로, 종종 TV에 시사 전문 패널로 참여했다. 특이한 직업과 이력으로 업계에서 유명했다. 첫 모임을 옆에서 지켜보고 참여를 결심했다. 첫 모임에서 30만 원의 자릿세를 받았는데, 자신을 회원으로 넣어주는 것으로 추가금 없이 장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실력 있는 칼럼니스트가 참여하는데 반대를 할 사람은 없었다. 금새난을 제외한 모두 대환영했고, 금새난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받아줬다. 두 여성의 장미 전쟁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큰 사건은 없었다.


3년 전, 한겸의 방문은 우연했다. 그는 주로 눈치 보지 않고 오래 앉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의 단골이었다. 동생들이 가게를 잘 운영해주는 덕분에 여가를 즐길 수 있었다. 그는 병적으로 독서를 했다. 하루 10 시간 책을 읽고, 남은 시간엔 책 관련 팟캐스트를 듣거나 인터넷에서 문학 평론을 읽었다. 독서는 그의 오랜 취미였다. 20살부터 정신없이 일하느라 책을 많이 읽지 못 했다. 막 여유가 생긴 당시, 보상으로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책을 읽고 있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부터 서점에 들러 책을 샀다. 편하게 읽기 위해 프랜차이즈 카페를 갔는데 내부 공사로 문이 닫혀 있었다. 빨리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평소라면 가지 않을 개인 카페에 향했다. 프랜차이즈 카페와 한 블록 떨어져 있는 곳에 '여름'이 있었다. 마침 예쁜 사장님이 가게를 열고 있었다. 한겸과 채연의 나이는 6살 차이가 난다. 러브라인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차지만, 히로인은 지수다. 앞으로도 채연과 두근두근한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들어가도 괜찮나요?"

"일찍 온 손님이네요. 네 괜찮아요. 근데 제가 오픈하느라 당장 커피는 못 만드는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책 읽는 게 목적이라서요. 아,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데, 이 책 다 읽을 때까지 카페에 있어도 괜찮나요?"

"네. 그럼요. 괜찮아요. 천천히 읽으세요"

"괜찮다니 다행이네요. 괜찮은 곳이네요."


채연은 한겸의 장난스러운 대답이 재밌었다. 한겸은 프랜차이즈 카페와는 다른 편안함을 느꼈다. 눈치 주지 않고, 가끔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사장님이 마음에 들었다. 그날부터 여름은 한겸의 단골 카페가 됐다. 그녀가 유명한 칼럼니스트라는 사실과 낭독회의 존재는 그 후에 알게 됐다. 복선과 구체적인 인물도를 미리 설명해서 긴장감이 떨어진다. 주인공 한겸을 둘러싼 루즈한 이야기가 2편에서 이어진다. 어쨋든 한겸은 특별하니까 그 특별함을 드러내면 어느정도 재미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부 끝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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