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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Dec 14. 2017

수압을 견뎌낸 후에

피아노치는 간호사 ㅣ 김혜연

간호사 
저의 키워드는 행복입니다.결국 모든 것이 이 길 위에 있더라구요.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사람도, 글과 음악, 인생의 목적과 같은 것들이 행복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프로필ㅣ 김혜연 


피아노를 전공하고 이후 간호학을 공부하였음.

피아노 치는 간호사  

복지와 힐링에 관심이 많음




Cinema Paridiso

Ennio Morricone

San Marco's square      


영화 시네마천국의 OST인 "Love Theme"이다.  영화음악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꼬네의 작품으로 원곡을 바이올린, 첼로로 편곡된 연주는 물론이고 가사를 붙인 노래로도 수없이 많이 불려지는 곡. 클라리넷의 주제 선율이 시작될 때,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는 가슴에 물들어가고 아련함이 밀려온다.


시네마 천국..

 풋풋한 십대에 가장 처음으로, 인상 깊게 보았던 로맨스 영화였다. 맛있는 음식도 처음 먹었을 때 가장 맛있었다고 기억되는 것처럼 수많은 로맨스 영화를 보았지만 내게는 이 영화가 최고의 고전 로맨스였던것 같다. 


 고등학생때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토토와 엘레나가 학창시절 만나 사랑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이나 설레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 중 특별히 좋아했던 장면이 있다. 바로 토토가 비디오 카메라로 엘레나를 찍은 모습을 틀어보면서 사랑에 빠진 눈빛으로 알프레도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었다. 초점이 잘 안잡혔다며 반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토토가 바라보고 있었던 엘레나. 흑백필름에 담긴 그녀는 너무나 예뻤고 그 땐 '나도 저렇게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어릴적 똘똘하고 영리했던 토토는 가난하게 자랐지만 저돌적인 면이 있었다. 영화관에서 살다시피 하던 어느날 엘레나가 보여 달려가 인사를 하며 날씨가 좋지 않냐고 어색하게 말을 건네는데 하필 천둥이 쳐서 바보가 되기도 했던 토토. 끊임없이 엘레나와 마주칠 궁리를 하던  그는 급기야 고해성사를 하러 온 엘레나에게 신부님인척 들어가 '내가 너를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매일 저녁 토토는 엘레나의 창문 앞에서 기다린다. 날씨가 좋든 좋지 않든 매일저녁 엘레나의 창문 너머로 토토가 보였고 엘레나는 그런 토토를 지켜보았다. 날마다 달력에 X자를 표시해야 했던 기나긴 토토의 기다림. 새해가 밝고 이 모든 것이 소용없다고 생각하려던 찰나, 이젠 바닥이 났다고 생각했던 기다림의 연료가 그동안 흘러흘러 엘레나의 마음에 사랑을 채워졌던 것이었는지 둘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래 가지 않는다. 엘레나의 아버지가 둘 사이를 알게 되면서 이 둘을 떼어 놓기 위한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엘레나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토토와 도망을 가려고까지 마음먹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게 되고, 너무나 서로를 사랑했던 두 사람은 엇갈림 속에 헤어지게 되고 만다. 엘레나를 만나지 못한 토토는 머무르면 결국 아픔만으로 둘러싸이게 될 고향을 떠나고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 돌아오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관여했던 알프레도가 남긴 말 중에 의미심장한 두 마디가 있다. '운명은 하늘이 정하는것'과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는 것이었다. 이 두 마디의 베일은 마지막이 되어서 모두 밝혀지게 되는데 서로가 얼마나 찾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엇갈리게 되었는지를 알게된다. 서로를 마음으로부터 떠나보내지 못했지만 각자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토토와 엘레나. 알프레도의 죽음으로 토토는 고향으로 돌아와 그가 남긴 마지막 필름을 받아가는데 그 필름을 보면서 토토는 눈시울을 적신다.


글을 쓰기 위해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키스씬 모음을 보면서 어렸을 땐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속으로 '어떡하지 어떡하지, 왜 안 끝나'하면서 봤었는데 그 장면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는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가는듯 하다.


 마음에 두고 있었던 사람, 또는 사람들을 떠난다는 것은 고통이 한계치를 넘어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따를 경험했던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는것, 직장생활이 힘들 때 이직을 하는 것, 그리고 몸 담고 있던 모임을 떠나는 것도,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내게도 십년을 넘게 함께 했던 사람들을 떠난 경험이 있다. 함께 한 시간 속에서 고마움도 있었고 좋은 기억들도 있었지만 고통이 그것들을 넘어서게 되어 떠나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고통속에 계속 갇힐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떠나기로 마음 먹었어도 오랜시간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기에 한동안 너무나 힘들어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뭘 그렇게까지 마음을 썼을까 싶지만 그땐,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났고 때론 나를 원망하고 때론 그들을 원망했다.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내가 나의 삶을 살 수 있는 때가 오자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연속성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라 과거가 만든 현재에 살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거는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이상 완전히 지울 수 없으며, 언제나 좋은 기억과 아픈 기억들은 공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내가 약해져 있을 때, 또는 지난 과거의 미약함과 올라서지 못했던 어떤 것들로 인해 고통이 자신을 추스릴 수 없게 만든다면, 사람은 자랑스럽게 현재를 이어갈 수 없어 헤어짐과 떠남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을. 아니, 어쩌면 그것을 선택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간의 강물 위에 놓인 종이배처럼 삶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깨닫고 알아간다. 마치 배움이 우리의 숙명인듯이. 또한 성숙해 간다는 것은 시간을 수반하는 단어이며 어떤 종류이든 아픔의 깊이를 알 때 우리는 성숙해질 수 있다. 고통이라는 것이 정처없이 흘러가는 삶의 길에서 지나가야 하는 숙명이라면 그 흐름 가운데 나를 맡겨야 하는것은 아닐까. 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견딘 벼들이 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이듯이 성공도 실패도,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아픔도 겪으며 우리는 삶에 대한 초연함과 사랑에 대한 깊은 의미를 가슴에 지니게 되는 것은 아닐런지. 어쩌면 깊은 심호흡을 하고 바닷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그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수압을 느끼고, 그 깊은 곳에서 나만이 볼 수 있는 어떤 것들을 취해야 한다는 귀중한 가르침이 숨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물 위로 올라왔을 땐, 여전히 삶은 흐르고 있었고, 계속 되어야 했고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되는걸까.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에는 지난 시간 그가 보았던 영화에서 잘려나간 부분들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그의 젊은 시절 함께 했던 영화들에는 그의 삶의 모습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고 그 짧은 필름들과 함께 자신의 삶이 함께 돌아갔을 것 같다. 뼈속까지 깊이 배어 들었던 사랑의 기억과 이루지 못한 아픔은 그의 삶에서 다른 사랑을 만날 수 없게 만들었었다. 게다가 자신을 속이고 헤어짐에 관여했던 어른, 알프레도의 행동에 대해 그는 원망조차 쏟아부을 수 없었다. 그의 죽음과 함께 무너져내렸던 Cinema Paradiso 극장처럼 과거는 고통스럽게 묻혀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 잔인한 운명이여. 그렇듯, 아프게 살아왔던 30년..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아직도 남아있는 사랑의 감정들이 고통으로 남겨져 있을지라도,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그리고 현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을 생각하는 배우의 눈물 가득한 눈빛은 비록 짧게 지나갈지라도 보는 이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 눈빛 연기가 이 영화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알프레도의 말처럼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아물지 않은 사랑의 상처를 확인하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헤어졌던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어 더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현재를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그 깊고 차디찼던 시간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라는 엄청난 수압을 견뎌야 했던 토토가 드디어 물 위로 올라왔던 순간. 그가 무엇을 발견했을지는 각자가 생각해야 하는 오픈엔딩인것 같다.


 문득, 영화 속에서 그 둘이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어떤 이야기들이 탄생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긋난 사랑의 흔적을 찾아 먼지 가득한 영화관을 뒤졌던 토토가 안쓰럽지 않게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졌었더라면 과거는 그렇게 고통스럽게 묻히지 않아도 되었을까.


상상의 나래는 나와 글을 읽는 여러분들께 맡기고 오늘 듣는 OST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이 명작에 삽입된 OST인 "Love Theme" 원곡은 마지막 장면에서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과 함께하는 토토의 모습의 배경이 되었는데 클라리넷은 그리움의 연기처럼 우리를 그의 과거로 끌고 들어가 삶을, 사랑을, 아픔을 그려내는듯 하다. 아름다운 플룻소리와 애틋한 바이올린의 짧은 솔로 패시지도, 오케스트라의 로맨틱한 합주도 그 마지막 장면을 얼마나 함축하여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 꼭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이 음악이 모조리 그려내고 있는것 같다.  그렇기에 원곡을 무척이나 좋아 하지만 이작펄만의 바이올린 연주, 그리고 첼리스트 요요마와 트럼피스트 크리스 보티의 콜라보레이션 연주도 정말 매력적이라 추천하고 싶다. 시간이 되시면 한번 들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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