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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Apr 01. 2018

예식장에서

술시에 만나요 ㅣ 윤성권

재생에너지 연구원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난 언제부턴가 결혼식에 가면 술을 마신다. 오해는 마시라. 식장에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당연히 피로연장에서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당사자들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이다. 결혼식은 일생일대의 잔칫날인데, 밥만 먹고 돌아가기에는 왠지 심심하다. 함께한 사람들, 당사자들과 술 한잔 기울이는 것도 없다면 너무 삭막할 것만 같다. 나도 처음에는 예식장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결혼식장에서는 나이 먹은 아저씨들이나 술을 마신다고 생각했다. 또 시끄럽게 떠들면서 술 마시는 모습이 그리 좋게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행렬에 진입하고 말았다. 어른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면 꼭 술을 건네준다. 그걸 받아놓기만 하고 마시지 않을 수도 있지만, 굳이 마시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한잔, 두 잔 마시다 보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특히 결혼식은 대부분 낮에 진행되기 때문에 예식장에서 마시는 술은 낮술이다. 낮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설명하지 않겠다. 사실 본격적으로 술을 마신다면 예식장만큼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냉장고에 술이 가득 있을 뿐만 아니라 맛있는 안주들이 저기 즐비하다. 또 친구들, 친척들같이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사람들이 있으니 술자리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 이후에 나는 예식장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밥도 먹었다. 예식장 피로연장은 일반적으로 뷔페식이다. 종류가 많다 보니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이 많다. 배가 고파서 다 먹고 싶은 욕심에 음식을 조금씩 담다 보면 어느새 접시는 가득 찬다. 거기에 기분 좋게 술도 한잔 마시다 보면 엄청난 과식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과식을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고, 결국 술을 선택했다. 이제는 피로연장에서 주로 술을 마시기 때문에 다른 음식은 제쳐두고, 접시에 가벼운 술안주만 담아서 가져온다.


결혼식은 다양한 곳에서 진행되다 보니 여러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얼마 전 교회에서 진행된 결혼식에 갔다. 교회이기 때문에 당연히 술이 없을 거로 생각했지만, 술을 발견하고 너무나 기뻤다. 아마도 주최 측에서 나 같은 비기독교인들을 위해서 술을 조금 준비해둔 것 같다. 교회 같은 종교기관에서 치르는 결혼식에서도 술을 찾을 정도로 주정뱅이는 아니지만, 이번 경우와 같이 이미 술이 준비되어 있는 경우에는 굳이 마다하지는 않는다. 결혼식장에 혼자 간적 도 많은 데, 나는 그때도 술을 마신다. 다시 언급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당사자들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 혼자 궁상떨 필요는 없기 때문에 한두 잔 정도만 마신다. 지방에서 진행되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주최 측에서 마련한 버스에서도 기회가 되면 술을 마신다. 보통 결혼식 전세 차량은 떡이나 과일 등을 준비해주는데, 어른들이 많은 경우에는 술과 안주를 준비하기도 한다. 통영 결혼식에 참석한 다음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셨다. 물론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함께 술을 마셨다. 사람들이 차에서 술을 마시면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다. 일단 술 냄새가 많이 나고,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휴게소에 자주 정차하기 때문에 도착 시간이 늦어진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날도 휴게소에 3번 정도 정차했고, 갓길에 2번 정도 차를 세웠던 것 같다.


하여튼 예식장에서 술 마시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다른 사람들도 눈치 보지 말고 즐겁게 술을 마시면 좋겠다. 물론 결혼하는 주인공들을 축하해주는 의미로 말이다. 또한 더 이상 결혼식장에서 술 마시는 것을 가지고 이상하고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연어 먹겠다고, 스테이크 먹겠다고, 케이크 먹겠다고, 과일 먹겠다고 시끄럽게 떠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 가끔은 더 이상하다. 누가 보면 굶고 다니는 줄 안다.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하다. 한 잔만 더 마시고 돌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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