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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Jun 05. 2018

결혼 축사

즉흥현상곡 ㅣ 신정훈

호주 멜번의 청소부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낭독에 앞서 신랑과 저의 친분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비행기 티켓 110만 원, 추가 교통비 40만 원, 호주 출국 비자 신청비 25만 원 변호사 수임료 30만 원, 임시 고용 직원 급여 100만 원, 선물값과 축의금 별도. 결혼식 보려고 쓴 돈입니다. 이만큼 친합니다. 낭독을 시작하겠습니다.

올해는 경사스러운 한 해다. 너와 내가 청첩장 돌린 해이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바람이 매섭던 겨울의 한가운데서 나는 너보다 조금 일찍 결혼했다. 청소부와 문화재 전문가의 결혼은 한 쪽으로 쏠린 시소처럼 보였다. 포터 타는 우리 아버지와 기사 딸린 제네시스 타는 장인의 관계처럼. 신랑 측 식권 50장, 신부 측 식권 300장을 인쇄했다. 화환과 하객으로 북적이는 신부 측 접수대에 비해 신랑 측 접수대는 초라할 예정이었다. 결혼 당일, 너는 관둔 회사 샘표의 이름으로, 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애사심의 '애'자도 없을 한전의 이름으로, 한 번 뵌 적도 없는 아름 씨 아버님의 회사 이름으로 화환을 보냈다. 터무니없는 상황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효과는 확실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화환이 아니라 이 정도로 나를 깊이 생각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속으로 말했다. 저는 아주 믿음직한 친구 권혁준이를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신랑감이 됩니다.

우리는 이십 대 초반에 만났다. 누군가는 오래된 친구가 진짜라고 말한다. 학창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특권을 이유로 말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네가 그 근거다. 관계의 진위 여부를 나누는 게 유치하지만, 그래야 한다면 우정에 개런티 카드 쓸 수 있다. 보증기간은 길다.

잘난 친구의 존재가 너를 빛낼 수 있다면, 나는 여기서 기꺼이 잘난 척을 해볼까 한다. 6년 동안 외국물 마신 티도 낼 겸, 영어로 축사를 잇겠다. Yesterday all my troubles seem so far away.
Now it looks as though they're here to stay. Oh, I believe in yesterday. 백년해로하라는 뜻이다. 경사스러운 날이라 너스레를 떨어봤다. 감동 전에 웃기는 문학 작법이다.

너를 처음 본 곳은 가락시장역 앞 SK 브로드밴드 기술부서 콜센터였다. 2011년 너는 군을 전역해 개학을 기다리고, 나는 잘 안 되는 쇼핑몰을 붙잡고 있는 시기였다. 상담 교육에서 본 너는 조용하고 진지했다. 촌스럽고, 웃기지도 않아 친해질 마음이 안 생겼다. 그러나 딱히 같이 어울릴 사람이 없어서, 만만한 너에게 같이 편의점에 가자고 권유했다.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자 네가 제법 쓸만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임을 알게 됐다. 같이 석촌호수에 산책하러 갈 자격이 있었다. 유니클로를 돌아 보고, 쇼핑몰에서 팔다 남은 재고를 선물했다. 덕분에 재학생인 양 건대 학식도 몇 번 먹었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서도 연락을 이어갔다.  

너의 배웅을 받으며 인천공항에 왔던 날, 2년 치의 인사를 한 번에 했다. 그날 난 상상하지 못 했다. 브리즈번 김치공장에서 배추 염장하는 너의 모습을. 며칠 뒤 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로 왔다. 김칫소 만들고 돌아온 너에게 나는 팔다 남은 스시와 튀김을 제공했다. 둘 다 부족한 영어 탓에 엉망인 처우를 받았지만, 함께 있다는 사실은 위안이었다. 네가 몇 푼 더 번다고, 한국인 없는 호주 시골로 가자 이번엔 내가 너를 따랐다. 평균 온도 40도의, 이렇다 할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탄광촌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지냈다. 너는 빵 공장에서 빵을 만들었다. 간밤에 얼린 물병 6개를 챙겨 빵집으로 향하는 너의 걸음은 무거웠다. 네가 한숨처럼 토해낸 담배 연기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중노동으로 예민한 너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 또한 지나간다며 서로 기운을 북돋았다. 네가 빵집을 쉬는 날엔 동네를 거닐었다. 길 위에서 잘난 몇 년 후를 그렸다. 나는 호주에 남아 사업과 학업을 병행하며 마음의 양식과 진짜 양식 두 가지 다 먹을 거라 했고, 너는 잘 나가는 비트메이커가 되거나, 혹은 연예 기획사 전문가가 될 거라고 했다. 서른하나의 우린 생각과 다른 모습이다. 나의 사업과 학업은 어느 하나 완벽하지 않고, 너는 비트 메이커 대신 엑셀과 워드 만지고 있다. 그러나 너나 나나 나쁘지 않게 살고 있다.

가끔 현실은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 같다. 너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가족의 비보를 듣게 됐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당장 호주를 떠나야 했다. 몇 분 전까지 크리스마스니 궁상떨지 말고 스테이크 썰며 맥주 마시자고 들뜬 우리였다. 극적인 전개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 시간 동안 함께 길을 걷고 흐느끼는 너의 어깨를 토닥이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행인 점은, 부조금 명목으로 한국행 티켓을 사줄 돈이 있었단 것이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봤다는 말에 안도했다. 

그 뒤로 몇 년, 한국에서 너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버텼고, 그 결과 일과 사랑을 쟁취한 욕심쟁이가 됐다. 재작년 한국에 방문했을 때 너는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했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보니 너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이제 그녀는 너의 부인이 된다. 감개무량하다. 

너는 깊이 생각하고 상대를 위할 줄 안다. 한마디로 진국이다. 유유상종은 사실인가 보다. 항상 응원한다. 아름 씨와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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