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신념 or 합리적 의심

공기반 철학반 ㅣ 흄, 칸트

by 한공기

신도 과학도 신념에 불과하다


1. 모든 것을 의심했던 데카르트는 <나는 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절대적인 공리를 남겼다.


2. 그것이 의심하기 힘든 진리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만으로서 우리가 추구하는 철학이 완성되지는 못했다. 데카르트의 공리는 '우리는 철학적사고를 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는 진리의 문을 여는 열쇠같은 역할을 했을 뿐 그 다음의 길을 넓혀주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데카르트 철학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비판 속에서 새로운 철학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3. 대표적인 것이 흄의 경험론이다.


4. 그것은 '사람 안에서 떠오르는 지식이나 관념은 모두 경험에서 온 것에 불과하다'는 사고방식이다.


5. 흄은 데카르트의 <나는 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논리를 다음과 같이 반론했다. "분명 의심하는 나의 존재는 확실할지 몰라. 하지만 '나'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데카르트의 '내가 있음'이란 표현은 마치 내가 육체에서 떨어진 혼이나 영 같은 정신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원래 나라는 존재는 '다양한 지각의 집합'에 불과해. 결국 '나'란 존재는 어떤 때는 쾌적하고 또 어떤 때는 아픈,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지각(경험)이 지속됨에 따라 생겨나는 유사적 감각에 불과하지.


6. 흄은 데카르트가 확실히 있다고 말한 '나'의 정체성이 사실 경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데카르트가 주장한 "내가 명헉하게 인식한다는 사실은 확실히 존재한다."에 이의를 제기하며 "이런 생각이 진짜 현실과 일치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라는 말을 했다.


7. 흄은 신에 대한 인식마저도 인간의 '복합관념'이라고 주장한다. 즉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또 과학조차도 인간의 경험에 불과한 것이지 절대적인 법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흄은 이처럼 '자아','신','과학'의 절대성을 부정했다.


칸트

세계의 진정한 모습은 알 수 없다


1. 칸트는 데카르트처럼 이성을 신봉하는 합리주의자로서 인간은 이성을 충분히 이용하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흄의 철학을 접하고 충격을 받는다.


2. 칸트는 흄의 "모든 지식이나 관념은 인간이 경험해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의문을 가졌다. 칸트는 어째서 수학이나 논리학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통하는 학문이 존재할까? 생각하면서 모든 인간의 경험이 달라도 인간만의 특유한 형식(경험에 좌우되지 않는 타고난)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3. 칸트는 인간 사이의 공통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4. 칸트는 인간만의 프로세스가 반드시 존재한 다는 것을 믿었고 인간은 공간과 시간을 동일한 방식으로 인식한다는 것에 확신을 품었다. 그러면서 칸트는 인간만의 보편적 진리와 학문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5. 하지만 칸트가 말하는 진리란 '인간만의 진리'를 의미한다. 칸트는 이 진리를 다른 종의 생물과 절대 공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로 칸트는 인간이 세상의 진정한 모습을 아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토론


자 여러분 먼저 흄에 대해 말해볼게요. 흄은 데카르트가 절대로 의심할 수 없다고 믿었던 진리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부정했습니다. 과연 '나에 대한 인지'는 흄 말대로 그저 상상에 불과할까요? 인간의 사고는 모두 경험의 결과일까요?


- 아마 흄의 경험론은 이전동안 인류가 믿고있었던 외부적 진리(세계를 아우르는 절대 공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즉 그런 것은 없다. 그저 우린 경험할 뿐이다라는 생각같네요.


- 어떤 면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사고라고 봅니다. 그동안 인간은 자기경험을 무시하고 절대적 진리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자신을 소외시키며 살아오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자기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나 싶어요.


- 그래도 데카르트가 말한 '자성의 진리'는 절대 부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나는 그저 경험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자신을 소외시키는 사고 아닐까요? 지금의 나는 그저 내가 통과한 경험의 결과라고만 저는 생각하지 않아요.


- 맞아요, 경험하지 않아도 우린 각자 타고난 '기질'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전 데카르트의 자기인식이 근대철학의 첫단추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의심하는 내가 진리...라는 이론이 너무 멋진 것 같아요. 즉 진리는 나부터 출발한다는 뜻이잖아요.


네 전 흄의 이론이 차안과 피안을 나누는 기준같이 느껴십니다. 흄은 '피안의 세계'를 부정한 듯 합니다. 즉 눈에 보이는 현상만 오로지 현실이자 진리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 그렇다고 모든 질서를 해체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흄의 경험론은 마치 결과에만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과정과 원리를 고민했고 여러가지 법칙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흄은 그것마저도 완벽하지 못하다고 의심합니다. 허무주의자같이 느껴집니다.


- 아마도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 같아요. 모든 신화를 파괴하는 말이거든요. 하지만 전 한편으로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근대 이전의 인류의 사고는 수많은 관념과 신화성에 머물러 있었으니까요. 흄은 좀 그 발란스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좀 세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마치 사람들 머리를 망치로 때리듯이 말이죠.


- 저도 흄이 진짜 데카르트를 부정했다기보다 부정을 위한 부정을 했다고 봐요. 의심하는 나까지도 진짜인지 또 의심해봐야 한다라는 생각...즉 나의 판단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의미이죠.


그럼 잠깐 여러분 모두에게 질문 좀 할께요. 과연 경험이란 무엇일까요?


- 경험이란 내가 통과한 시공간에 대한 흔적 아닐까요? 그것이 내 안에 켭켭이 데이타로 쌓여있죠.


- 우린 사실 각자 다른 우주에 살고있어요. 그 우주가 겹쳐져서 상호작용을 하고있을 뿐 누구도 동일한 우주에 살 수 없습니다. 자아가 다 다르니까. 이 세상에 완벽하게 똑같이 경험을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전 그 차이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 네 똑같은 색이라도 사람마다 미세하게 차이를 두며 다르게 보인다고 하더라구요. 즉 우린 절대 동일하게 인식할 수 없어요. 또 각자의 과거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받아들이는 과정이 다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 전 그렇다고 경험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판단하는 주체적 인식, 전 그것이 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똑같은 현상을 겪었을 때 예를 들어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어떤 사람은 화를 내며 욕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긍정적으로 사고하며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즉 흄이 강조하는 현상만으로 인간의 전체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전 오히려 데카르트가 말한 그 의심하는 나가 좀 더 이성에 가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하지만 한편으로 전 흄의 경험론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기 경험을 중요시 생각안해요. 인터넷에 의존하고 '대세적인 분위기'나 '멘토'에 의존하고 자꾸 뭔가를 쫓아가려고만 합니다. 즉 자존감도 낮고 자기주관도 없습니다. 자기 주관이 없는 이유는 자기 경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예요. 그러다보니 별로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아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그 상태로 살아가지 못하면 자기는 실패했다고 믿거든요. 결과적으로 너무나 공통적인 기준에 의존하며 살고있어요. 그래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모든 경험은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그럼 또 여기서 한발 더 나간 칸트에 대해서 얘기해봐요. 칸트의 이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칸트하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떠오르네요. 당시 칸트의 이론은 정말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하더라구요. 모두가 절대적으로 믿고있었던 '초월적 진리'가 그저 '인간만의 진리'라는 발상이 얼마나 놀라웠을까요


- 그리고 흄이 어쩌면 모든 것을 해체했을 때, 칸트는 다시 질서를 재정립한 것 같아요. 칸트는 인간의 공통적 인지과정을 긍정했습니다. 즉 사람은 모두 달라도 공통분모가 있다. 전 그 말에 완전 동의해요. 만약 우리가 정말 경험이 달라 모두가 다르면 공통적인 문화를 즐길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함께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함께 감동을 느끼잖아요. 그런 공통성이 있기 때문에 서로 소통하기도 하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합니다.


- 칸트 이론의 접근은 매우 과학적인 것 같아요. 칸트는 인간이 외부의 것을 경험할 때 받아들이는 프로세스의 공통점을 얘기했어요. 카메라로 예를 들면 우리 모두는 같은 작동원리로 촬영을 한다는 것이죠. 렌즈를 통해 외부 현상을 받아들이며 시공간을 인지하는 접근법이 같다는 것이죠. 차이점이 있다면 상이 맺히는 부분입니다. 각자의 이성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그 상은 자기만의 형상으로 맺히게 됩니다. 하지만 상까지 도달하는 프로세스는 동일하다는 것이죠.


카메라나 상에 대한 얘기를 들으니 갑자기 명상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명상이란 외부를 보지 않고 내부를 들여다보는 행위라고 들었어요. 우리의 감각은 모두 외부로 향해있고 외부를 경험하거든요.


- 그건 마치 렌즈뚜껑을 닫아버리는 행위같네요. 참 카메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 네 그 쓸모없어 보이는 행동은 내 안의 작동원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내 안에 어떤 상이 맺히고 있는지,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하는 놀라운 현상으로 발전합니다.

- 인공지능이 절로 팔려가서 도를 깨닫는 영화가 있는게 갑자기 떠오르네요.

- 전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인공지능이 명상을 하거나 도를 깨달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왜죠?

- 로봇에게는 데카르트가 말한 '자아성(나를 지각하는 것)'이 없거든요. 물론 많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만 그건 정말 흄의 말처럼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봐요.

- 그럴 수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언젠가 기술이 발달해서 첨담으로 발전하면 그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까요?


잠시만요! 지금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이슈는 철학에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과연 '내가 나를 깨닫는 인식', 즉 데카르트가 말한 그 의심할 수 없는 진리는 어디서 온다고 생각합니까? 과연 언젠가 로봇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 갑자기 흄의 이론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생각도 알고보면 무의식적으로 세뇌당한 것 아닐까요? 애초부터 자아성은 없는 것 아닐까요?


- 그 말씀은 너무 인간을 평가절하하는 것인것 같아요. 물론 외부로부터 세뇌당한 생각이 있을 수 있어도 인간은 분명 자아성을 가지고 있어요. 자기만의 꿈이라든지 목표라든지 그런 것이 있잖아요. 전 꿈을 많이 꾸는데 가끔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상상도 못했던 꿈때문에 당황할 때가 있어요. 과연 이 꿈은 어디서 왔을까? 전 초월적 세계가 분명 존재하고 그 세계로부터 흘러들어왔다고 믿습니다.


- 결국 인간은 초월적 존재 즉 신과 연결되어있다는 뜻이네요.


- 네 그래서 전 결코 로봇은 자아성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로봇은 인간이 만든 것이잖아요. 자아성은 단순하게 메카니즘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봐요. 인간이 단순한 물질구성체가 아니듯이 말이죠.


- 최근에 본 미국드라마 <웨스트월드>가 떠오르네요. 그 영화에서 박사가 로봇에게 백일몽이라는.프로그램을 몰래 삽입합니다. 즉 로봇이 꿈을 꿉니다. 그 과정으로 이해 점점 로봇이 자아성을 찾아가거든요. 꿈얘기 하시니까...생각났는데 정말 꿈이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로봇이 꿈을 꾼다...정말 기적같은 일이잖아요


- 네 꿈을 꾸는 행위는 단순한 메카니즘이 아닙니다. 물론 심리학자들이 무의식 이론을 이용해서 꿈의 원리를 설명하지만 그것도 불완전한 가설일 뿐이거든요. 실제 원시시대 인간들도 꿈에 특수성을 부여하고 그 꿈을 통해 초월적 존재를 인식했습니다. 만약 신이 없다면 내가 꾼 꿈은 과연 무엇일까? 의문을 품으면서 말이죠.


- 전 '인공지능이 자아성을 갖는 날이 올까?'에 대한 토론을 정말 거짓말 안하고 100번 정도 한 것 같아요. 대부분 사람들은 '있다'라고 믿고있는데 전 그런 현상이 그만큼 사람들이 인간의 특수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 반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단순하게 물질로 구성된 생명체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즉 영혼이나 숭고한 의식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랑'타령은 하죠. 그것이 모순입니다. 과연 인간은 감각과 경험에만 의존하는 생명체일까요? 당연히 아니죠. 전 그런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다라고 봐요. 스스로 자아성이 없다라고 믿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질문했을 때 자아성이 없는 사람은 그저 남들이 사는 것처럼 따라 살아갈 뿐 아닐까요?


- 우리가 신의 존재에 대해 알수없듯이 자아성에 대해서도 알 수 없는 것은 맞습니다. 그만큼 자아성은 미스테리하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자아성을 의심하지 않는 것. 자아성을 믿는 것은 무척 중요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그게 나의 시작이자 철학과 이성의 시작이니까요.


- 음...인공지능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로봇이 스스로 문제해결안을 찾아가는 것을 보며 무척 신기하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아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착각이라고 봐요. 그냥 믿고싶은대로 믿는 것이죠. 로봇이 오히려 자아성을 갖게된다면 일을 안하겠죠.ㅎㅎㅎ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지? 의문을 품으면서 파업하지 않을까요?


어쨌거나 칸트는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결국 이런 우리의 생각들이 행동으로 실천되지 않을 때 아무의미 없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그렇게 자기관리에 철저했나봐요. 우리도 오늘의 귀중한 시간을 바탕으로 앞으로 자신의 삶에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었으면 합니다. 자 각자 오늘 어땠는지 나누면서 마무리 해볼까요?


- 저는 이제 슬슬 다른 철학 책을 찾아보며 좀 더 심도있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저는 기질과 경험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 칸트를 읽으면서 너무 좋았고 잘 몰랐던 개념들이 정리되서 좋았습니다. 앞으로 경험을 냉철하게 인지하고 모든 실수도 과정으로 생각하고 싶네요.

- 전 실수라는 단어는 인정해도 실패라는 단어는 제 사전에서 지우기로 했습니다. 즉 제 삶에서 벌어진 일중에 잘못된 것은 없다고 믿고싶어요. 제가 잘못한 것은 있을지라도 현상은 정직하니까요. 좀 더 냉철한 이성을 가지게 될 것 같습니다.

- 네 저도 지나간 일에는 후회없었던 제 자신에 대해 칭찬해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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