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반 철학반 ㅣ 헤겔 & 키에르케고르
1. 칸트의 영향으로 인간에게는 '인간만의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칸트는 그 진리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즉 구체적인 '진리도달방법'의 해법이 제시되지 않은 것이다.
2. 이때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한 철학자가 나타났다. 근대철학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헤겔이다. A
3. 헤겔은 진리가 어느날 문득 깨닫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 믿었고 그 과정을 '변증법'이라고 했다.
4. 변증법이란 '대립하는 생각이 서로 부딪치고 투쟁함으로써 사물을 발전시키는 방식'을 말한다.
5. 예를 들어 하나의 사물을 보고 A라는 사람이 '원'이라고 하고 B라는 사람이 '사각형'이라고 했을 때 두 사람의 의견이 충돌해서 '원기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6. 즉 A도 만족하고 B도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돌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헤겔은 '대립'이 매우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고 그것을 이용하여 창조를 꾀한 것이다.
7. 헤겔은 이런 방식으로 인류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완벽한 궁극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8. 헤겔의 철학은 '역사가 진전될 수록 보다 좋은 사회로 나아간다'는 가정을 만들게 되었다.
1. 헤겔의 철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인류는 계속 발전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2. 하지만 헤겔철학도 변증법으로 누군가에게 부정되어야만 했다.
3. 그때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나타났다.
4. 키르케고르는 헤겔의 그 '언젠가 궁극의 진리를 깨달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반기를 들었다. 키르케고르는 '지금 이곳에 살아가는 나'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아무 의미 없다라고 생각했다.
5. 즉 '나'는 인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사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6. 키르케고르는 "나에게 진리라고 생각되는 진리, 내가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진리, 그러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네."라 말했다. 그런 생각은 실존주의의 바탕이 되었다.
참가자 토론
내 드디어 헤겔이 등장했네요. 헤겔은 확실히 이전 철학자와 다르게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했군요. 여러분은 '변증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참 좋은 것 같아요. 실제 인류는 헤겔 이후 변증법을 통해 여기까지 발전해왔잖아요. 예를 들어 사회주의-민주주의가 대립하면서 또 사민주의가 나온 것처럼요...
- 그런데 제 삶에서 변증법을 적용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한국사회에서는 대립하면 서로 싸우려하지 의견을 합쳐서 새로운 대안을 창의적으로 내놓으려 하지 않으니까요...
아무래도 한국에는 토론문화가 없어서가 아닐까요? 이분법적으로 갈려서 서로가 서로에게 틀렸다고 주장하니까요.
- 아마도 그래서 이 나라의 정신문화가 정체되어 있는 느낌도 듭니다. 경제적으로는 발전하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후지고 천박해요.
- 아마도 우리가 제대로된 인문학 교육을 안받고 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런 철학교육을 받고 자랐으면, 수업시간에 다양한 토론을 했으면...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네 맞아요. 변증법이 가능하려면 토론자가 매우 융통성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대립하면서도 서로를 인정해주고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마음가짐?
네 마음가짐이 무척 중요하겠네요! 혹시 그럼 이 변증법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실 분 있나요?
- 전' 언젠가 우리는 궁극의 진리를 깨닫는다'라는 말이 매우 망상적이고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은 저도 할 수 있다구요.
- 그쵸, 언젠가 그 진리를 깨닫는 시기가 천년후인지 만년후인지 모르죠
- 헤겔철학은 일종의 이론이죠. 이론상 우리는 언젠가 진리를 깨달을 것이다. 변증법적으로 철학적 사고가 계속 상승하니까 말이죠. 이론이 틀렸다고 생각할 수 없지만 키르케고르 말처럼 지금 여기 내가 진리를 모른다면 그 진리는 내게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아요.
네 그래서 '실존주의'가 무엇인지 확실히 개념이 잡히네요. 예전에는 되게 어려운 용어로만 느껴졌는데 이렇게 맥락을 파학하니 확실히 와닿아요. 그럼 여러분은 '실존'적인 삶을 살고있읍니까?
- 저에게는 그 실존주의도 또 하나의 '이론'처럼만 느껴집니다. 과연 내가 지금 여기서 과연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 '돈오'인가? 그것은 엄청난 수행자들만 가능한 것 아닐까요?
- 전 사실 돈오란 없다고 봐요. 갑자기 깨닫는 것이 아니라 깨닫기 위해 무수한 생각을 하는 과정을 겪고 또 수행을 했겠죠. 또 깨달은 후에도 그 깨달음이 현상이 될때까지 행동으로 옮기는 시간이 필요하구요.
<실존주의>가 지금 이 순간 진리를 꼭 깨달아야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내 자신을 인류라는 종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지금 여기 있는 '나'로 인식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 아닐까요?
-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모든 물질들이 도구적 특성, 즉 용도에 본질이 있다면 인간은 그 이전에 그 존재가 본질을 을 앞선다고 하네요.
- 멋진 말이네요. 산업화 근대화를 통과한 한국사회에서는 인간을 도구로 인식하는 성향이 강하잖아요. 우리의 교육도 그런 사상을 근간으로 여기까지 왔고, 그놈의 '쓸모'를 엄청 따지죠.
-쓸모없는 사람은 인간취급도 안하죠...
- 네 맞아요. 그래서 대부분 한국사람들이 심하게 자존감이 낮은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쓸모'를 기준으로 판단당하잖아요. 그깟 성적이 '쓸모'의 기준이 되죠.
그래서 전 나중에 자식을 나으면 가훈을 이것으로 하기로 생각했어요. <쓸모없는 사람이 되자!>
하하하하(일동)
- 그런데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가 과연 철학적 대안이 되었나요? 그러니까 내가 실존을 깨달았을 때 진리에 도달하는지 궁금하네요.
- 아마 그런 문제로 또 다른 철학자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네 다음 챕터는 샤르트르인데 그때를 다같이 기대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