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반 철학반 ㅣ 샤르트르 & 레비스트로스
1. 샤르트르는 헤겔과 키에르케고르의 대립에 대해 이렇게 제안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궁극의 진리를 추구하는 역사의 진전을 우리 손으로 이뤄보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 인생을 걸어보지 않겠는가!"
2. 샤르트르는 '참여'에 포커스를 두고 그것을 통해 진리를 체험하는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3. 샤르트르는 진리 앞에서 머뭇거리며 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을 받고 있다." 그 뜻은 자유란 무엇이 올바른지 알지 못하는데 알아서 하라며 내팽개쳐진 불안정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고 다만 그 결광에 대해 자신이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며 어떤 선택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즉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4. 샤르트르는 역사에 대한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회를 고정불변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참여로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1. 레비스트로스는 서양의 진리에 대한 방향성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다. "인류가 지향해야 할 역사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물었다.
2. 인류학 연구가였던 레비스트로스는 서구문명에 젖어있지 않은 다양한 부족국가를 돌아다니며 그곳에서 살고 연구했다. 당시에는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나라 사람을 '미개인'으로 분리했는데 레비스트로스는 그런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3. 낯선 나라의 사람들 삶에서 '서구문명과 다른 독자적인 시스템'을 발견한 레비스트로스는 서양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 비판했다. 당시 서양인들은 "인류의 역사는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우리 서양인은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 외 다른 문화권 사람들은 먼 뒤편에 뒤처져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일원이지.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회나 국가든, 부 주변에서 춤추던 미개인이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서양과 같은 문명에 이르게 될거야. 그리고 우리는 맨 앞에 선 인간으로서 개발도상국 사람들을 인도해야만 해!"
4. 레비스트로스는 지구에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그ㅊ를 따질 수 없는 각자의 구조를 띄고 있다라고 생각했다.
토론
자 여러분은 샤르트르 철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전적으로 동감해요. 그의 실존주의는 특히 지금 한국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포인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신뢰하지 않잖아요. 수동적이고, 의존적이고, 리더나 멘토만 찾으면서...무엇이 진정으로 옳은지 그른지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어요.
- 아마 우리가 받은 주입식 교육 때문 아닐까요? 정답이 정해져있는 질문만 하고 살다보니 정답의존적인 사람이 되었죠.
- 맞아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경험부족이랄까?
- 이 세상에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1분1초 매순간 우린 경험을 하고 살아가잖아요. 문제는 자신의 작은 경험을 무가치하다고 판단하는 생각이죠.대신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강박증에 시달리면서 그런 삶을 살려고만 노력하고 있어요. 즉 자기만의 삶이 없는 것이죠.
그것을 전문용어로 '형이상학의 노예'라고 해요. 세상을 이분법적으로만 생각하면서 '무엇이 더 옳다'라고 끊임없이 저울질 하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삶의 다양성에 대한 철학이 없어요.
- 주체성이 상실된 삶 아닐까요?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닌 노예의 삶을 사는 것
- 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한국은 '개인의 실존성'에 대해 매우 무지한 나라입니다. 우린 어릴 적부터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자라지 못했어요. 공부를 잘해야 한다, 착해야 한다...강요받으면 그렇지 못하면 낙오자라고 분류되어 왔습니다.
- 그러다보니 자신만의 판단에 자신이 없어지고 늘 죄책감에 젖어있고 자존감도 낮아졌죠.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이 마치 '진리'인줄 착각하고 그것에 모든 것을 걸어왔죠.
그렇다면 샤르트르의 실존주의 관점에서 우린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 샤르트르의 '자유라는 형벌'이라는 말이 전 참 좋아요. 물론 자유롭기 때문에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다 떠맡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주잖아요. 그리고 자신의 삶속에 숨겨져있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구요.
- 그 '자유라는 형벌'을 연애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이성을 만났는데 막 고민해요. 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닐까? 걱정하면서 끊임없이 그 사람을 판단하겠죠. 그런데 백날 생각을 많이 해봐야 정답이 나오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그 사람을 경험해보지 않고, 충분히 소통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그 사람을 알 수 없어요. 차라리 그 사람을 선택하고 만나면서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죠. 만약 헤어졌다고 해도 절대 후회해서는 안된다고 봐요.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에 대해 후회하기보다 의미를 찾는 것이 더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 맞아요, 헤어진 후 남탓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그런...저는 마인드의 문제라고 봐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평생 남탓만 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 언어에는 '나'가 없잖아요. 즉 타인에게 의존적인 상태이죠.
- 그런데 실존주의가 조금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모든 경험 속에 진리가 있다라고 한다면 우린 과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즉 다원주의나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맞아요, 하지만 샤르트르가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샤르트르는 오히려 경험과 참여에 포커스를 두었고 참여없이 세상을 비판만 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강한 어조로 말하고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은 일종의 레토릭(수사학)이라고 봐요. 거시적인 진리에 쏠려있는 무게를 나의 삶으로 가져오게끔 밸런스를 맞추고 싶지 않았을까요?
- 저도 동의합니다. 우리가 좀 더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의 노예'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아까 누군가 연애에 비교하셨는데 연애의 가장 큰 의미는 일단 하는 것에 있잖아요. 그런데 연예를 책으로만 배우고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 원칙만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요. 본질에 도달하지 못하죠. 그런 형이상학에서 벗어나 실제 경험하면서 깨닫는 것이 중요하죠. 그렇다고 무차별적인 연애론에 긍정하지는 않죠. 분명 남녀간의 사랑에도 절대적인 진리와 도가 있다고 봐요. '사랑'같은 것 말이죠.
잠깐 여기서 레비스트로스 얘기도 할까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란 뭘까요?
-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 어떤 사물의 의미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시스템과 상호적으로 엮이면서 그 의미가 발생되는 것이라 하네요.
- 레비스트로스는 문명적으로 발달되지 못한 나라에 살면서 그들의 사회구조 속에서도 문명국가 구조와 동일한 정신을 발견합니다. 즉 인간 공동체-사람이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것이죠. 그래서 문명이 더 발달된 국가의 사람들이 더 진화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합니다.
- 그렇다면 사회구조의 동일성을 말하는 것일까요?
-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죠. 레비스트로스 이전의 철학은 인류의 이성이 문명의 발달과 정비례로 발달한다라고 믿었으니까요. 레비스트로스와 친한 샤르트르마저 그렇게 생각했으니 아마 레비스트로스가 샤르트르와 결국 의절한게 아닐까요?
제가 전통무예를 하면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데 실제 단군 이전의 배달시대 때의 사회구조를 보면 지금보다 더 정신적으로 우월함을 느껴요. 그 시대의 공동체에는 '평등사상'이 지금보다 더 강력했어요. 정확히 얘기하면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친환경' '순환관계' '공생'에 대한 철학이 있었어요. 오히려 문명이 발달하고 자본주의 사회가 지배하면서 우린 그런 숭고한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 그렇게 따지면 지금 현재 우리 개개인의 정신이 나만의 삶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있는 사회구조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도 볼 수 있네요.
- 맞아요, 아까 우리가 언급했던 한국사람의 문제는 한국사회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잖아요.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니까 나도 모르게 적응하는 것처럼 말이죠.
- 그런 얘기를 듣고보니 샤르트르의 실존주의가 '나만의 삶을 살아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사회를 만들어라!'라는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 그래서 샤르트르도 '참여'를 강조하지 않았을까요?
- 그럼 결국 샤르트르나 레비스트로스도 알고보면 결과적으로 같은 말을 하는 것 아닐까요? 도대체 왜 싸운거야?
굳이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전 '각성'이라고 봐요. 샤르트르는 개인의 실존을 통해서 '나'를 각성하는 것이고, 레비스트로스는 문명의 우위를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금 여기'에 대한 각성, 즉 모든 인간 사회 구조가 동일하게 흘러간다면 굳이 먼 미래에서 진화적인 사회구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만들어가고 유지할 수 있지않나...그런 ...
- 그런데 꼭 우리가 각성할 필요가 있을까요? 모두가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살아갈 필요는 없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아가잖아요. 그것이 잘못된 삶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 누구의 삶이 잘못되었다, 잘되었다는 판단하는 것은 교만이죠. 샤르트르도 말했잖아요. 각자의 선택과 책임에 달렸다. 즉 '각성'의 문제는 본인에게 달려있는 것이죠.
- 매트릭스 영화에 보면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이 주어지잖아요. 그 선택의 기로에서 모든 것은 네오에게 달려있잖아요. 그 선택을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자신만의 삶인 것이죠.
- 그럼에도 전 모두가 각성했으면 해요. 그래야 우리 사회가 모두의 힘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사회가 발전하려면 강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강한 에너지가 나오려면 다수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촛불혁명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수의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이 있었던 것이죠.
아 그때가 생각나네요.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걸어가는데 전 울었어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동이 밀려오는데...뭔가 다른 세상으로 이동하는 기분이랄까요?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편이라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전까지는 이 세상에 외롭게 혼자사는 기분이었거든요.
- 아마 그 순간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경험과 깨달음을 얻었을 것 같네요. 실존적으로...
오늘 여러분은 이 시간을 통해서 각자 어떤 실존적 경험을 하셨는지 나눠주세요
- 처음이지만 인문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어요. 이런 시간이 너무 유익하고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각해보는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무한지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전 지금까지 가능성의 세계 속에만 머물러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지식만 쌓이고 삶의 변화가 없다고 느껴집니다. 이제는 저를 내던지면서 모험을 해보고 싶어집니다.
- 갑자기 지리와 역사공부를 하고싶어지네요. 각 나라의 시공간적 특성이 분명 문화와 연결되어 있을 것 같아요. 구조적으로...그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어집니다.
- 전 '헝그리정신'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너무 게으르게 살아오지 않았을까? 문명의 이기에 그저 의존하면서 말이죠. 좀 더 독립적으로 자발적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