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하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공기 Jul 01. 2019

있는 그대로

Pure Profile Platform

이장욱

Profile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
CJ E&M ISC(Interactive Storytelling Contents) LAB 연구원
영화사 <나비 픽쳐스>, <우리 영화사> 인물 조감독 근무
장편영화 <그림자> 각본
스토리텔링 콘텐츠회사 <콘텐츠하다> 크리에티브 디렉터
인터넷 쇼핑몰 <엠앤몰> <파피츠 코리아> <미스터스타일리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북한산 국립공원 홍보팀 팀장
광고회사 코쿤나인 팀장
서울시-네이버 공동기획 국민건강프로젝트  <서울아 운동하자> 총감독
KBS 원격교육원 총감독
예술 매거진 <아트앤컬쳐> 기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기획 <중학생이 알아야 할 컴퓨터 통신 산업의 역사> 저술
한국콘텐츠진흥원 기획 <청소년을 위한 영화제작 가이드북> 저술



이장욱의 '스토리텔링'


황당한 오디션장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 만들어진 요리가 아니라 신선한 재료입니다. 그것을 봐야만 제가 어떻게 요리할수 있을까 구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창동 감독/ 영화 오아시스 오디션장에서 -


배우 프로필 사진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나름 잘 보이고 싶어서 멋지고 이쁘게 찍고 보정도 많이 했는데... 정작 제가 보고싶은 사진은 그저 자연스러운 거거든요.

      - 조상윤 / 건축한개론, 순정만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촬영감독 -


기획사에 여배우 프로필을 보내달라고 하고 메일함을 보면, 거의 100명 분이 들어와있어요. 한사람을 스킵하는데 1초도 안 걸려요. 모두 다 똑같이 생겼거든요. 문제는 끝까지 다 봐도 맘에 드는 사람이 한명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죠.

    - 임대용 / 캐스팅 디렉터 -




영화학교를 다닐 때 당시  교수님이신 이창동, 홍상수, 김성수, 봉준호 감독님들의 오디션 현장의 카메라 스텝이었다. 학교 내에 연기과가 있었기에 무수한 학생들이 오디션을 보았다.


"다음 사람 들어오세요~"


지원자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오디션 스텝들은 당황하곤 했다.

지원자의 실물이 제출한 프로필 사진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원자를 카메라로 찍으면서 깨달은 것은 그들이 프로필 사진보다 훨씬 매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때 난 궁금증이 생겼다.


왜 하나같이 다 프로필 사진을 그렇게 찍는걸까?


대학 졸업 후 영화사, 광고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 질문은 여전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스튜디오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표정과 포즈로 찍고 과하게 보정한 사진들은 지원자 본연의 매력을 오히려 감추고 그런 프로필은 서류심사에서 100% 제외된다.

심지어 그나마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어 오디션을 요청하고 실제로 만났을 때, 예상했던 얼굴과 다르면 심사자들은 배신감에 당황해서 오디션에 몰입하지 못한다.  

배우들은 비싼 돈들여 헤어 메이크업을 하고, 스튜디오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고, 공들여 프로필 PPT를 만들어서 그것을 여기저기 지원하고, 오디션 기회를 기다리지만... 정작 현실은 심사자가 그 프로필을 스킵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초도 안 된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분노할만한 사실이겠지만, 심사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그들은 이런 프로필을 하루에 100개도 넘게 받는다. 그래서 심사자들은 지원자의 경력을 보기도 전에 단 한장의 메인 프로필 사진으로 모든 판단을 끝내버린다. 결국 프로필 승부는 단 한장의 메인 사진에 모든 것이 달렸다.


하지만 10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잘못된 프로필 사진으로 인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심사자들은 개성있는 배우가 너무 없다고 불평하고, 매력있는 무수한 배우들은 캐스팅이 되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즉 문제는 제대로 된 배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프로필 사진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여기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프로필 사진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프로필 사진'의 조건이란?  


나는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서 실제로 영화감독, 영화제작자, 광고기획자, 촬영감독, 모델 에이전시, 캐스팅 디렉터 전문가들을 인터뷰했다.


" 프로필 사진의 문제라...너무 가식적이죠. 그 가식스러움에 오히려 거부감이 들곤 합니다."

" 보정 좀 안했으면 좋겠어요."

" 제가 맘에 들었던 사진은 친한 친구가 핸드폰으로 찍어 준 사진같은...자연스러운 사진이었습니다. "

" 일단 배우가 스스로의 매력을 발견하고 그 매력을 카메라에 담았으면 해요. 지금 프로필 사진들은 너무 스튜디오에 의존하는 것 같아요."

" 프로필 사진의 조건이라...음...그냥 깨끗했으면 좋겠어요. 영어로 Pure라고 해야되나? "


오랜 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드디어 멈추게 해 준 사람은 제일 마지막에 만난 사람, 캐스팅 디렉터 였다. 그의 대답 속의 Pure라는 단어는 그동안의 모든 전문가들의 말 속에 함유된 키워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Pure [pjʊr]

1. .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2.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3. 완전한, 순전한


과연 Pure한 사진은 어떤 사진인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할 것이다.

사실 나는 영화학교 시절 이것과 비슷한 의미를 배운 적이 있다.

촬영교수님이신 유영길 촬영감독님이 항상 우리에게 강조했던 말이었다.



고(故) 유영길 촬영감독

 

영화가 영화다우려면 촬영이 솔직해야해.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찍어야만  스토리텔링을 한 샷에 담을 수 있어. 
그래서 촬영이 스토리텔링인거야



아마도 유영길 감독님의 조언 속에 담긴 의미가 Pure와 동일한 뜻이 아닐까 한다.

감독님의 유작 <8월의 크리스마스>을 보면 그 의미가 새삼스럽게 깨달아진다.


8월의 크리스마스



일렁이는 바람과 따스한 여름 햇살....일상의 모든 요소들이 카메라에 담겨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스토리는 물론이고 촬영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가장 영화다운 영화'라는 극찬을 받았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스토리와 촬영이 완벽하게 일치했다는 점이다.

유영길 촬영감독님의 말씀처럼,

스토리가 촬영이고 촬영이 스토리인 '가장 영화다운 영화' 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 스틸들을 다시보면 정말 모든 장면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장면에 녹아든 스토리가 정서를 유발하고 나도 모르게 그것에 감동하고 만다.

그리고 배우들이 하나같이 모두 빛이 난다. 사실 우리같은 영화인들은 다 알고 있다.

한 명의 배우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려면, 반드시 좋은 스토리와 좋은 촬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배우는 그 사이를 연결하면서 저절로 빛이 나는 것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배우 뿐 아니라 인서트컷으로 쓰인 사물까지도 빛이 난다.  그것을 사용한 사람의 흔적이 느껴져 먹먹하기까지 하다.


프로필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배우의 있는 그대로 솔직한 오리지널리티가 담긴,

한 사람이 보내온 시간의 흔적이 얼굴에 고스란히 담긴.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이 있는 사진


그것이 프로필 사진의 승부수인 Pure한 사진이다.


마침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스토리상 수많은 인물사진이 나온다.  

죽음을 앞 두고 세상 모든 소소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었던 사진사 정원(한석규).

그가 찍은 Pure한 사진

이 사진들은 배우 프로필 사진의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이장욱의 '오리지널리티'


난 스스로 유영길 촬영감독님을 '촬영의 아버지'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 모든 사진에는 그분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감독님의 유작 <8월의 크리스마스>의 영감을 받고 영화 속 사진사 정원(한석규)처럼 내가 사랑하는 가족, 지인들...보통 사람들의 인물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미국 뉴욕에서 1년 간 산 시절이 있다. 그 때 많은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면서 내 사진을 보여줬는데 서양친구들이 내 사진에서 Zen(선사상)이 느껴진다고 했다.

아마 그 때부터 내 사진의 오리지널리티는 Zen(선사상)이 되지 않았나 싶다.

좋고 나쁨에 경계를 나누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다보면 어느새 주변과 하나가 된다.  

타자와 주변을 대상(對象:대할 대, 형상상)화해서 판단하지 않고 동등한 시선으로 상대(相對: 서로 상, 대할대)할때 소통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내게 " 어떻게 하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나요? " 물어본다.

사실 딱히 방법을 두지 않는다. 그저 오래 관찰하고 오래 소통하다보면 분명 너머의 진실을 깨닫는다.

물이 흐르듯이 타자와 하나가 되면서 셔터를 누르면, 자연스럽게 그런 사진이 나온다.


비단 사람 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동물과도 소통하다보면 '그 너머의 호흡'이 느껴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상업 사진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클라이언트들이 내게 요구한 것은 화려한 사진이 아닌, 내 방식대로의 사진이었다.









ARBOR 헤어샵 디자이너


상업사진 쪽에 있으면서 혹시나 내가 내 본연의 오리지널리티를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진정한 Pure를 찍기 위해 본격적으로 아이들 사진을 많이 찍게 되었다.





다시 이야기는 대학시절의 오디션 현장으로 돌아간다.

당시 나는 풋풋하고 순진한 대학생이었고, 오디션장에서 마주한 배우들의 프로필 사진들이 안타까워

지인 배우들의 프로필을 무상으로 찍어주곤 했다.

처음엔 그 배우가 가지고 있는다양한 표정들을 잡아냈다.



대학시절 봉준호 감독님(교수님)과 함께




배우 공예지 데뷔전 프로필


시간이 흐르면서 프로필 사진에 스토리텔링을 가미했다.

한 장의 사진이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스토리를 전달했으면 했다.



배우 정소민 데뷔전 프로필



길에서 우연히 만난 고1 여고생, 정소민양의 프로필 사진 작업은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 사진 덕분에 그녀는 학창시절 쎄씨모델도 하고, 이후 대학을 연기전공으로 가게되는 결심을 했다.



정소민 고2



신한카드 모델로 잘 알려지고,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도 출연했던 배우 김용지는 원래 연극연출 전공을 꿈꾸는 재수생이었다. 당시 나는 예술대학 입시학원 강사를 했는데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연기를 해보지 그래?



나의 추천에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제가 뭘..." 하며 무척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우린 그냥 실험이나 할겸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배우 김용지 데뷔전 프로필

김용지는 현재 이병헌이 운영하는 BH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다.


이장욱의 프로필 촬영은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내가 찍은 사진에도 한 사람의 오래된 이야기가 지니길 바라며


찰랑이는 시냇물에서 바가지로 물을 기르듯  

(비울 공)(그릇 기)처럼


오늘도 한 사람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아낸다.


EDITOR'S CHOICE 



이장욱 작가는 참 모순적인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이 사진은 참 귀하다. 아르헨티나 탱고를 추는 그의 평온한 표정은 정말 있는 그대로의 그의 얼굴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랜서의 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