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고통을 느끼는 것

고독이 선사한 사색의 풍요로움 ㅣ 장여름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2-24 오후 3.17.40.png 고독한 사색가
제가 summer라고 하면 이유를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연히 '써머'하고 부를 때의 발음이 예쁘다는 걸 발견했고요. 더위 뒤의 해갈과 땀을 씻을 때의 개운함을 선사하는 여름이 좋아서 쇼핑몰 비회원 구입 때도 한글 이름을 여름이라고 씁니다.


작가 프로필 ㅣ 장여름

살아오면서 늘 고독했습니다. 가끔 북적였던 가족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운 마음으로 듣습니다. 늘 외로웠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였고 그것이 저를 독서로 이끌었어요. 부산하고 정다운 사람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동경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세상에는 정말이지 공짜가 없는 듯합니다. 외로움이 준 독서와 사색의 풍요로움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나날이 더욱 느낍니다.




요리를 하던 중 손을 데었다.
내 부엌살림은 거의 올스텐 제품이라 열전도율이 높아서, 때때로 끓는 냄비에 담가 둔 조리도구를 무심코 잡다가 이런 불상사를 겪곤 한다.
잘 달구어진 스텐 손잡이를 꽉 잡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정확하게 붉게 짓눌러져 버렸다.

곧 수포가 생길 것이다. 병원에 갈 만큼 위중한 것은 아니지만 고통은 상당했다. 손은 자주 사용하는 부위이므로 아픈 곳은 좀처럼 쉬지를 못했다. 하루 종일 열감과 통증을 느끼며 손을 움직였다.
이 정도 화상이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태양 앞에 가면 어떨까 싶었다.
태양 앞에 마주하면 그 절대적 온도 앞에서 어떻게 될까.

화상은커녕 고통을 느낄 틈도 주지 않고 타버리겠지.


막내 동생의 친구가 갑작스럽게 죽었다.
지난한 입시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던 대입이 목전이었다.
화물트럭이 순식간에 덮쳐버렸기 때문에 가족들 눈 앞에서 어처구니없이 즉사했다.
사고를 당했다고 해도 소식을 듣고 달려갈 시간이나마 있기 마련이지만, 이 경우는 그럴 시간도 충격의 현장을 피할 공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모두와 잘 지내는 서글서글한 친구가 한 명쯤 있다. 그들은 넘어야 할 선은 넘지 않고 누군가 선을 침범할 때 세련되게 제압하며 그를 향해 우월감도 열등감도 품을 수 없는 평균이라는 이상을 구현할 줄 아는 천재다. 녀석이 그랬다. 장례식에 학교 앞 카페 주인까지 왔던 것이다.

성인이 채 되지 못한 남학생의 죽음 치고는 인상적인 조문객들이었다.
뺨이 보들보들하고 눈두덩이가 통통한 녀석의 친구들은 목놓아 울었다.
나니아의 눈밭처럼 냉랭하고 속을 알 수 없었던 담임선생님도 분향을 하며 파르르 떨었다.
그러나 녀석의 엄마는 울지도 못했다. 거대한 슬픔을 흘려내기엔 눈물은 너무 작은 샘이었고 이 막막한 절망은 고통을 느낄 틈도 주지 않고 초라한 육체를 덮어버렸다.


욱신거리는 손에 붕대를 감는다.

우리는 언제 고통스러운가.

진정 고통스럽지 않을 때, 고통스럽다.

내 존재를 넘어서지 않을 만큼의 크기만이 고통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므로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 고통의 아이러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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