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힐링 보고서 ㅣ 서은진
작가 프로필 ㅣ 서은진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인간이 느끼는 당연한 감정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순간들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 이야기들은 흘러서 지나갈 뿐 그냥 내 안에서 소멸되는 것이 바쁜 현재의 삶이다. 나는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평범한 감정들을 ‘나만의 보고서’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나의 힐링 보고서>는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한 나의 감정, 생각, 처세를 담는다. 작은 순간들에 느낀 감정을 표현한 짧은 시와 이야기를 덧붙여 <나만의 힐링 보고서>가 차곡히 쌓여 갈 것이다.
감정 : 상실
사라지는 것들
뒷산, 공원, 나무, 꽃, 흙은 간데없고
무거운 콘크리트가 감싸고 있는 회색길만 이어진다
마당이 있는 작은 집, 장독대, 화분, 그네, 줄에 묶여진 개집
이웃을 알게 해주는 작은 명패 전부 허물어진다.
길옆에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인사할 수 없구나
이젠 사람도 사라지고 없다.
내가 사는 곳 서울,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
내가 사는 곳은 서울 상도동. 8년 전 이 곳으로 이사 왔다. 집에서 불과 10분 남짓 북쪽으로 올라가면 산책을 할 수 있는 용마산이라는 작은 산이 나온다.
한 겨울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한산하지만 새싹이 돋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작은 산 구석구석 설치된 운동기구를 이용해서 운동을 하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즐긴다.
집에서 용마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져서 조금 걸으면 숨이 차오른다.
‘헉헉’거리며 뒷산으로 올라서서 이 곳에서 얼마 남지 않은 자연을 만끽한다.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 최근 몇 년 전부터 급속히 바뀐 풍경들이 나를 슬프게 한다. 길 양쪽으로 대부분 마당을 가지고 있던 단독주택이 하나둘이 헐리고 빌라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젠 뒷산 올라가는 길에는 주택은 한두 채 정도밖에 눈에 띄지 않았고 4층 혹은 5층 높이의 빌라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누군가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정다움이 사라지다
어느 날, 나는 용마산으로 산책을 하러 가는 길이였다. 익숙한 길가에서 하얀 고양이를 만났다. 길고양이를 만나면 미친 사람처럼 동물에게 인간의 말을 건넸다.
“나비야~~”
길고양이는 무심하게 나를 ‘휙’ 돌아보고는 파란 철제 대문 안으로 쏙하고 들어갔다. 빠른 걸음으로 고양이를 따라잡으니 3평에서 4평 정도인 작은 마당을 가진 집이 열린 대문사이로 들어왔다. 한 아줌마가 마당에서 항아리를 씻고 있었다. 발이 빠른 고양이는 한 단 위에 있는 화분이 있는 뜰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반쯤 열린 문이라 궁금해서 물었다.
“저 고양이, 아줌마네 고양이에요?”
항아리를 씻어 내리던 손을 내리고 의아한 듯 나를 쳐다보던 아줌마는 길고양이인데 챙겨준다고 했다. 사람이 있어도 두려운 기색 없이 사료를 먹는 길고양이를 보니 이 곳을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좋은 사람이구나!하고 간단히 인사만 하고 길게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이 만남이 마지막이였다. 그 집은 몇 달 후, 철거되었다.
다 사라지고 없고 모든 것이 변해버리다
뒷산으로 올라갈 때마다 길 양쪽의 정원을 가진 다양한 집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건만 어느덧 옛이야기처럼 모든 게 변해버렸다.
얼마 전에 방영된 <응답하라1988>이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쳤다. 주인공 덕선의 남편을 찾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 당시 쌍문동에 사는 이웃들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향수를 자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때는 가난하지만 다양한 모습을 가진 집과 사람이 존재했다.
2016년, 나는 길을 잃은 것 같았다. 아파트가 들어설 수 없는 작은 골목은 아파트의 축소판인 빌라가 빽빽이 들어섰고 길마다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반겨주던 집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누구’의 집인지 알려주던 한자로 쓰인 나무명패, 철제문 너머로 얼핏 보이던 장독대, 인기척이 느껴지면 눈을 크게 뜨고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들 그리고 느릿느릿 작은 정원의 꽃들에게 물을 주던 사람의 모습을 다 사라지고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