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적 관찰일기 | 최미애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 나는 일산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운명의 산책길을 만났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나에게 있어, 그 산책길을 걷는 것만이 유일한 운동이었고 신앙생활이었다. 길을 걸으며 느끼는 근육의 피로와 그에 비례하는 정신적 고양감은 나 자신이 이 우주의 일부분임을 깨닫게 했다. 그 길을 걸으며 사계가 세 번 지나갔다. 그 사이 나는 20대에서 30대가 되었다.
길은 내가 살고 있던 오피스텔 부지의 정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공원에서 시작되었다. 공원의 중심에는 동그랗게 벽돌담을 두르고 그 안에 몇 개인가의 둥글게 다듬은 향나무를 심어 둔 곳이 있었다. 동네의 꼬맹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며 그 주위를 몇 번이고 돌아도 결코 지치는 법이 없을 만큼 작았다. 이 나무들을 중심으로 오피스텔 네 개 동이 있었다. 그 건물 사이마다 길을 내어 커다란 십자 형태를 이루었다. 그 길의 재질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푹신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해의 겨울 끝 무렵, 그것을 다 뜯어내고 아스팔트를 깔았다. 거기에다가 악취미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녹색칠을 해두어, 언뜻 보면 농구 코트의 우레탄 바닥 같아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뛰어다니지 말라고 주의를 시키고 있을까?
십자 형태의 길의 둘레에는 조경 차원에서 심어둔 벚나무들이 가로수 노릇을 했다. 벚나무들은 아직 든든하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높이였다. 하지만 봄이 되면 고작 1~2주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사력을 다해 꽃을 피워냈다. 하얀, 그리고 희미하게 분홍빛을 띈 꽃들이 가지마다 뿌옇게 뒤덮였다. 만개했던 꽃들은 끝물이 되면 희미한 바람에도 우수수 꽃 비를 뿌렸다.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은 바람을 따라 회오리 치듯 빙글빙글 돌았다. 그 뒤를 어린아이들과 강아지들만이 좇았다. 봄의 끝에 비가 내리면 힘겹게 매달려 있던 마지막 꽃잎들도 모두 씻겨 내려가고, 여린 잎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푸르고 빽빽하게 여름을 살아낸 짙은 녹색의 잎들은 가을이 되면 다시 한 번 장관을 이뤘다. 푸른빛의 젊음을 벗고 저마다 누르고 붉은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길 양쪽에 선 벚나무 들이 가지를 늘여 하늘을 간신히 덮었다. 듬성듬성 난 잎들 사이로 파란 가을 하늘이 언뜻 보였다. 그리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벚잎들은 그 빛깔 그대로 낙엽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가을은 항상 짧았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올려다본 파란 하늘과 단풍 진 벚나무 잎들은 아주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그 찬란한 빛들의 배웅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다음 길로 향하곤 했다.
십자 길에서 서쪽 방향으로 나가 횡단보도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산책길이 시작된다. 전체 길이는 2km 정도 될 것이다. 길의 분위기의 차이에 따라 그 길을 4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보자면, 아파트와 중학교 사이에 조성된 짧은 산책로, 빌라들이 들어 차 있는 작은 동네의 골목길, 커다란 아파트 단지 사이의 삼나무 산책길, 그리고 사법연수원 사잇길이 그것이다. 동네 골목길을 제외하고 나머지 구간에서는 대부분 사람이 다니는 길과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 각각 조성되어 있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일직선으로 곧게 나 있고 회색이나 붉은색의 보도블록으로 덮여 있었다. 자전거 길은 푹신한 바닥에 구불구불하게 흐른다. 관상용 나무나 벤치, 때로는 석등 같은 석조물이 두 길 사이를 나누기도 했지만 대부분 두 길은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두 길을 합친 폭이 소형차 두 대가 다니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는 정도다. 그 양쪽으로는 갖가지 초목이 심어져 있었다. 그것들은 도시의 조경 담당자들이 약 10여 년 정도 전에 이 정도 크기가 되면 딱 보기 좋겠구나 했던 정도로 자라 있었다. 사람의 손이 잘 닿지 않았던 어떤 나무는 너무 웃자라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는데, 그것은 한쪽 기둥 없이 살아남은 고대 건축물의 아치 같은 모습이었다. 그 아래는 한여름에도 선선했다. 가로등 불빛도 잘 닿지 않아 밤에 그 아치 아래를 걸으면, 미처 덜 깬 꿈속에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는 듯이 두근거렸다.
이른 봄이 되면 산책길에서는 어린 봉오리들이 시험하듯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꽃샘추위가 오면 얼른 봉오리를 닫아 버리곤 했다. 목련 봉오리들이 특히 그런 새침함이 심했다. 네 녀석이 소담하게 핀 모습을 보고야 말겠다며 별러 보아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조금 따뜻해진 날은 곧 제법 꽃다운 꽃이 피겠거니 하고 기대하게 했다가, 다음 주말에 와보면 다시 봉오리를 앙 다물어 버리길 반복했다. 그러면 나는 괜스레 혼자 섭섭해하며 황사라던가 주말 약속이라던가 하는 핑계로 산책하는 것을 미뤄 버리곤 했다. 까무룩 잊고 있다가 따뜻한 햇살에 화들짝 놀라 길을 나서야만, 어느새 목련들은 두 손 가득 쥐어질 풍만한 자태로 꽃잎을 펼치고 있었다. 특히 놀이터 옆 커다란 자목련 나무에 보랏빛 불이 활활 타오르듯 꽃이 한가득한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 몽글몽글 피어난 자태가 글자 그대로 나무에 핀 연꽃이었다. 봄 답지 않게 고운 하늘빛을 쬐는 목련꽃들은 하나하나 행복해 보였다. 그럼에도 사람 손톱만 스쳐도 갈색 상처가 나는 그들의 예민함은, 가장 안쓰러운 낙화를 남기곤 했다. 심장 떨어지듯 그 큰 꽃잎들이 툭툭 떨어져 땅에 찍히고, 사람에 찍히고, 바퀴에 찍혔다. 하얗거나 보랏빛으로 고왔던 도톰한 꽃잎은 갈색 누더기가 되었다. 그런 낙화의 고통을 감내하며 목련 나무는 새 잎을 뽑아 올렸다. 봄의 끝 무렵, 길은 그런 어린잎들이 목련과 모란, 작약, 그리고 라일락의 죽음을 애도하며 숲 터널을 만들 채비에 한창이었다. 꽃들이 자욱하게 뿜어 대던 향내도 하나하나 지워지다, 마지막에는 삼나무들의 청량하지만 따스한 체취가 길을 덮는다. 마침내 여름이 된 것이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하는 날이면 삼나무 향은 거의 폭력적일 정도였다. 아찔한 나무 향이 가득한 삼나무 터널을 지나오면, 마음도 갓 빨아 물기를 털어낸 빨래처럼 상큼해지곤 했다.
마지막 구간인 사법연수원 사이 길에는 내가 이 길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길고양이이다. 사법연수원 사잇길과 길 건너에 있는 웨스턴돔을 잇는 육교가 하나 있는데, 그 육교가 시작되는 이 쪽 편의 계단 아래가 길고양이들의 은신처였다. 고양이들은 그곳을 중심으로 사법연수원에 조성된 화단들 사이사이에서 얼굴을 내밀곤 했다. 검고 희고 얼룩덜룩한 녀석들이 계절마다 그곳을 스쳐 갔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위한 집을 지어 주기도 하고, 먹이와 물을 놓아주었다. 혹시라도 치우는 사람이 있을까 봐 예쁜 글씨로 메모를 붙여 놓기도 했다. 고양시라는 이름값인지 일산에서는 나름대로 길고양이들을 보호하려고 했고, 길고양이를 해코지한 사례가 있을 때는 현수막을 걸어 범인을 찾기도 했다. 일산에 사는 길고양이들의 묘생이 인생보다 더 행복할리야 없겠으나,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시간 동안은 그들은 참 행복해 보였다.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더 햇볕 따뜻한 자리를 찾아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들어 있는 그들 옆에서 나도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고 싶었다.
어느 봄인가에는 새끼를 너덧마리 거느린 어미 고양이가 나무 타기를 가르치고 있었다. 자, 이렇게 하는 거야,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기 고양이들은 저들끼리 꼬리를 물고 엎치락뒤치락 장난을 치다가 엄마 목소리에 일제히 나무를 올랐다. 클라이밍 하는 선수들처럼 섬세하게 손톱 걸 자리를 찾고 뒤뚱뒤뚱 나무를 오르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이윽고 걸터앉을만한 가지에 까지 다다르면 애옹, 자랑스레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잘했구나. 기특하구나. 마음을 다해 감탄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았다. 그런 새끼 고양이들이 나고 자라는 계절이면, 그 고양이들이 잘 있는지 살펴야만 마음이 놓였다.
산책길의 끝은 다시 여러 선택의 갈래로 나누어진다.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갈까? 육교를 넘어서 웨스턴돔까지만 갈까? 아니면 걷는 김에 호수 공원도 한 바퀴 돌고 올까? 그런 선택들이 그 날 먹을 저녁을 결정하기도 했고, 내 체력을 가늠해 보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그 산책길은 나의 고민 많았던 20대의 끝을 조용히 함께 해주었고, 스물아홉의 봄에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보려고 시도했을 때 기꺼이 자신의 몸을 시험대로 삼게 해주었다. 새 똥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던 날도 웃지 않으려 애쓰면서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곳을 떠나기로 선택했을 때 조차도 다 괜찮다는 듯이 포근하고 상큼한 공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내가 그 산책길 위에서 했던 모든 고민들에 대해 내가 어떤 결정을 한다 해도 길은 말없이 지지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 따뜻한 길이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아주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