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고치

알콜홀릭ㅣ 서유미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2-05 오후 5.06.42.png 주류제조가


취미로 술을 만들어요. 알콜이 주는 위로와 행복에 대해서 함께 공유하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서유미

학부 때는 일본어를 전공하고 대학원은 일본지역 전공을 했지만 서울에 삽니다. 잘 닦여진 아스팔트 같은 순탄한 인생을 살았지만, 같이 걷던 사람들도 이정표도 사라진 길 위에 홀로 서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이 길이 맞는지 고민이 됩니다. 아마도 지금은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봐야 하는 시간 같아요.




여름이 막 시작되려던 연푸른 유월


너와 내가 우리가 되던 그 날은 생각보다 감격스럽지 않았다.

삼십 년 애지중지 키워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너에게로 걸어가던 그 순간에도 나는 무덤덤했다.


신혼집에 채워 넣을 침대와 냉장고를 둘러볼 때에도

따뜻한 아침밥을 담을 그릇을 고를 때에도

나는 오히려 번거로웠다.


온전히 내 것이었던 폭신한 침대를 너와 공유하고

화장기 없는 부스스한 나를 드러내어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상을 나눠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 나는 낯설었다.


서툴고 미숙한 나에게

자기중심적이고 무신경한 나에게

너는 혼자서 단단한 ‘우리’를 선물했다.


쨍알쨍알 쉬지 않고 불안을 토해내는 나를 토닥이며

너는 묵묵히 ‘우리’라는 고치를 만들어갔다.


너라는 존재가 만들어준 고치 안에서

나는 모처럼 평온하다.

깊은 우울과 고독과 외로움은 포근한 고치 안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나를 사랑하느냐”는 반복되는 나의 질문에

너는 한결같은 웃음으로 답한다.

그 웃음은 돌돌돌 새하얀 실을 만든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를 이겨내는 서로 안에서

나는 너의 품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작은 누에가 되었다.


우리가 명주가 되는 보드라운 꿈을 꾸며

나는 지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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