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버리고 버려서

인생진화론 ㅣVincent

by 한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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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 하나의 글귀는 주제가 되어 설명과 예시를 부른다. 예시는 인물과 배경을 등장시켜 사연을 만들고 사연은 플롯의 옷을 입어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부르고 재미와 감동으로 현혹한다. 거짓말에 진실을 담아, 진실을 그럴듯한 거짓말로 위장시켜 현실의 감옥에 갇힌 이들을 상상 속의 우주로 탈출시킨다.


작가 프로필 ㅣ Vincent


아이들은 황홀한 피리 소리만 따라갈 뿐 남자의 정체 따윈 관심 없었다.내가 누구인지는 글이 결정할 것이다. 안타깝고 슬픈 로맨스든, 우주의 장대한 모험담이든, 인생에 대한 미천한 깨달음이든 인정욕구에 중독된 자아를 외면하고 순정의 진실만 담아 당신에게 글을 쓴다.

내 이름은 Vincent.
한 줄을 써도 부끄럽지 않은 글로
당신과 마주할 수 있기를...




눈을 떴더니 혼자였다.
방이 6개나 되는 집을 가득 채운 물건들이 저마다 화려한 과거와 아름다운 그녀를 잊지 못해 흐느끼고 있었다.

감정이 추상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그날처럼 깨달은 순간은 없다. 물건들마다 새겨진 그녀의 마르고 따뜻한 손길, 세재로 방금 씻은 그릇처럼 뽀드득거리는 그녀의 목소리, 빛나는 피부와 초롱한 눈망울로 짓는 눈웃음, 당장 잡으면 잡힐 것 같았다.

어쩌면 슈퍼에 갔을지도 모른다. 잠깐 백화점에 갔거나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마트에 들러서 늦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간 김에 아이가 좋아하는 라면집에 들렀다가 이제 택시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또 해가 저문다. 여전히 어두컴컴한 집에 그녀는 오지 않는다.
어제와 마찬가지의 오늘...
어둠 속에서 물건들이 다시 유령처럼 울부짖었다. 그녀를 돌려달라는 비명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침 일찍 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재활용 센터 사장과 직원들이 집을 둘러봤다. 대충 견적을 뽑은 그들은 곧바로 하나씩 퍼날랐다.
그녀가 유달리 아꼈던 낮은 테이블과 원목 의자들, 수많은 밤을 안아줬던 침대와 매트리스가 사라졌다. 12자짜리 붙박이장이 해체되고 안에 있던 옷들이 전쟁 부역자처럼 내팽개쳐졌다. 그 모든 것들을 그녀가 고르고 계산할 때 난 거기 있었다.
“이거 정말 다 버리시는 거예요?”
사장이 물었다.
“네.”
“괜찮으시겠어요?”
“뭐가요?”
내 대답에 사장은 더 말이 없었다.

책들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책이 곧 나고 우리고 전부라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첫 데이트도 서점이었고 그녀의 첫 선물도 책이었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각자의 책을 읽고 신기한 이야기를 서로 해주며 밤이 깊어가는 것을 즐겼다. 거실 한 가운데 무덤처럼 쌓인 책들의 표지는 전부 그녀의 미소였다. 그 미소가 깨진 유리처럼 갈라지며 문밖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발 뻗고 아이와 놀던 소파, 그 소파를 마주 보던 나의 리클라이닝 소파도 죄수처럼 끌려 나갔다. 가죽 옆면에 아이가 그림놀이를 할 때 튀었던 물감이 선명했다.

질질 끌려 나가는 물건의 행렬과 함께 마음도 뜯겨 나갔다. 한동안 잊었던 가슴 앓이가 꿈틀거렸다. 뜯긴 마음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가슴을 뜯는다. 체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저앉았다.
물건은 계속 끌려 나가고 있었다. 식탁, 의자들, 신발들, 온갖 밀폐용기들과 여행 기념품들, 웨딩사진과 아이의 백일, 돌, 생일 사진 액자들이 사정없이 끌려 나갔다.

모든 물건들이 울고 있었다.
이제 추운 고물상 맨바닥에서 뜯기고 버려질 것이다. 물건에 영혼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와 함께 함부로 물건을 사는 게 아님을 그날 알았다. 소유로 관계와 존재를 확신했던 결과가 얼마나 가혹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버린다고 버렸지만 도시를 떠날 때 용달차의 짐은 아직도 한 가득이었다. 끝내 버리지 못한 책들과 디브이디, 티브이, 책상, 매트리스, 침구, 옷들, 언젠가 유용할 거라고 날 꼬드겨서 살아남은 세간살이들이 화물칸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위태로운 건 구질구질하다. 구질구질하게 흔들리는 그 짐칸을 보면서 행여 뭐라도 떨어질까 조마조마해하는 나도 구질구질했다.

새로운 직장과 새로운 거처 사이의 거리는 벅찰 정도로 멀었다. 중년의 몸은 그 거리를 견디지 못 했다. 그나마 갖고 있던 물건들을 돌볼 여유를 잃고 그저 직장, 집, 직장만 반복했다. 삶은 단순해졌고 오늘을 넘기는 게 오늘의 목적이 되었다.
고통스럽고 단순한 일상이었지만 결국 득이 된 것도 있었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시간은 점점 내게 필요한 것과 쓸데 없는 것을 뚜렷하게 갈랐다.

이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내일이라도 난데없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내 치열한 존재의 증거였던 물건들은 폐기되고 파란만장했던 내 삶의 흔적들도 모두 사라지겠지. 인생의 노하우와 롤러코스터 같은 삶에서 얻은 남다른 깨달음, 나의 자존심을 지탱해왔던 특별한 경험들이 모두 먼지처럼 사라지고 내가 이 세상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묻는 것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지금부터라도 삶의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때 글이 떠올랐다. 말은 잊히고 존재는 사라져도 글은 남는다.
학부에서는 교재를 축약해 리포트를 만들고 대학원에서는 배운 것을 확장해 논문을 만든다. 읽을 만큼 읽었고 경험할 만큼 경험했으면 이제 인생의 논문을 써야 할 때다.

해야 할 것이 정해지자 나머지는 모두 불필요해졌다.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면 소중한 것들로 에너지가 집중된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된 것들은 시간을 두고 줄이고 공간만 낭비하고 있던 것들은 당장 버리기로 했다. 절대 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 해봐야 곰곰이 생각해보니 노트북과 휴대폰, 속옷과 양말을 비롯한 옷 몇 벌, 신발 한 켤레가 전부였다.

이불, 식기, 신발, 욕실용품 등은 당장 일주일 생활하는 데 필수적인 양을 정하고선 나머지는 필요한 사람에게 주거나 버렸다. 매트리스는 1인용 접이식 메모리폼 매트로 교체하기로 했다. 티브이도 일단 이불장에 넣었다. 꼭 봐야 할 영화만 리스트를 정해서 몰아볼 때만 꺼내기로 했다. 이불은 침낭 2개에 담요 하나로 교체했고 템퍼 등받이 덕택에 책상과 의자도 필요 없어서 처분했다.
오디오 역시 쓸 데 없었다. 음악이나 팟캐스트는 출퇴근 때 만 듣는다. 시골의 아버지께 보내드렸다. 당연히 시디도 필요 없어졌다. 컴퓨터, 블루레이 플레이어, 플스, 디브이디, 게임 시디, 카메라와 렌즈, 서랍장, 티브이 장, 트렁크, 그 외 온갖 잡다한 것들도 다 처분했다.
도저히 버릴 수 없을 것 같던 책들과 앨범들(이게 가장 힘들었다)까지 버리자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뻥 뚫렸다. 넓어진 방안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문을 나선 출소자처럼 가슴속으로도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단사리라고 하던가? 끊고 버리고 떠난다.
생존 이상의 소유는 결국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거나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불과했다. 내가 가진 것이 곧 나였고 세계는 나의 소유를 보고 나를 판단한다고 믿었던 내가 틀렸다. 나의 차가 내 능력을, 나의 책이 내 지성을, 나의 아파트 평수가 나의 성공을 입증할 수는 없다. 정말 그렇다면 내 능력과 지성, 나의 성공이란 얼마나 얄팍하고 부실한 것인가. 어쩌면 그래서 그녀가 떠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도 갖는 게 전부였던 과거의 나를 떠난다.

하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은 다르다. 용량에 한계가 있는 인간의 삶은 결국 갖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하나만 선택한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우습게 만든다. 소유는 경험을 무시하고 경험은 소유를 하찮게 여긴다. 한 사람이 살았던 삶의 의미는 둘 중 하나로 결정된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새로운 질문이 던져졌다.
어쩌다 보니 소유의 삶은 살았다. 그 삶에서는 답을 얻지 못 했다. 보편적인 삶의 진리가 거기에 없었을 수도 있고 내 팔자가 그런 삶에 맞지 않을 수도 있었다. 꼬리를 문 질문은 쉽게 대답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일단 지금은 물건을 버린 덕택에 마음의 짐도 버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답을 찾아 떠난다. 답을 찾는 과정은 곧 글이 되어 누군가에게 의미를 던질 것이다. 그게 가능하기만 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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