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첫 단추
그것을 말하려면 '언어'의 본질부터 시작해야 한다.
언어가 없다면 우리는 하늘을 하늘로 인식 못하고, 오렌지를 오렌지로 인식 못하고, 너를 너로 인식 못한다.
그저 내 외부세계가 뭉뚱그려 존재할 뿐이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차도 건너편에서 걷고 있는, 너와 마주쳤을 때
내가 아는 너가 맞나? 너와 닮은 또 다른 사람인가 헷갈릴 것이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도 이름을 부를 수 없으니 방법이 없다.
언어의 첫번째 기능은 '구분'이다.
세계의 덩어리를 한없이 미분하는데 분명 한계가 있다.
세계에 분명 존재하는데 아직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특히 미묘한 감정이 특히 그렇다.
'소설의 맛'은 한정된 언어로 그것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 아닐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한 세계
어느 소설을 읽었을 때
작가가 아주 새로운 감정을 도출시키지 못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은 왜 작가를 하는 걸까?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데..."
그 작가는 안타깝게도 소설가가 되기 위해 소설을 쓸지 모른다.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은 절대로 작가가 될 수 없다.
작품을 써야 작가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되고 싶다면,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복잡 미묘한 세계를 꾸준히 관찰하고 그것에 관해 꾸준히 쓰다 보면
어느새 작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문학 외의 글도 일적으로 쓴 경험이 많다.
- 싸이월드, 페이스북에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일상글
- 잡지사에게 일할 때 아티스트 인터뷰, 영화와 도서 리뷰
- 환경신문사에서 환경문제에 관련된 기사
- 콘텐츠회사에서 기획안과 콘텐츠 소개글
-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 설명, 홍보카피
- 북한산 국립공원에서 등산 가이드
- 청소년을 위한 IT 산업의 역사 스토리텔링 소설
- 영화 제작 가이드북
- 성미산 마을 주민으로 살 때 성미산 축제 포스터
- 전시회 소개 글
- 연애편지
이밖에도 자잘한 것들이 무수히 많다.
어느새 말보다 글이 편하고
생각을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하게 되었다.
내게 글쓰기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묻는다면 서슴없이 세 가지 키워드를 말할 것이다.
- 커넥션 (연결)
- 커뮤니케이션 (소통)
- 에볼루션 (진화)
내가 쓴 글은 반드시 누군가가 읽는다.
즉 나는 글을 통해 누군가와 연결된다. '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그런데
나와 타자의 연결 이전에 나와 자아의 연결이 우선한다.
내 자아를 깨닫는 최고의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내 세계는 우주처럼 무한한데 언어로 드러내지 않으면, 나는 묻혀버린다.
쓰지 않으면 나는 그저 육체 덩어리가 된다.
글 쓰는 행위는 내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다.
내가 쓴 글은 '나' 그 자체이다.
그래서 쓰지 않으면, 나는 나 자신과 연결되지 못하고
나는 죽을 때까지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나 자신과 잘 소통하지 못하면 타인과도 잘 소통하지 못한다.
생각이 다른 타인과 소통하려면, 사이를 언어로 채워야 한다.
정보, 감정, 계획 등 많은 것이 오고 가는데
두 사람이 미처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 소통의 기쁨이 크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함께 나누다가 대안을 찾기도 한다.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타자와 소통하고 함께 세계를 확장하는 법
소통하는 글쓰기의 최고 덕목은 '친절함'이다.
내가 쓴 시나리오나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칭찬이 '가독성이 좋다.'인데
내 글이 가독성이 좋은 이유는 친절한 글쓰기를 노력하기 때문이다.
첫째, 꼬인 뇌를 반드시 풀 것.
내 생각이 복잡할 때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계속 풀어가는 글쓰기를 먼저 한다.
즉 내가 먼저 심플해져야 한다. 내가 나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내가 생각이 복잡해서 괴로워할 때
나를 글쓰기로 달래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꼬인 뇌가 풀린다.
내 생각이 명확해진다.
둘째, 타인에게 친절한 태도를 유지할 것.
온라인 쇼핑몰에서 일하면서 엄청 훈련을 했다.
상품 페이지를 봤는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모르겠어요...그런 컴플레인을 많이 듣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친절한 글쓰기를 하게 된다.
초등학생 1학년도 이해할 수 있게 쓰자...가 모토가 되었다.
물론 아직도 멀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한다.
나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안다.
나는 매번 하나의 포스트를 쓸 때마다 내가 똑똑해진 것을 느낀다.
인간의 자아는 무한하다고 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뇌의 30%밖에 사용 못 한다고 했다.
글을 써야 무한하게 진화한다.
인류의 뇌가 이만큼 발전한 이유도 다 언어 때문이다.
언어가 없었으면 우리는 여전히 원시인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원시인이 달나라에 가듯이...
나 역시 사고의 영역이 지구 밖으로 벗어날 수도 있다.
오늘 연세대학교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학교 운동장에 갔다.
잔디밭 축구장 주변이 트랙으로 되어 있는데 조금이라도 걷기로 했다.
그런데 내 옆으로 천천히 달리는 학생 여러 명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 학생들을 뒤쫓아 달렸는데 몇 미터 못 가서 다시 걸었다.
그래 오늘은 걷자, 하지만 내일은 뛰자...그렇게 스스로 위로하면서.
글쓰기는 달리기와 똑같다.
습관이 들지 않으면 정말 힘들다.
쓸 게 있어서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쓰니까 쓸 게 생긴 것이다.
시나리오를 완성 못해서 애먹은 적이 있었다.
공모전 6개월 전...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군!
공모전 3개월 전...3개월이면 충분하지!
공모전 한 달 전...으아 한 달 남았다. 할 수 있어! 70페이지를 30일로 나누면 매일 두 페이지만 넘기면 되잖아!
공모전 일주일 전...CFoot(욕) 망했다. 뭐래도 써서 내자...
결국 엉망진창 쓴 뭔가(똥에 가까움)를 내고 장렬하게 떨어졌다.
이렇게 공모전을 연속해서 세 번 떨어지고
나는 내 접근법을 바꾸지 않으면, 절대 당선되지 못할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행동이 개인 온라인 카페를 만든 것이다.
당시에는 싸이월드 시절이라, 싸이월드 카페에다가 글을 썼다.
처음에는 카테고리가 하나였는데 갈수록 카테고리가 늘어났다.
책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광고
리뷰 카테고리
내가 쓰는 작품별로 제목을 단 카테고리
이미지 자료 카테고리
그렇게 매일 차곡차곡 자료를 모았다.
게을러서 매일 글을 올리지 않게 되자,
매일 남기는 에세이 카테고리도 만들었다.
'반디앤루니스를 가서 책을 고르다가 이상형 여자를 만났다.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지만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녀 주변을 얼쩡거리며 한참 동안 무슨 말을 할까? 생각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그녀가 어떤 책을 골랐을 때, 칼융의 아니무스 아니마 이론에 관한 책은 그 책 보다 여기 이 책이 더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어요! 하고 옆에서 주접떨던데... 그녀가 고른 책은 '오페라 여행'이란 책이었고 나는 오페라에 관해 1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오페라를 찾아들었다. 푸치니_ 투란도트_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가사가 뭔 소리인 줄 모르겠는데 그냥 눈물이 나왔다.'
이게 내가 처음 쓴 에세이였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매일 에세이를 썼고 글 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지금은 35페이지 대본 한 편을 하루 만에 쓸 수 있다.
공모전을 일주일 준비해서 당선된 적도 있다.
뭐든 계속하면 늘게 되어있다.
100페이지 대본을 다 폐기처분한 적도 있다.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좋은 결과물은 좋은 과정에서 나온다.
급하게 쓰는 버릇은 안 좋다.
매일 조금씩 써야 한다.
어려운 거 다 안다.
나 역시 아직 러닝이 어렵다.
그래서 오늘도 걷는다.
러닝을 매일 하는 친구가 말했다.
"잘했어. 일단 내일도 걸어. 모레도 걷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뛰게 될 거야."
KEEP WRITING
골방작가란...
자신이 쓴 글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가장 친한 친구한테는 보여주는데요. or 저는 합평반에 참가하고 있어요.
과연 저는 골방작가인가요?
묻는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몇 명까지 보여주면 골방작가가 아니다... 정의 내릴 수 없다.
단 골방작가는 태도에 관한 말이다.
골방작가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바바리맨은 어떨까?
프랑스 작가 아니에르노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것만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녀의 소설은 치부까지도 다 드러낸 벌거벗은 육체와도 같다.
그녀는 바바리우먼이 틀림없다.
노출증 환자 아니에르노는 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원래 문학은 그런 것이다.
도둑질, 바람피운 거, 죽이고 싶은 충동, 속인 거...다 써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까지 들춰내는 것. 이 세상에 쓰기 부끄러운 소재는 아무것도 없다.
세계 대문호의 소설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 너무도 많다.
나 자신이... 내가 가장 잘 아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이거 당신 얘기죠?" 묻지 않는다.
설령 묻는다 해도 작가는 "아니요, 창작한 허구죠." 대답하면 된다.
골방작가 대부분 I 형이다.
부끄러워서 보여주지 않는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아무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작품을 도대체 왜 쓰는가?
그것은 분명 작가의 태도가 아니다.
내가 아는 지인 중 거의 20년간 공모전에 도전하는데 계속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는 처음에 내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우리는 카페에서 만났고 나는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기본기도 되어 있지 않았고, 세상 모든 신파를 짜깁기한 것에 불과했다.
나는 이 스토리가 너랑 무슨 관계가 있어? 이 스토리가 세상과 무슨 관계가 있어? 물었다.
그 질문은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영화처럼 쓰고 싶었을 뿐인데...왜 그런 질문을 내게 하는 거야?'하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뭔가(작품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를 매년 공모전에 응모하고 탈락한다.
심사위원에게만 보여주겠다는 그 심보는 또 뭔가? 어쩌면 심사위원도 몇 문장 읽고 안 읽었을 수도 있다.
결국 그는 누구도 읽지 않는 뭔가를 지금도 쓰고 있다.
최근 잘 지내냐, 연락했는데 요즘은 A.I에다가 소재를 넣고 A.I가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쓴다고 한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왜 작가가 되려는 걸까?
때론 골방에서 혼자 고통을 감내하며 써야만 하는 시기가 있다.
올드보이가 따로 없다.
그때 나는 너무도 괴로워 줄담배를 핀다.
하지만 스토리를 마치자마자
바바리맨처럼 거리로 뛰어나가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마구 노출시킨다.
모니터링은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엉뚱한 피드백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도움 될 만한 피드백이 훨씬 많다.
나는 엉뚱한 피드백도 받아들이는 편이다. 조금이라도 그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분명 더 좋아진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피드백 듣는 것을 즐겨야 한다.
쓰고- 누군가가 읽고 - 피드백
이 순환의 과정이 바로 '작가의 삶'이다.
요리사가 요리를 만들고, 누군가가 먹는 거... '요리사의 삶'처럼 말이다.
골방작가는 죽을 때까지 골방에 갇힌다.
즉 줄을 때까지 작가가 될 수 없다.
내가 쓴 게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는 감각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감각을 발달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보여주고 끊임없이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그 감각으로 또 쓰는 것이다. 그럴수록 감각이 더 예민해진다.
손흥민이 1밀리 차이로 공을 차서 방향을 바꾸듯이...
지금 한국 영화 드라마가 위기인 가장 큰 이유는
스토리의 부재 때문이다.
모든 작가 혹은 작가지망생들이 공룡 같은 스토리만 쓰려다 보니 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유명 감독의 블록버스터가 쫄딱 망하는 꼴을 보았다.
그래서 투자가 멈춰진 것이다.
왜 망했겠는가?
관객들은 이제 크기보다 밀도를 더 중요시한다.
식상한 블록버스터보다
차라리 바퀴벌레 같은 스토리가 좋다.
일본, 중화권 작가들이 이런 걸 잘 쓴다.
그래서 요즘에 판권을 사서 리메이크하는 작품이 많은 것이다.
그런 일상의 소소한 감동 스토리를 잘 쓰는 작가가 국내에 없기 때문이다.
모두 공룡만 생각하니까...
지금 한국 영화 드라마가 위기인 가장 큰 이유는
스토리의 부재 때문이다.
모든 작가 혹은 작가지망생들이 공룡 같은 스토리만 쓰려다 보니 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유명 감독의 블록버스터가 쫄딱 망하는 꼴을 보았다.
그래서 투자가 멈춰진 것이다.
왜 망했겠는가?
관객들은 이제 크기보다 밀도를 더 중요시한다.
식상한 블록버스터보다
차라리 바퀴벌레 같은 스토리가 좋다.
일본, 중화권 작가들이 이런 걸 잘 쓴다.
그래서 요즘에 판권을 사서 리메이크하는 작품이 많은 것이다.
그런 일상의 소소한 감동 스토리를 잘 쓰는 작가가 국내에 없기 때문이다.
모두 공룡만 생각하니까...
이거는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아는 프로듀서 혹은 공모전 심사위원들이 하는 말이다.
사실이다.
공룡은 이제 멸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는 이미 뻔한 메가플롯보다 소소한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텔링이 대세이다.
플롯은 한정적이지만, 캐릭터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새롭다.
물론 완전 새로운 블록버스터가 나오면 대박이 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품은 쉽지 않다.
또 현실적으로 대작은 쉽게 제작되지 않는다. 제작되지 않으면 내 작품은 묻히고 만다.
그럼에도 여전히 작가지망생들의 생각회로는 너무 뻔하다.
우와 나도 저런 대박 작품 쓰고 싶어! → 베낀다
→ 뻔한 설정, 뻔한 플롯, 뻔한 캐릭터...로그라인만 봐도 지루하다.
→ 광탈한다.
이제 공룡은 잊는 것이 좋다.
바퀴벌레처럼 아주 작고 소소한 소재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바퀴벌레 같은 스토리를 잘 쓰는 작가가 공룡도 알차게 잘 쓴다.
공룡을 쓰는 사람은 애초부터 글렀다.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
20년간 나를 찾아왔던 제자들 중
처음부터 바퀴벌레를 쓰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 종이로 만든 허술한 공룡을 가져왔다.
나는 가차 없이 종이 공룡을 발로 짓밟아 버렸다. 퍽! 퍽! 퍽!
"이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절반이 상처받고 나갔다.
심지어 에세이 과제가 너무 싫어서 나간 사람도 많았다.
"한국 사람들에게 '너는 누구인가?' 묻는 것은 참 실례야.
평생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가니까.
그리고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지.
평생 수동적으로 살아가다가, 나이가 들어 퇴직하고, 또 뭔가 이루겠다고 퇴직금으로 삽질하다가 다 날리고
돈도 다 떨어지고 가족, 친구들이 다 떠나갔을 때... 혼자만 남았을 때
그제야 문득 생각하지.
내가 뭘 좋아하지? 나는 왜 살지?
이건 내가 미국에 살 때 외국인 친구들에게 했던 말이다.
이 말을 하게 된 계기는 친구들이 나를 매우 이상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2층 주택에서 여섯 명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살았는데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잘 안 하고, 딱히 내 주장을 펼치지 않고, 남들을 그림자처럼 따라 하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매일 저녁을 함께 먹으며, 자신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나누곤 했는데
나는 그저 Same...so so....그런 식으로 짧게 답했다.
그때 태국 친구가 내게 물었다. "WHO ARE YOU?"
나는 그 질문이 너무도 충격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몰랐다.
부모와 선생이 시키는 것을 했을 뿐이었다.
시키는 것을 잘하다 보면 잘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윗세대가 물려준 보물지도를 보고 보물이 있는 곳에 가봤더니 보물은 없었다.
무척 당황했다.
내 청춘 다 바쳐서 초중고 때 공부만 했고, 좋은 대학을 갔고, 매년 전액장학금 받으면서 졸업했는데
내 졸업장은 아무 쓸모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가 모험을 아주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해준 것을 잘할 자신은 있는데, 내 삶을 창조하라니...내가 내 삶을 개척하라니...
무슨 소리야? 제발 내가 뭘 해야 할지 알려줘!
그게 벌써 내 20대 스토리고, 지금 시절은 더욱더 보물이 없다.
그런데 여전히 학부모와 학생들은 프로그래밍된 삶을 살고 있고
대학 졸업생들은 과거의 나처럼, 자신이 삶을 직접 개척해야 된다는 현실에 당황하고 괴로워한다.
때론 그 현실이 감당이 안돼서, 지구에서 도망쳐 별나라로 가버리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결국 바퀴벌레를 못 보는 것이다.
늘 고개는 공룡을 올려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자세를 낮춰야 한다.
밑바닥을 봐야 한다.
작은 풀에서도 바퀴벌레에서도 의미를 찾아야 한다.
소우주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
소소한 것을 관찰하고 쓰는 과정이... 바로 자아를 찾는 과정이다.
오늘 하루 아주 사소한 모먼트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 바로 자아를 찾는 과정이다.
자신의 사소한 경험을 소외시키는 사람은 절대 작가가 될 수 없다.
한 주간 어떻게 보냈어요? 묻는데
그저 "별 거 없는데요... 지난 주랑 똑같은데요." 하는 순간, 아...난 작가가 될 수 없구나! 깨달아야 한다.
자아를 탐구하세요...
자기 안으로 파고 들어가세요...
그 안에 숨겨진 보석이 있을 거예요.
나의 글쓰기 스승 윤후명 작가님이 강조한 말이다.
결국 내적 글쓰기를 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어려워한다.
늘 뭔가 거창한 것을 쓰려다가 망한다.
또 여전히 다른 작가의 컨셉을 베낀다.
그들이 쓴 단편소설을 다 읽고 나면 현타가 밀려온다.
도대체 이걸 왜 쓴 걸까? 자기도 모르는 이야기 아닌가!
소설 읽기가 너무 좋아서 소설가가 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이 딴딴해서 파고들어 가지 못한다.
남의 소설은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기 소설은 제대로 못쓴다.
여전히 작가의 영역이 아닌, 독자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결국 그럴듯하게 또 베낀다. 누가 더 그럴듯하게 베끼나 경쟁을 한다.
즉 아무리 뛰어난 선생님에게 배워도 스스로 자기 안으로 파고들지 않으면, 절대 작품을 쓸 수 없다.
소설이나 시나리오나 접근법은 똑같다.
내가 감동받았던 영화나 드라마를 떠올려 봐라.
그 안에 뭉클한 인간의 마음이 있었다.
그 작품을 쓴 작가는 그 보석을 발견한 것이다.
이은경 작가의 <평범한 하루가 문장이 된다>에서 격하게 공감하는 내용을 나눠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기장은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꼭꼭 숨겨야 할 존재였다. 개인적 감정을 드러내는 일을 유치하거나 미성숙한 것으로 여겼고, 사소한 일상을 얘기하는 것은 점잖은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배웠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글감에도 제약이 따랐다.
'이게 글로 쓸만한 일일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새벽에 먹은 라면 사진 한 장, 버스 안에스 들은 한마디 대화, 아이가 던진 엉뚱한 질문 하나도 누군가에게 공감의 소재가 된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글에서 완벽한 서사나 거창한 메시지를 기대하지 않는다. 불완전하고 우스운 나날이 서로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정답보다 진심이 환영받는 시대다. 회사원은 출근길의 번잡함을, 엄마는 아이와의 작은 다툼을, 학생은 시험 망친 날의 기분을 있는 그대로 쓴다. 그 글이 읽는 사람을 위로한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안도감이 생긴다. '이렇게 느끼는 게 나뿐만이 아니구나.' 자랑의 공간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던 SNS가 일상 기록장이 되고, 자기를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글쓰기를 지속하는 사람은 과거를 붙잡기보다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언뜻 스치는 장면 하나에도 감탄하고, 사소한 감정의 떨림에도 귀 기울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밥상 위의 김 한 장, 버스 창문에 비친 노을빛, 무심히 건넨 인사의 온도는 물론, 오늘 점심 메뉴를 고르며 떠올린 생각, 친구한테 전하지 못한 말 한마디, 길모퉁이의 고양이를 바라보던 짧은 시선이 글로 되살아 난다. 이런 순간을 붙잡아두려는 마음이 글을 만든다. 그렇게 하루는 관찰과 감정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글은 나를 억누르는 기억, 상처, 걱정보다 오늘의 나, 요즘의 나를 좀 더 세세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우리는 글을 쓰고 읽으며 정답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는다. 이 사람은 이렇게 느꼈구나, 나도 저런 마음이었지. 그런 공감의 순간이 독자를 멈춰 세우고, 다음 문장을 기다리게끔 한다. 지금 이 순간을 더 선명하게 살아내는 방식이다."
즉 우리는 서로가 발견한 마음의 보석을 감상하며 아름다움을 느낀다.
솔직히 말하자면, 'A.I가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 라고 믿는 사람은 작가가 될 수 없다.
인간은 애초부터 매우 불완전한 존재이고 인간의 자아는 절대 A.I가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인간은 불완전해서 아름다운 것이다.
마음의 보석은 이성과 논리, 데이터로도 분석되지 않는다.
완벽을 지향하는 A.I가 어떻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바쇼의 짧은 시...오래 된 연못에 개구리 첨벙!
이 시가 주는 미묘한 감동을 과연 A.I가 알 수 있을까?
A.I는 끊임없이 그럴듯하게 베끼는 작가지망생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A.I를 뛰어넘는 작품을 써야만 한다.
그러지 못하면, 작가라는 직업을 A.I에게 넘기고 이 판을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