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일반? 이반?

3월 공통주제 <정체성> ㅣ 화이

by 한공기
화이 프로필.jpg 땅고댄서


어느 날 미드를 보다가 문득, 우리나라도 땅고를 매개로 한 드라마가 있으면 많은 이들에게 땅고라는 춤을 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작가 프로필 ㅣ 화이

아르헨티나 땅고 댄서이자 땅고 아카데미 '엘 불린' 대표

도서 '탱고레슨' 저자






예전에 미국 뮤지컬 단체와 합작을 한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오즈의 마법사였는데, 메인 캐릭터들은 다 외국인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소소한 단역들이나 코러스를 맡아서 했었다. 아직 2000년이 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당시만 해도 뮤지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나 저작권에 대한 개념, 무대장치 등의 기술, 제작 활동 등에 매우 무지할 때였다. 그래서 그때의 합동 출연이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지금은 기계장치들이 더 발달이 되어서 모든 게 컴퓨터로 이루어지지만, 그때만 해도 날으는 원숭이나 도로시의 집이 날아가는 장면 등은 소대(무대 안쪽)에서 크루들이 와이어를 당겨서 들어 올리곤 했다. 그 크루들은 팔뚝에 문신이 가득하고 수염이 긴 히피 같은 이들이었는데, 처음의 무서운 인상과는 다르게 다들 어찌나 상냥하고 재미있었던지 문신에 대한 거부감이 그때 다 사라져 버렸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대감독이었다. 조지 클루니를 닮은 짙은 인상의 미남이었는데, 국내 여자 배우들이 모두 그 무대감독에게 홀딱 반했었더랬다. 한 번은 공연 전에 모여서 밥을 먹는데 그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는 걸 발견했다. 그때만 해도 영어가 무서울 때여서 우리는 아주 더듬더듬 손짓 발짓 다 섞어가며 대화를 하곤 했는데, 한 명이 용기를 내어 물었었다.

"Are you married?"

"Yes!

여자애들의 실망 섞인 탄식소리. 그다음에 그의 대답은 우리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내 남편이 내 보스야."

엥? 남편이라고? 와이프가 아니라? 그는 게이였다. 그 대화 이후에 같은 스텝으로 일을 하는 남자애한테는 네가 원하지 않으면 터치하지 않으니 걱정 말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뮤지컬 단체는 연출가부터 시작해서 게이인 이들이 많았다. 무래도 연출가가 게이이다 보니 함께 모인 이들도 비슷한 이들끼리가 편했던 모양이다. 심지어 춤출 때 나랑 짝이었던 키가 제일 큰 제프라는 남자는 단체 안의 가장 키가 작은 빅터라는 남자와 부부였다. 이 커플은 단체 내에서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우리 사이에는 약간의 충격의 멘붕상태가 돌았고, 다들 금기라도 되는 듯 그 문제에 대해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두 달가량의 공연 투어를 같이 하면서 조금씩 그들의 세계를 알아갈 수 있었다.


한 번은 탈의실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누가 노크를 한다. 여자들이 소리쳤다.

"우리 지금 다 벗고 있어!"

그러자 밖에서 남자가 말했다.

""나 무대감독이야."

그러자 여자들이,

"넌 괜찮아. 들어와."

한다. 배우들이나 무용하는 이들끼리는 -아마도 모델들도 그럴 듯- 옷을 갈아입으면서 가리거나 쑥스러워하지 않고 잘 벗고 반 누드로 돌아다니기도 하기 때문에 그때도 여자 배우들이 정말 말 그대로 브라까지 홀딱 벗고 있었다. 나는 무대감독이 들어오자 서둘러 옷을 입고 몸을 가렸지만, 몇몇 외국인 배우들은 젖가슴을 내놓은 채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게이 남자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우리는 차츰 스스럼없이 그들과 친구가 되었고, 공연 막바지에는 공연이 끝난 이후에 호텔 방에 모여서 같이 술을 마시고 떠들고 어깨동무하고 놀곤 했다. 공연이 끝나고 그들이 돌아갈 때에 우리 모두는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했다. 어느덧 우리 머릿속에는 그들이 게이인지 레즈비언인지 스트레이트인지 하는 것들이 까맣게 잊혀져 있었다. 그저 몇 개월간 정이 든 친구들과 이별하는 게 아쉽고 섭섭할 뿐이었다.


이후에 뮤지컬 작품을 같이 하던 친구 하나가 커밍아웃을 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방송인이 되어 있었던 그의 과감한 공표는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당시는 아직 게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만연할 때였기 때문에 그의 갑작스러운 용기에 나도 깜짝 놀랐었다. 그 방송 이후에 그의 삶은 완전 곤두박질쳤다. 한동안 그의 삶은 외롭고 피폐해졌을 것임에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그의 홀가분함이 그만한 값을 치를만한 가치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 번은 영국에 오로지 뮤지컬을 보자고 친구와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극장의 좌석에 앉아 있는데 옆 좌석에 너무 잘 생긴 남자 두 명이 들어와서 앉았다. 흔히 싱글 여자들의 생각이 그렇듯이, 너희도 두 명 우리도 두 명이니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들떴던 것도 잠시, 곧 그들이 커플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보니 런던에서 좀 잘 생기고 옷도 잘 입어 눈에 띄는 남자들은 늘 남자 친구들과 있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남자들끼리 어울리는 게 아니라 진짜 남자친구였던 것이다. 런던에서 남자를 만나서 데이트를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맛볼 수 없는 외국 남자들의 적극적인 눈길을 즐기는 것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 일터인데, 아시아 여자에게 눈길 한번 안 주는 그 핸섬한 남자들의 무심함에 친구와 얼마나 한탄을 했었는지 모른다.

"왜 멋진 남자들은 다 게이인 것이야!!"

내 주위에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동성을 사랑하는 이들이 하나 둘 드러났다. 그리고 그들을 혐오하는 이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무용을 전공하거나 춤으로 명성을 가진 남자들 중에는 게이가 꽤 많다. 춤을 통해 여성적인 면이 강조가 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여성적인 성향이 있기 때문에 춤을 잘 추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게이인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성 정체성을 가지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폄하하려는 사람들의 시각 때문이었다. 그의 춤 실력이 탁월한 것은 게이라서 그런 거지 그 자신의 실력이 아닌 것처럼 비하하기 일쑤이거나, 아무리 춤을 잘 춰도 게이는 존경할 대상이어서는 안된다는 논리이다. 그들 중에는 게이인 사람과 어울리면 자신도 물들까 봐 두려워서 거리를 두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게이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성스러운 몸짓이나 과한 애교가 섞인 목소리 등과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오히려 너무도 남자다웠고, 여성을 배려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었다. 단지 호감을 느끼는 대상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일 뿐인 것이다. 남자들이 길을 가다가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자동으로 눈이 따라가듯이 그들도 멋진 남자를 보면 눈동자가 돌아갈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적으로 문란하고 누구하고나 잠자리를 하지도 않는다. 그들도 이성애자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이에 대한 도덕적 신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남자 여자를 떠나서 그저 친구로서 마음 터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이었다.


어떤 이는 동성애가 뇌의 자극이 잘못된 일종의 정신병이며 치료가 가능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신병을 앓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지 않은가. 현시대처럼 상막하고 사랑조차 물질과 교환 가능한 계산적인 세상에서,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그게 남자이건 여자이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랑하는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축복받아야 하는 일 아닐까?


얼마 전 동성애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률을 지지하는 운동으로 온 페이스북이 무지개색으로 도배가 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페이스북의 사진을 무지개식으로 바꾸지 않았다. 굳이 그들을 '지지한다' 고 표명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성애를 강요할 생각도 없다. 그들이 누구를 사랑하건, 누구와 결혼을 하건, 그건 사실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 것처럼, 그들 역시 사랑할 대상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 나에게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 자유가 있지만, 그것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인종, 나이, 성별, 국적, 종교, 성 정체성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사랑을 할 평등한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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