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안 쓰레기

단촐한 상차림 ㅣ 이나사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3-28 오후 1.54.13.png 무역업 회사원
필기도구들은 저마다 다른 울음소리가 있다. 슬픔의 울음이 아닌 쓰다듬 받는 고양이의 갸르릉거리는 소리다. 꿀꿀, 짹짹, 멍멍처럼 연필은 - 사각사각 - 소리를 낸다고 한다. 종이 위를 걷은 연필의 발자국 소리가 나에게는 소복소복하고 들린다. 눈이 오지 않아도 함께 걸을 이 없어도 연필 한 자루와 함께 오늘도 나만의 겨울왕국으로 산책을 떠난다.


작가 프로필 ㅣ 이나사

Keyword: 계란 & 치즈 매니아

계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여태 내 곁에 없었다. 그리고 나에겐 늘 계란이 곁에 있었다. 계란의 어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하루에 두 알 이상씩은 꼭 먹는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온갖 음식으로 가득 차 있어도 계란 칸이 비어있다면 금란현상이 일어나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을 때, 여행 가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 항상 듣던 소리가 바로 치즈다. 참고로 우리 부모님은 김치 세대다. 치즈 세대라 김치가 없어도 밥을 먹을 줄 아는 나에게 계란이 밥이라면 치즈는 반찬이다. 필살기: 수염 난 턱으로 손등 긁기





쓰래기? 쓰레기? 찌개나 베개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쓰레기'의 맞춤법은 나를 매번 헷갈리게 한다. 아무 생각 없을 때는 옳게 쓰는데 만약 한 번이라도 맞춤법을 의식하게 될 경우에 이것에 대한 나의 의구심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고 정답을 찾아내고 나서야 사그라든다. 특히 타인에게 보여지는 경우는 더욱 맞춤법을 지키려 애쓰는 편이다. 이럴 때면 더욱 신중하게 되고 '아'인지 '어'인지 대책 없는 물음표가 팝업되기 마련이고 습관적으로 사전을 뒤적거리면서 자체적인 맞춤법 검열을 실시한다.


'남들은 신경 안 쓰고 지나가는 것에 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냐?' 또는 '그런 쓸데없는 습관은 버리고 차라리 그 시간에 보다 생산적인 일을 해라'라고 질타를 받기도 하지만 오늘도 은밀하고 고집스럽게 사전 속에서 맞춤법과 함께 내 자아의 존엄성을 찾는다. 쓸모없게 되어 버려야 하는 하찮은 것을 우리는 쓰레기라 일컫는다. 타인의 시선으로 본 나의 사전 검색 습관은 아무래도 쓰레기로 보이는 듯하다. 이런 나의 습관은 시간의 소비 효용적인 측면으로 볼 때 바꿔야 할 것, 버려야 할 것,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겠지만 취미라는 측면으로 역발상을 해보면 나름 문학적이고 학구적인 취미미가 아닐까? 어떤 취미든 열심히 즐기다 보면 특기로 발전되고 더 나아가면 '나'라는 브랜드의 경쟁력으로까지 발전하기 마련인데 나의 강박적인 사전 들추기는 습관에서 취미를 넘어 경쟁력을 제고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 같다. 매우 처절하게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그동안 수많은 잉여 시간의 산발적인 인풋(input)있었기에 그 결과물로 이제는 제법 숙련되어 성능 좋은 검색 엔진(사전 검색 속도)을 장착하였으며, 한 단어의 뜻을 올바르게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서 문장 이해력과 감수성을 발달하게 되었다. 한 문장을 남들보다 깊이 이해하고 활자에 봉인된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받게 되었다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타자는 나에게 쓸데없는 것이니 쓰레기 같이 버려야 할 습관라고 충고했으나 쓰레기의 이면과 장점(안 쓰레기)을 취한 나는 그 습관을 꾸겨서 버리는 대신 나만의 장점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찮아 보이는 것에 하찮지 않음이 있고 하찮은 쓰레기라 해도 마냥 하찮지 않음이 있는 것이다. 하찮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먼저 쓰레기의 탄생 배경, 처리 방법, 경제적 효과, 다양한 활용 방법 순으로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쓰레기는 내용물을 보호나 포장하기 위해 태어난다. 소기의 목적을 다하면 쉬이 버려질 수 있도록 저렴하면서도 가공이 쉬운 비닐, 플라스틱, 종이, 캔, 유리, 스티로폼 등의 비교적 값싼 재료로 만들어진다. 가성비가 좋게 대량 생산되는 만큼 쉽게 버리고 대량으로 배출된다. 실질적인 수명이 인간보다 길고 사람 한 명이 평생 동안 하나의 쓰레기만 버리는 것이 아니기에 인류의 생존기간이 길어질수록 쓰레기 기하급수적으로 누적되고 있다. 쓰레기 처리 방법은 매립과 소각 중 택일이다. 매립하면 메탄가스를 내뿜으며 몇 세대에 걸쳐 썩고, 소각하면 악취 나는 온갖 매연으로 변해 지구의 젖줄인 오존과 대기를 깎아 먹는다. 쓰레기의 창조주인 인간은 쓰레기를 만들면서도 버리면서도 처리하면서도 대자연을 파괴하고 있으니 '쓰레기'란 단어는 인류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쓰레기라고 불려도 함구할 수밖에 없는 인류인데 쓰레기라고 불리지 않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을 쓰레기라고 부르고 있으니,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며,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수준을 넘어서 주객이 전도된 채 잘못된 정의를 내리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추상적이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만 바라본다면 쓰레기 관련 산업의 경제 규모가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얼마나 방대한지 알아볼 수 있다. 이왕에 달리 바라보기로 했으니 보다 부각되어 보이게 하기 위해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 사회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수많은 관련 산업이 무너지고 일자리들이 없어질 것이다. 미화원 분들이나 파지를 줍는 노인들 그리고 재활용 쓰레기를 다루는 업체 종사자 등의 해고는 우리가 간단히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이다. 좀 더 심화해보면 종이, 비닐, 플라스틱, 캔, 유리, 스티로폼 등의 포장에 관련된 가공 및 제조업체 종사자들이 있겠다. 조금만 더 깊이 가보자. 종이 박스를 만드는 공장 직원, 포장 관련 특허법을 다루는 변리사, 산업 디자이너, 스티로폼 절단기를 제조하는 업체, 포장지에 그림과 색깔을 넣어주는 업체, 질소 공급업체, 복사기 제조업체, 인쇄소 등 수많은 산업 분야의 종사자들은 이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쓰레기를 취급하는데 수많은 인력, 자원,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고 쓰레기는 경제라는 틀에서만 놓고 봐도 그 방대함을 알 수 있다. 굳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가정으로 망상을 전개한 까닭은 쓰레기가 단순히 쓰레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갖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최근 기사를 보니 쓰레기를 소각하는 열을 이용해 비닐하우스에서 감귤 재배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정부에서는 약 2억 5천만원-생각보다 터무니없는 저예산이긴 하지만-의 예산을 들여 폐스티로폼을 압축 재생산하는 기술을 도입했다고 한다. 압축 폐스티로폼은 KG 당 200~300원 밖에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재사용된다. 재활용을 하여 명소가 된 부지도 있다. 과거에는 쓰레기 매립지하면 제일 먼저 난지도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재활용이라는 변화의 옷을 입은 난지도는 현재 교육 및 연구용 공간을 넘어서서 관광명소로까지 발전했다.

2013년도부터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빅데이터’-개인정보를 수집해서 무언가를 예측하는데 사용하거나 통계 자료 등으로 활용하는 것-도 결국 개인 정보 쓰레기에서 나온 것이다. 아직까지는 잠잠하지만 빅데이터 수집의 쌍두마차 구글과 애플이 이 자료를 바탕으로 얼마나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지 예상할 수도 없다. 이렇듯이 쓰레기를 재창조하고 활용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과 줍는 사람으로 둘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장점과 이면(안 쓰레기)을 연구하고 재창조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인다면 우리의 미래는 쓰레기가 되지 않고 안 쓰레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래가 쓰레기인 세상이 아니라 쓰레기가 미래인 세상이다.


Jane-Perkins-art5-550x568.jpg Zac Freeman 의 'Mona Lisa' – 쓰레기를 활용하여 초상화를 만드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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