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현상곡ㅣ신정훈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최근 몇 달, 모바일 게임에 30만원 넘는 돈을 썼다. 투자는 미래에 있을 이익을 보고 시간이나 재화를 사용하는 것이니, 여기에선 '썼다' 라고 표현한다. 과금을 할 때, 실재하는 사물과 가치를 비교해 억지로 납득한다. '밥 한 끼에 쓸 1,2 만원, 게임에 투자하는 게 낫지.' 어제도 외식 한 번 안 하겠다는 생각으로 게임 보석을 샀다. 그리고 점식과 저녁을 밖에서 사 먹었다. 오늘도 애플에서 메일이 날아온다. 앱스토어 메일 내역을 살펴본다.
하*** 스토리 카드 팩 USD $45
하*** 카드 팩 USD $10, $10
포****플 보석 USD $30, $3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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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보석 USD $4, $10, $20, $10
'한 끼 식사를 대신한 투자'의 비용이 순대국밥에서 치킨, 치킨에서 부페, 부페에서 호텔 코스 요리로 변했다. 십수 년 전 전화선으로 즐긴 온라인 게임 탓에 24 만원짜리 전화 요금 청구서가 날아온 적이 있다. 뒷못 잡으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사랑의 매를 드셨고, 사랑의 힘이 나를 게임 속에서 현실로 이끌었다. 하지만 강산이 두어 번 변하고 약발이 끝났다.
처음 모바일 온라인 게임을 접한 시기는 대략 5년 전. 구식 아이폰 4로 렉과 싸워가며 힘겹게 레벨을 올렸다. 롤플레잉 카드 게임인데, 경험치와 아이템으로 카드(영웅)를 강화시켜 강한 보스를 잡는 게 목적이었다. 즐거움이 게임의 목적이었고, 과금 없이도 충분히 즐거웠다. 절약이 삶의 제 1 미덕이었던 시기였는데,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놀이에 피 같은 돈을 쓸 수 없었다. 나가는 돈은 전기세가 전부였다.
말이 나온 김에 나의 모바일 게임과 과금의 역사를 돌아본다. 당시 일본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직장은 한가한 곳이라 근무 중 핸드폰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카드 게임은 장시간 플레이를 요하지 않는데, 이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10분, 20분에 한 번씩 나오는 몬스터를 클릭하는 것이 전부였다. 접속 시 체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빈도는 높았다. 몬스터 등장 규칙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보게 됐다. 몬스터를 클릭하면 사냥에 '기여'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강함 여부를 떠나 고급 아이템 획득이 가능했다. 다만 많은 유저가 예의주시하고 있어, 몬스터는 등장하기가 무섭게 화면에서 모습을 감췄다. 클릭 기회를 놓치게 되면, 부지런하지 못 한 자신을 탓했다. 얼마 안 가 일상에 지장이 생겼다.
귀찮음은 논외. 고급 아이템을 얻고자 하는 일념으로 실생활의 불편을 기꺼이 감수했다. 점심시간엔 밥 한 술 뜨고 핸드폰 화면 체크하길 반복했다.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 역시 핸드폰을 내려놓지 않았다. 모든 활동의 사이에는 게임이 있었다. 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었다. 단어 하나 암기하면, 클릭 한 번. 다행히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계기가 머지않아 찾아왔다. 오너의 부탁으로 점포 이동을 하게 됐는데, 너무도 바쁜 곳이라 게임할 여유가 없었다.
그 후로 인생에 변화가 빠르게 찾아왔다. 학비를 벌기 위해 호주 땅을 밟고, 계획을 수정하고, 비즈니스 스쿨 입학과 병행해 사업을 시작했다.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 무료함이 찾아왔다. 그럴 땐 집요하게 재미를 찾는다. 수입이 많아지고, 호주 대학 입학이 연기되며 마음에도 주머니에도 여유가 생겼다. 그간 고생한 자신에게 당근을 주기로 했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게임에 과금을 하기 시작했다. 첫발을 내디딘 후엔 거리낌이 없었다. 한 번에 1불, 2불 같은 심리적 저항선이 낮은 금액으로 시작해 100불까지 소비의 규모가 커졌다. 맥아더 장군이 상륙 후 인민군을 밀어 올리듯, 죄책감 제한선을 단번에 올렸다.
세상사 흥망성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게임은 그런 성질이 강해, 쇠(衰)기의 도래가 빠르다. 한 해에도 몇 개의 게임을 시작하고 그만둔다. 한 게임을 그만두면 다른 게임으로 빈자리를 채운다. 일주일 전에는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재밌어 친구를 끌여들였고, 이제는 같이 있는 시간 게임에 관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캐릭터는 이런 방향으로 성장시켜야 해. '성우가 별로야' '너 벌써 그렇게강해졌구나' 즐거움을 공유할 누군가가 있으면 더 깊게 빠져든다. 경쟁자로서 동료로서 재미를 키워나간다.
글을 쓰는 지금도 랩탑 옆 핸드폰에선 캐릭터들이 바쁘게 싸우고 있다. 과금에 대한 시선과 심리적 부담의 변천사를 되짚는 와중에, 머릿속에선 토론이 한창이다. 반대 측에서는 게임이 쓸모없다는 입장을 편다. 자꾸 핸드폰을 확인하려고 해서 일에 방해되고, 지인과의 실질적인 교류가 줄어 인간관계에 부정적이다. 여가시간의 대부분이 게임에 쓰이기 때문이다. 한편 찬성 측에선 말한다. 다른 활동과 비교했을 때, 게임이 가장 큰 즐거움을 제공한다. 하고 난 후에 만족감이나 충만함을 차치하더라도 감수할 만큼의 재미가 있다. 우리는 언제고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없다. 완벽한 하루를 계획하고 로보트처럼 메뉴얼에 맞춰 삶을 살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외의 유흥거리에 시간을 뺏길 가능성이 크다. 일 할 때도 문제없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할 일을 다 한다면 크게 문제가 없을 터이다. 근무 환경에 의해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개인 사업을 하는 나의 경우 이기적인 행동이라 볼 수 없다. 일하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선택에 따른 결과로써 기꺼이 받아들인다.
찬성 측에서 두 번째 패널이 말한다. 게임도 스포츠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투자 대비 즐거움이 큰 경제적인 활동이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커 가는 아바타를 보며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여가란 단어가 가진 본래의 의미처럼, 고된 일상에 기름칠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앞만 보고 가면 넘어진다. 게다가 모바일 게임은 접근성이 용이하다. 게임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으로 갈 필요가 없다.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접속이 가능하다. 접속에 걸리는 시간은 어떠한가. 5초 남짓한 시간으로 가상공간으로 입장할 수 있다. 돈 한 푼 안 쓰고 여러 게임 세상에 왕래가 가능하다.
다시 반대 측. 합리화를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어느 정도의 시간 분배와 재화 투자가 적절한 '여가'의 범위인지를. 죄책감을 느끼는 부분부터 과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게임에 빠지고 생산적인 일에 쓰는 시간과 돈이 줄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돈이 덜 든다고 해서 꼭 좋은 취미생활은 아니다. 경제적이라도 항상 옳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여가는 지적 만족감 충족과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책에선 자신의 상황과 대조할 대상을 찾을 수 있고, 이정표를 만들 수 있다. 글쓰기로써 인생의 분기에서 중간 결산을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게임은 악수일 뿐이다.
양측의 공방이 끝났고, 사회자의 정리가 필요하다. 소양 부족으로 적당한 과금과 플레이는 나쁘지 않다는 애매한 끝맺음이 기다리고 있다. 어쨌든 게임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에는 동의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추구할 수 없다면 차선이다. 다시 핸드폰으로 눈길이 간다. 그 사이 캐릭터들이 적과의 전투에서 당당히 승리했다. 상투적인 결론은 글을 보는 당신에게도 자신에게도 영양가가 없다. 그러나 획기적인 대안이 없다는 말 이외에 더 할 말이 없다. 한 달 10만원 정도의 과금은 취미로써 경제적이다. 게임보다 재미있거나, 이 만큼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취미 생활을 발견한다면, 다시 글을 쓰겠다. 다르게 말한다면 모바일 게임을 대체할 것이 없다. 우리의 인연은 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