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첫 여행의 쓰라린 기억

30대에 취미를 시작하다<여행편> ㅣ 이승철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20 오후 5.32.06.png 종무원
독립출판도 3권 출판했고, 지인들과 그림 전시회도 했습니다. 요즘엔 꾸준히 1주일에 한 장씩 드로잉을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는 아니고 그냥 모두 취미로...


작가 프로필 ㅣ 이승철

넓고 얕은, 호기심 많은 유부남

모토는 "일단 하자!"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나는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꽃 같은 20대가 아닌 사회생활에 얽매이기 시작한 30대에 말이다. 사실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외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물론 외국어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 보수적인 집안에 살면서 미국 영화를 못 보게 하는 할머니 때문일 수도 있다. 미국 영화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이런 거 보면 발랑 까진다.'라며 채널을 바로 돌리셨다. 배우들이 뽀뽀하고 연애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 이렇게 저렇게 추측하지만 인식할만한 이유는 아직 떠오르진 않는다.


20대에 여행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스스로 기회를 포기했었다. 물론 두려움 때문이다. 극복하지 못한 두려움 때문에 나의 20대는 여행과 담을 쌓고 살았다.


20대 후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탈출에 대한 욕구가 생겼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의 일탈은 휴가로 만족해야 했다. 입사 후 처음으로 떠난 휴가의 목적지는 제주도였다. 여행사에서 근무하는 지인에게 부탁해 숙소를 예약하고, 제주도 다녀온 지인에게 여행코스를 부탁했다. 네가 준비한 건 비행기와 렌터카 예약이었다. 누구나 비행기를 예약할 때 여행에 설렘을 느끼겠지만, 나는 그런 설렘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사실 설렘을 느꼈겠지만, 그것이 여행에 대한 설렘인지 몰랐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서 떠난 여행이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여행의 경험이 없는 나에게 있어 혼자 떠난 제주도 여행은 즐거움보다는 외로움과 허망함을 느끼게 되었다. 미리 짜인 코스대로 운전하며 다녔고, 맛집을 찾기보다는 길가에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 먹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이라곤 운전하고 주차하고 입장권 사고 다시 운전하고 숙소로 오는 즉 운전한 기억밖에 나질 않는다. 당시 올레도 게스트하우스의 즐거움도 모르던 나에게 제주도는 치유와 즐거움의 섬이 아니었다.


나는 여행에 대한 준비뿐만 아니라 예의도 없었다. 여름휴가라는 접두사를 붙인 허세 가득한 여행이었다. 아무런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는 단지 비행기를 탄다는 것, 차를 렌트해서 다닌다는 것 스스로 뿌듯해하기 위한 허세 가득한 여행이기에 얻은 것도 없는 여행이었다. 나의 첫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운로드.jpeg 그림: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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