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공통주제 <정체성> ㅣ 변채림
대학 때는 일본어랑 미술사를 전공했는데, 교양으로 들었던 건축사가 너무 즐거워서 흔한 건물덕후가 되었습니다.
건축이라는 건 위대한 인류가 일궈나가는, 장대한 역사의 배경..일 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건물을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는 인간에게는 다른 어떤 예술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작가 프로필 ㅣ 변채림
해가 중천에 뜨면 나가서 맥주를 마시고 공원이나 도시에서 광합성을 하는 게 제일 좋아하는 일과입니다. 햇수로 5년 차 인스타그래머로, 글보다는 사진으로 일기를 씁니다. 호주 멜번으로 이사온지 10년이 좀 넘었고 작년 초에 호주 여권을 받았는데도 영어는 여전히 삶의 장애물입니다. 미래에는 소박하게 사회에서 한 사람 몫을, 구실을, 제대로, 하는 게 꿈인 것 같습니다. 사회가 제시하는 고정관념을 나도 모르게 체화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이상한 사회에 살고 있다. 사회는 구성원들이 개개인의 차별화된 정체성을 가지라고 응원하고, 구성원들은 착실하게도 각자의 자아를 찾아 정신적 여정을 나선다. 인문학을 좋아하든 아니든 많이 읽고 많이 사유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진다. 한글을 떼자마자 쓰는 독후감으로 시작해 취업을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강요당하는 일정한 단계를 거친다. 이런 류의 일부의 취향이나 선택권의 문제가 아닌, 강제성이 가미된 사회적 흐름은 다른 방향에서도 거세게 진행된다. 전체주의적인 뭉텅이 속 모래알 1이 되기를 종용하며 사회는 배울만큼 배운 개인들의 정체성을 다시 말살해 나간다. 특히 국가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면 '나'라는 정체성은 희미해지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공동체의 크기와 상관없이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행위에는 비약이 따라붙는다. 시험성적을 반마다 평균을 내서 옆반과 경쟁을 붙이는 게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전체주의 적인가. 어릴 때부터 연대책임이라는 명목 하에 내 능력이나 자질과 무관하게 혼나고 칭찬받기를 경험하면서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라난다. 우리 반이 중간고사 꼴찌라고 몰아붙이는 게 실제 개개인의 시험 능력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기고 지는 게, 싸이의 두 번째 미국 진출의 성패가, 김연아의 금메달 개수가 도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축구라는 스포츠에 관심이 없어도 우리나라 월드컵 경기는 봐야 되고 또 상대가 일본이면 죽어도 이겨야 된다는 듯한 공기는 언제고 버겁다. 숨이 콱 막히는 것 같다. 대선후보가 동향민이니 뽑아줘야 된다는 흔한 비약만큼이나 답답하다.
대단히 똑똑한 이들은 든든한 글자들을 조합해서 영광스러운 허상을 만드는데 옛날부터 도가 터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유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예쁜 글자들의 조합과 마찬가지로 국가, 안보 같은 참으로 아늑한 말을 만들어내곤 한다. 나라 국 집 가를 써서 국가라는 단어가 된다. 이 단어가 한국 땅에 나타난 건 조선 극 후반에 이르러서이다. Nation state라는 서양 출신 근대 개념을 로컬라이징 한 말이다. 즉 한국식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반도 전체가 우리 집이고 지도에 그려진 국경이 튼튼한 콘크리트 담벼락이다. 거기에 안보라는 말이 더해지면 대문 옆에 경비원이 상주하는 든든한 우리 집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우리나라라는 단어는 한술 더 떠, '자랑스럽고도 영광스러운 우리 전통과 문화와 영토' 같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가치를 절대적인 진리로 바꾸고 싶을 때 편리하게 사용된다.
비빔밥이 유명해지고 건강식품으로 인정받으면 그걸 딱히 즐겨먹지도 않는 내 위상도 따라서 높아지나? 자랑스러운 비빔밥을 만든 자랑스러운 사계절을 가진 한국땅에서 태어나 자랑스러운 문명의 유산인 한글을 모국어로 쓰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서? 애초에 왜 수많은 한국적인 것이 자랑스러움과 자연스레 동일시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한국인 은 맞지만 한국인=나 라는 공식은 성립되어서는 안된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실체 없는 경계선이 관계를 주도하게 놔두어서도 안된다. 2016년이다. 문화와 문화 사이에 우열이라는 잣대를 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