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공통주제 <정체성> ㅣ 박수진
글쓰기 잘 못합니다. 방법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작가 프로필 ㅣ 박수진
보통의 발란스로 살아갑니다. 허튼 꿈은 꾸고 싶지 않아서 아직 꿈이 없습니다. 다만 '따뜻한 사람으로 살고 따뜻한 사람 곁에 살자' 하는 것이 제 인생의 1번 목표입니다.
"올해 목표 백 만원"
회사에서 연말정산 서류를 뽑았습니다.
한 장 한 장 서류를 넘기다 보니 마지막 장에 기부금 '360,000원'이 적혀 있습니다.
처음 취직하고 나서부터 한 달에 3만원씩 기아대책에 내고 있는 기부금입니다.
몇 년을 변함이 없는 그 숫자가 부끄러워 얼른 서류를 덮어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6년 전, 신입사원 교육을 받을 때 앞으로 돈을 벌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적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각 조에서 한 명씩 대표로 나와 발표를 하는데 제가 걸려서 발표를 하게 되었거든요.
네 가지 쯤 적었던 것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내용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10년 뒤에는 연봉의 10%를 기부하겠다'였습니다.
그 해부터 10년이 되기까지 이제 고작 4년 남았는데 들이밀 수 있는 숫자는 여전히 36만원에 멈추어 있습니다.
사춘기 시절, 저희 집 사정은 참 많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학창 시절 제 꿈은 늘 사업가였습니다.
기부금 36만원짜리 인생을 살면서 말하기 부끄럽지만, 사업으로 큰 돈을 벌고 불우이웃을 돕는 삶을 사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돈 때문에 아프고 서러운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만 있다면, 한 겨울 시린 새벽부터 리어카를 끄는 할머니를 보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었거든요.
그런데 살다 보니 수많은 사람이 그렇듯 어쩔 수 없는 속물로 변해갔습니다.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휴가를 위해선 자동문처럼 열리던 지갑이 다른 사람들 앞에선 굳게 닫혀 도무지 열리지가 않았습니다.
리어카를 끄는 할머니를 보면 여전히 가슴이 저릿하고, 지하철 역에서 잡상인을 쫓아내는 역무원을 보면 눈물이 왈칵 차올라 눈 앞이 흐려지는데 이웃을 위한 돈은 고작 1년에 36만원이라니.
제가 품었던 꿈과 연민의 마음을 누군가 봤다면 가증스럽다고 했을 겁니다.
변명하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가난과 고통, 돈의 힘과 무서움, 사람들의 배신을 보며 무기력해졌고
'내가 하는 작은 일이 조금이나마 이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하는 마음이
'어차피 내가 이 돈 낸다고 모든 사람을 도울 순 없으니, 이 정도만 하자.'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 집을 사려면 어떻게 돈을 모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3만원 내는 거 그만 할까? 하고 무심결에 생각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엄청난 자기 혐오감을 겪었습니다.
제일 혐오하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간이 바로 내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절대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올 해는 6년 전 연봉 10%를 기부하겠다 적으면서, 또 스무 살에 장기기증자 등록을 하며 가졌던 마음을 다시 믿어보는 도전 아닌 도전을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내 작은 도움을 통해 단 한 명의 세상이라도 따뜻해진다면,
그게 두 명이 되고 세 명이 되고 한다면 세상도 조금은 바뀌어가지 않을까 했던 마음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적어봅니다.
목표를 향한 저의 첫 번째 도전은 올해 기부금 백 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