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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테르 May 08. 2019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아버지는 없고 경숙이가 중심이다.

박근형 작가의 2006년 작으로 한국전쟁 배경으로 한량의 아버지와 아버지를 지켜보는 딸의 감정선을 그린 작품이다. 초연된 2006년 주요 연극상을 휩쓸고 2009년 에는 특집극으로  4부작 드라마화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원래 극에서 중심은 한량인 아버지 경숙 아베와 경숙 어메이다. 하지만 극을 관찰하다 보면 실질적인 메인은 경숙이이다. 경숙 아베와 경숙어메의 비중을 줄이고 경숙의 비중을 늘려 경숙 중심으로 극을 끌어가도 상당히 괜찮은 극이 될 것이다. 


[병원], [피난],[전쟁 후]

1막과 13막의 배경은 같다. 경숙의 출산 장면이 중점을 두고 가족 구성원의 공동체 의식을 표현한다. 어메와 자야는 라이벌 관계이지만 동일선상에서 서 있고 어메와  경숙에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 꺽꺽은 한발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막과 3막은 아무것도 못하는 경숙어메와 경숙이를 보여준다. 아베의 명령에 따라 전쟁통에 피난도 가지 못하고 그냥 집에서 죽지 않기만을 바래야 한다. 아베가 돌아왔음에도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받아 드림도 순전히 한량 같은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서 이다. 무서움을 표현하는 경숙도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어메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한다. 그대로 받아 드려야 한다. 


4막과 5막 은 착한남자와 나쁜남자의 대립이다.

꺽꺽이는 경숙의 집에 살면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착한 남자이다. 글을 쓰고 읽는 걸 좋아하는 경숙을 위해 학교도 보내주고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자기표현이 약한 꺽꺽이는 남몰래 경숙어메를 사랑하고 결국에는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새로운 사랑을 잉태하기 이른다.  경숙 또한 한량 같은 아베보다는 친절하고 다정한 꺽꺽이가 아버지가 되길 바란다.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제제도 이와 비슷한 마음을 드러낸다. 


경숙어메는 나쁜 남자가 좋았다. 채석장에서 일할 무렵 우연히 장구소리에 이끌려 배롱나무 밑에서 장구를 치는 남자에게 홀려 홀 딱 반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 남자를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양말공장에서 일할 때 우연히  장구를 치던 경숙아베를 만나게 되고 그 불꽃같은 첫 설렘의 남자를 생각하고 결혼하게 된다.


경숙아베는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가족들의 곁을 떠나려고 한다. 남편으로서 잘해주지 못한 아내에게 보약 한 첩과 부모로서 자질을 다하지 못한 딸에게는 무언가를 알려주고 싶은 욕망을 들어낸다. 



6막에서는 경숙아베의 변명이 시작된다.  꿈속에서 아베의 아베 아버지를 만나는 경숙아베

풍류를 좋아하는 아버지 그리고 공부보다는 나무 아래서 사색을 좋아했던 아들 이들의 반목도 아버지의 죽음 직전 아버지의 아버지를 언급하며 아들에게 새로운 삶을 권한다. 새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소 한 마리와 신발을 건네주며 자기와 다른 삶을 권한다.


※ [신발]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에서 신발은 중요한 역할은 한다. 신발을 신지 않는 사람들과 신발을 신고 있는 사람들, 피난 직전 신발을 묶는 장면, 아버지가 자식에게 신발을 넘겨주는 장면, 경숙어메와 자야의 관계, 마지막으로 경숙아베가 경숙이에게 신발을 주는 장면까지 신발이 사람과 사람의 감정선을 이어주고 있다. 


7막은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삶은 선택한다. 

꺽꺽이와 경숙어매의 새로운 관계를 통하여 집 안 내에서 설 자리를 잃은 경숙아베는 떠나는 걸 결심한다. 다만 새롭게 잉태되는 자식은 본인 소유를 주장하고 떠난다. 억지로라도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꺽꺽은 경숙아베의 떠남에 대해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고 경숙어메와 경숙을 데리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자 떠나게 된다. 



8막 불완전한 관계 형성

꺽꺽이와 경숙어메 경숙은 행복한 삶을 위해 터전을 떠났지만 본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었던 경숙아베의 집착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자야라는 새로운 여자를 가족관계에 등재시킨다. 심지어 꺽꺽이와 경숙어메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행복함을 만끽하는 구성원을 위협한다.



9막 10막 상실의 시대

경숙어메는 꺽꺽이 관계에서 얻은 자식을 먼 곳으로 먼저 보내야 했다. 경숙아베는 청요리사에게 자야를 뺏겼다. 경숙어메는 상실을 자신의 책임이라고 치부하고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려 한다. 하지만 경숙아베는 이 모든 게 남의 탓 청요리사 탓으로 돌리며 활력을 잃은 자포자기의 삶을 산다. 그런 경숙아베가 안된던 경숙어메는 자야를 찾아가 애원하며 경숙아베를 만나 달라고 애원하다. 하지만 경숙아베게게 흥미를 잃은 터라 매몰차게 거절하고 만다. 이에 분노한 경숙어메는 칼을 들고 자야와 청요리사를 죽이려 들지만 평온한 삶 행복하고 싶었고 이쁨 받고 싶었던 경숙어메는 이 상황을 마무리 짓고자 자해하는 선택을 하고 만다.


11막 인간의 나약함과 당황스러움

경숙의 독백의 시작으로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가 등장하고 경숙, 경숙어메,  자야는 회계하고 용서를 바라는 기도를 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경숙아베는 당황하고 만다. 모두 자기 소유라고 여기던 경숙어메, 자야, 경숙이 까지 존재하지 않는 이에게 바라는 기도하는 모습이 아편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 장면을 보고 있는 관객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삶의 영역에서 판타지 같은 신계 영역을 보여주는 모습은 낯선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 구성은 역설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12막 졸업 불행을 마치다.

경숙은 졸업을 한다. 그리고 소박한 남자와 결혼을 한다. 이제는 불행할 것 없을 것 같은 삶을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꺽꺽이는 가족들과 한발 멀리 떨어져 있다. 경숙의 졸업식 날 경숙어메와 자야는 경숙아베의 부재를 아쉬워 하지만 꺽꺽이는 기여코 경숙아베의 죽음을 언급한다. 경숙아베가 살아 있는 한 여전히 자신은  외부자 이기 때문이다.  12막에서는 모두 신발을 신고 있다.


12막 13막

신발을 신고 있는 아버지와 신발을 선물하는 아버지 아이를 넘겨주는 아버지 

작가는 경숙아베의 등장을 통해 다양한 결말을 관객들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극 전개상 경숙아베의 죽음이 맞는 듯하다.  6막 에서 경숙아베와 아버지의 대화 속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경숙의 꿈에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경숙의 졸업식에 찾아와서 불쑥 신발을 선물하는 장면은 10막에서의 경숙어메의 대사처럼 행복하고 싶다는 표현 일 가능성이 크다. 13막에서 경숙아베가 경숙이에게 아이를 넘겨주는 장면은 11막에서 새로운 등장한 예수 그리고 구유에서 태어난 예수를 축복하고 마리아를 넘겨주는 모양을 취하고 있다. 이로서 새로운 가족의 탄 색을 축복하고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한다. 


시간을 내어 볼만한 연극이며 가족보다는 혼자서 관람하며 사색하듯 관람하면 좋은 작품이다.


기간 : 2019년 05월 04일(토) ~ 2019년 05월 26일(일)  수, 목, 금 19시 30분 / 토 15시, 19시 / 일 15시

장 소 : 광주 유스퀘어 문화관 동산아트홀 


인터넷 검색창에서 검색 후 예매 할 수 있으며  광주 광천동 버스터미널 바로 옆에서 진행되는 관계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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