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준의 일주일
1장 전화
금요일 오후, 회의실 유리벽 너머로 을지로 골목이 보였다. 성준은 시안 세 장을 테이블에 펼쳐놓고 후배들의 발표를 듣고 있었다. 브랜딩 시안이었다. 의뢰사는 제주에 새로 여는 리조트였고, 후배들은 제주 돌담 이미지를 그래픽 모티브로 풀어보겠다고 했다.
"돌담은 너무 뻔해." 성준이 말했다. "돌담이 아니라 돌담 사이로 자라는 풀을 봐.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거. 리조트가 팔려는 건 풍경이 아니라 틈새야, 일상의 틈새."
후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준은 자기가 한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말을 할 때 그는 자신이 있었다. 디자인회사 대표로 십오 년, 서울에서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은 사물의 표면 아래를 읽어내는 것이었다. 남의 감정이 아니라, 남이 사고 싶어 하는 감정을.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가 울렸다. 큰누나였다.
"성준아."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큰누나는 원래 말이 적은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화보다는 카톡 한 줄을 보내는 쪽이었다. 전화를 직접 걸어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신호였다.
"엄마가 쓰러졌어."
성준은 복도 한가운데 서서 전화기를 귀에 바짝 붙였다.
"뇌출혈이래. 지금 응급실이야. 충주 한마음병원."
"의식은 있어?"
"없어."
큰누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울지 않았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큰누나가 우는 건 일이 이미 끝난 다음이었다. 지금 울지 않는다는 건 아직 한가운데라는 뜻이었다.
성준은 사무실로 돌아가 노트북을 접었다. 실장에게 월요일 미팅 일정을 넘겼다. 차 키를 집어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제네시스 G80. 삼 년 전에 샀다. 어머니에게 보여드린 적은 없다. 보여드리면 "그 돈이면 형 빚이나 갚아라" 하실 게 뻔했으니까.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중부내륙으로 갈아탔다. 금요일 저녁이라 차가 밀렸다. 성준은 핸들을 쥔 채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충주에 간 게 언제였나. 설이었나, 아니면 그 전 추석이었나. 큰누나 카톡으로 "엄마 무릎 안 좋으시대" 했을 때 "네" 하고 답한 게 전부였다. 그리고 은행 앱을 열어 백만 원을 보냈다. 그게 그의 방식이었다. 돈을 보내는 것. 돈이면 된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다만 돈 말고는 보낼 게 없었다.
충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왔을 때 해가 졌다. 삼월 초였지만 바람이 차가웠다. 논밭 사이로 난 이차선 도로를 달리면서 성준은 창을 열었다. 흙냄새가 났다. 서울에서는 맡을 수 없는 냄새. 어릴 때 이 냄새가 싫었다. 가난의 냄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응급실로 뛰었다. 자동문이 열리자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간호사에게 이름을 댔더니 중환자실이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삼 층으로 올라갔다. 복도 끝 대기실에 큰누나가 앉아 있었다.
파란색 패딩을 입고 있었다. 올해 들어 머리가 많이 셌다. 성준보다 열두 살 위, 올해 예순넷이었다. 큰누나 옆에 빈 종이컵이 세 개 놓여 있었다. 커피 세 잔을 마셨다는 뜻이었다. 혼자서, 몇 시간을.
"왔어." 큰누나가 말했다.
"형은?"
"연락했는데 안 받아. 둘째가 내일 온대. 셋째는 가게 문 닫고 올 거고."
성준은 큰누나 옆에 앉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누나, 고생했어 —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삼켜졌다. 그 말은 너무 쉬웠다. 쉬운 말일수록 빈 말이 된다는 걸 성준은 알고 있었다.
큰누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의사 선생님이 사흘이 고비래."
"사흘."
"뇌에 피가 많이 찼대. 수술은 했는데 의식이 돌아올지 모른대."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삼 일이면 월요일이었다. 월요일에 리조트 미팅이 있었다. 그 생각이 떠오른 자신이 싫었지만, 머리가 그렇게 움직이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면회는?"
"내일 오전 열 시." 큰누나가 말했다. "오늘은 못 들어가."
성준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카드를 뽑았다. "입원비 먼저 내고 올게."
큰누나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냈어."
"얼마야?"
"그건 나중에."
큰누나의 말투는 단호했다. 이 단호함을 성준은 알고 있었다. 돈 이야기를 하면 큰누나는 늘 이랬다. 거절이 아니라 유보. 나중에, 라고 하면서 끝내 말하지 않는 것. 그리고 성준이 알아서 계좌에 넣으면 "고맙다"는 카톡 한 줄. 그것이 둘 사이의 공식이었다.
성준은 카드를 도로 넣었다. 대기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형광등 불빛이 하얬다. 어머니가 이 불빛 아래 누워 있다. 의식 없이. 팔십삼 년을 살아온 몸이 기계에 연결되어 숨을 쉬고 있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기억은 거의 없다. 다만 마당에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 어머니가 울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다음 날부터 어머니가 시장에 나갔다는 것. 그때부터 어머니의 삶은 하나의 동사로 요약됐다 — 벌다.
두부를 만들어 팔았다. 배추를 절여 팔았다. 고추를 말려 팔았다. 무엇이든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았다. 여섯 아이를 먹이기 위해서. 큰누나는 열다섯에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를 도왔다. 큰형은 대학에 붙었지만 가지 못했다. 둘째누나, 셋째누나, 넷째누나 —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집을 떠났다. 성준만 남았다. 막내. 어머니가 유일하게 웃어 보이는 아이.
"누나." 성준이 말했다.
"응."
"밥 먹었어?"
큰누나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가서 뭐 사올게."
성준은 일어나서 병원 편의점으로 갔다. 삼각김밥 네 개와 따뜻한 우유 두 개를 샀다. 돌아와서 큰누나 앞에 놓았다. 큰누나는 삼각김밥 하나를 열어 천천히 먹었다. 성준도 하나를 먹었다. 아무 말 없이 먹었다. 편의점 삼각김밥은 밥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얇은 것이었지만, 어쨌든 둘은 나란히 앉아 무언가를 먹었다. 그것만으로도 뭔가가 겨우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밤 열한 시, 큰누나가 말했다. "여기 있을 거야?"
"응."
"나도 여기 있을 거야."
큰누나는 패딩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의자에 몸을 웅크렸다. 성준은 핸드폰을 꺼내 회사 단체 카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월요일까지 연락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급한 건 실장님에게." 그리고 화면을 껐다.
복도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간간이 간호사의 신발 소리만 들렸다. 성준은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성준이 대학 합격했을 때 잠깐 보인 표정 — 기쁨이 아니라 안도에 가까운 것. 드디어 하나는 됐다, 는 얼굴.
성준은 그 표정을 평생 지고 다녔다. 그것이 짐인지 원동력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로.
2장 병실
토요일 아침, 면회 시간에 맞춰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관이 코와 입에 연결되어 있었고, 모니터가 심장 박동을 초록색 선으로 그리고 있었다. 작은 몸이었다. 언제 이렇게 작아졌나 싶을 만큼. 이불 위로 드러난 어깨가 앙상했다. 시장에서 배추 한 짐을 머리에 이고 걸어오던 어깨가 아니었다. 그때의 어머니는 작지 않았다. 키가 작았을 뿐, 몸이 작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성준은 침대 옆에 섰다. 어머니의 손을 잡으려다 멈칫했다. 주름이 깊었다.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이 손이 두부를 짜고, 배추를 절이고, 고추를 말리던 손이었다. 시장에서 거스름돈을 셀 때면 이 손이 번개처럼 빨랐다. 글을 읽지 못하는 대신, 어머니의 손은 숫자를 알았다.
성냥개비.
성준은 어렴풋이 기억했다. 부엌 바닥에 성냥개비를 늘어놓고 셈을 하던 어머니. 다섯 개씩 묶어서 한 줄, 두 줄, 세 줄. 그것이 어머니의 곱셈이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니 구구단을 모른다고 생각하기 쉬웠지만, 어머니는 구구단 대신 성냥개비를 가지고 있었다. 시장 좌판에서 거래를 할 때면 상인들이 계산기를 두드리기도 전에 어머니가 먼저 답을 말했다. 틀린 적이 없었다.
면회 시간 십 분. 성준은 그 십 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관이 달린 입에 대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다 나으실 거야? 그 말은 거짓말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었지만, 어느 쪽이든 의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닿지 않는 말이었다.
나와서 큰누나에게 물었다. "어제 어떻게 발견한 거야?"
큰누나는 평소처럼 아침에 어머니 집에 갔다고 했다. 매일 가는 길이었다. 반찬을 만들어 놓고, 약을 챙기고, 빨래를 돌리는 것이 큰누나의 일과였다. 삼십 년째 그렇게 했다. 큰누나의 남편은 이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아이는 없었다. 큰누나의 삶에서 어머니를 빼면 남는 것이 뭔지 성준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문을 열었는데 부엌 바닥에 쓰러져 있었어."
큰누나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사건을 보고하는 것 같았다.
"손에 냄비를 쥐고 있었어. 국을 끓이려고 했나 봐. 혼자서."
그 말에 성준은 가슴이 아팠다. 큰누나가 매일 가는데도 어머니는 혼자 국을 끓이려 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혼자 해결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어머니는 평생 그랬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을 모르는 사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기대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사람. 다섯 살 아들이 가장 어린 것이었을 때 남편을 잃고, 여섯 아이를 데리고 시장에 나선 여자에게 기댈 곳이 있었을 리 없다.
오전 열한 시쯤 둘째누나가 도착했다. 부동산 일이 바빠서 늦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둘째누나는 가방에서 과일을 꺼냈다. 사과와 배. 쓸 데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가져온 것이다. 빈손이 싫었던 거다. 큰누나는 괜찮다고 했다. 과일을 받아서 간호사 스테이션에 갖다 놓았다.
셋째누나는 오후에 온다고 카톡을 보냈다. 넷째누나는 일요일에 올 수 있다고 했다. 큰형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형한테 카톡은 보냈어?" 성준이 물었다.
큰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읽었는데 답이 없어."
성준은 형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갔지만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역시 받지 않았다. 세 번째에 전화가 연결됐다.
"왜." 큰형의 목소리는 짧았다.
"형, 엄마 쓰러지셨어. 충주 한마음병원 중환자실이야."
침묵이 흘렀다. 삼 초, 오 초. 차 소리가 들렸다. 형은 밖에 있는 것 같았다.
"알았어." 형이 말했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성준은 전화기를 내려다봤다. 큰형은 늘 이랬다. 짧은 말, 짧은 반응,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 오더라도 언제 올지 모른다. 머리를 다친 뒤로 형은 시간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지키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지킬 수 없는 것이었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구분이 어려웠다.
큰형에 대해 성준이 아는 것들이 있었다. 단편적이고 흩어진 것들.
형은 공부를 잘했다. 고등학교 때 전교 오등 안에 들었다. 선생님들이 기대를 걸었다. "이 집에서 대학 보낼 아이가 하나 있다면 이 녀석"이라고 했다. 큰형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 합격 통지서가 왔을 때 어머니의 반응을 성준은 들어서 안다. 큰누나가 한 번 말해줬다.
"엄마가 통지서를 받아들고 한참 봤어. 글을 못 읽으니까 뭐가 쓰여 있는지 몰랐지. 내가 '오빠 대학 붙었다'고 했더니 엄마가 한참 있다가 '그래서 돈이 얼마야' 하셨어."
등록금을 댈 수 없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지금 대학을 가면 동생들은 어떡하냐." 큰형은 합격 통지서를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 서랍에 넣었다. 다시 꺼내지 않았다.
그 서랍이 아직 어머니 집에 있는지 성준은 몰랐다. 아마 있을 것이다. 오래된 집의 서랍은 사라지지 않는다. 서랍 속의 것들도.
그 뒤로 형은 여러 가지를 했다. 공사판에서 일했다. 트럭을 몰았다.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가 접었다. 중고차 매매를 했다가 사기를 당했다. 양계장을 해보겠다고 했다가 닭들이 병에 걸렸다. 다시 시작했다가 다시 접었다. 어머니는 형에게 "너는 왜 되는 게 없냐"고 했다. 형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다 농장에서 일하던 중 지게에 머리를 맞았다. 관자놀이 쪽이었다. 심하게 다쳤다. 병원에 두 달 있었다. 수술비를 성준이 냈다. 그때 성준은 서른 초반이었고, 회사가 겨우 자리를 잡기 시작한 때였다. 이천만 원이 적지 않았지만 보냈다. 형이니까.
퇴원한 뒤로 형이 달라졌다고 큰누나가 말해줬다. 화를 참지 못하게 됐다. 작은 일에 불같이 화를 내고, 이웃과 싸우고, 가끔 밤에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했다. 전두엽 손상 후유증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충동을 조절하는 부위가 손상된 것이다. 알기 전에는 형이 변했다고 생각했고, 알고 나서는 변한 게 아니라 부서졌다고 생각했다.
형의 속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머리를 다치기 전에 형은 동생들에게 잘해줬다. 성준이 중학생 때 수학을 못하면 형이 가르쳐줬다. 형이 가르치면 이상하게 이해가 됐다. "이거 원리만 알면 쉬워, 야" 하면서 연습장에 풀어주던 형. 그 형이 지금은 승객과 싸워서 버스 회사에서 잘린 사람이 됐다.
성준은 그때마다 돈을 보냈다. 오십만 원, 백만 원, 가끔은 이백만 원. 보내고 나면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또 전화가 왔다. 형은 "갚을 거야"라고 말했지만 한 번도 갚은 적이 없었다. 성준은 갚으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돈을 보낼 때마다 마음 한쪽이 무거워졌다. 빚이 아니라 거리. 돈이 오갈수록 형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오후에 셋째누나가 왔다. 식당을 잠깐 맡기고 왔다며 내일 저녁까지만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셋째누나는 오자마자 큰누나를 안았다. "언니, 괜찮아?" 큰누나는 "괜찮아" 하고 짧게 답했다. 누나들이 모이니 대기실이 좁아졌다. 큰누나와 둘째누나와 셋째누나, 그리고 성준. 넷이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요즘 밤에 잠을 못 주무셨대." 큰누나가 말했다. "자꾸 성준이 꿈을 꾼다고 하셨어. 성준이가 사고 났다는 꿈."
셋째누나가 성준을 봤다. "너 요즘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니. 괜찮아."
성준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늘 그랬다. 걱정하는 대상이 정해져 있었다. 큰누나가 아파도, 형이 사고를 쳐도, 어머니가 가장 먼저 묻는 말은 "성준이는?"이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면 인사 대신 "밥 먹었냐"가 먼저 나왔고, 전화를 끊을 때는 "몸 조심해라"가 마지막이었다. 그 사이에 다른 자식들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큰누나가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는 걸 성준은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편애는 기울어진 땅 같은 것이어서, 아무리 수평을 맞추려 해도 물은 한쪽으로 흘렀다.
둘째누나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말했다. "엄마가 지난번에 나한테 전화해서 '성준이 회사가 잘되냐' 물었거든. 내가 '잘되죠' 했더니 '그래도 걱정이다' 하시더라. 내 걱정은 안 하시면서."
웃으면서 한 말이었지만, 웃음 밑에 뭐가 있는지 모두가 알았다. 아무도 덧붙이지 않았다.
저녁, 성준이 병원 식당에서 밥을 사왔다. 정식 네 개. 큰누나는 반만 먹고 숟가락을 놓았다. 셋째누나가 "언니, 더 먹어"라고 했지만 큰누나는 고개를 저었다.
"배가 안 고파."
큰누나는 다시 중환자실 앞 의자로 돌아갔다. 성준은 큰누나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깨가 좁았다. 저 좁은 어깨가 삼십 년 동안 어머니를 안고, 업고, 부축하고, 먹이고, 씻긴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어깨를 당연하게 여겼다. 큰딸이니까. 여자니까. 가까이 있으니까.
성준은 병원 밖으로 나왔다.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웠다. 서울에서는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편의점에서 한 갑을 사고 말았다. 연기를 내뱉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보였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별. 충주의 밤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깊었다.
전화가 울렸다. 큰형이었다.
"내일 간다."
그 한마디를 남기고 형은 다시 전화를 끊었다. 성준은 담배를 비벼 끄고 병원 안으로 돌아갔다.
3장 각자의 무게
일요일 아침, 큰형이 왔다.
버스를 타고 왔다. 자가용이 없었다. 십 년 넘게 버스를 운전했지만 자기 차는 없는 사람이었다. 점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복도를 걸어오는 모습이 성준의 눈에 들어왔다. 형은 야위었다. 얼굴이 검게 탔고, 왼쪽 관자놀이에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농장에서 다쳤을 때 생긴 것이다. 형은 늘 그 흉터 쪽을 모자로 가렸는데, 오늘은 모자가 없었다. 급히 나온 것이다.
"왔어, 형." 성준이 말했다.
큰형은 고개만 끄덕이고 중환자실 유리창 너머를 봤다. 어머니가 누워 있는 쪽이었다. 형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무서운 것 같기도 했다. 유리창에 비친 형의 얼굴이 흐렸다. 성준은 문득 형이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본 게 언제인지 궁금했다. 물어보지는 않았다.
큰누나가 커피를 내밀었다. 형은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아무 말 없이. 큰누나와 형 사이에도 긴 침묵이 있었다. 이 둘은 가장 가까이 살면서도 가장 말이 적었다. 큰누나는 형을 걱정했지만 표현하지 않았고, 형은 큰누나에게 고마웠지만 인정하지 않았다. 감정을 말로 바꾸는 기술이 이 가족에는 없었다.
넷째누나도 도착했다. 이제 여섯 남매 중 다섯이 모였다. 둘째누나만 전날 돌아가고 없었다 — 월요일에 중요한 계약이 있다고 했다. 다섯이 대기실에 앉았다. 좁은 공간에 가족이 찼다. 서로의 체온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인데, 말은 멀었다.
면회 시간이 되어 둘씩 들어갔다. 큰누나와 성준이 먼저 들어갔다. 어머니의 상태는 어제와 같았다. 의식이 없었다. 모니터의 숫자만 미세하게 바뀌고 있었다. 성준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멈칫하지 않았다. 손이 차가웠다.
큰누나는 어머니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젖은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삼십 년을 해온 손놀림이었다. 숙련되어 있었다. 능숙함이 슬펐다. 능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 했다는 뜻이었고, 오래 했다는 것은 그만큼 선택지가 없었다는 뜻이었다.
나와서 큰형과 셋째누나가 들어갔다. 잠시 후 셋째누나가 울면서 나왔다. 큰형은 나오지 않았다. 면회 시간이 끝날 때까지 안에 있었다. 간호사가 나오라고 하자 그제야 나왔다. 눈이 빨갛지는 않았다. 다만 입술을 꽉 다물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병원 앞 식당에 갔다. 다섯이 둥근 테이블에 앉았다.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큰누나가 밥을 떠서 큰형 앞에 놓았다. 형은 묵묵히 먹었다. 셋째누나가 분위기를 풀려는 듯 말했다.
"엄마가 지난달에 식당에 오셨거든. 갈비탕 드시고는 '고기가 질기다' 하셨어. 그래서 내가 '엄마 이가 안 좋으니까 그렇지' 했더니 '내 이가 안 좋은 게 아니라 네 고기가 질긴 거야' 하시는 거야."
넷째누나가 웃었다. 큰누나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큰형은 밥만 먹었다. 그런데 잠깐, 아주 잠깐 형의 입꼬리도 움직인 것 같았다. 성준은 그것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확신이 없었다.
식사 뒤 성준이 계산했다. 당연한 듯이, 늘 그래왔듯이. 카드를 내밀 때 큰형이 말했다.
"내가 낼 수 있었어."
성준이 고개를 돌렸다. 형의 눈이 날카로웠다. 자존심이 상한 눈이었다.
"다음에 형이 내." 성준이 말했다. 최대한 가볍게.
형은 대답하지 않고 앞서 걸었다. 성준은 형의 등을 보면서 생각했다. 형은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버스 회사에서 잘린 것은 아직 모르는 척해야 했다. 큰누나가 말해준 것이니까. 하지만 형의 자존심은 낼 수 없다는 사실보다, 낼 수 없다고 가정당하는 것에 더 상처를 받았다.
병원에 돌아와 대기실에 앉았을 때, 성준은 과거를 떠올렸다.
서울에 올라온 건 스물셋이었다.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들어갔다. 월급이 적었지만 매달 이십만 원을 어머니에게 보냈다. 첫 달에 보냈을 때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거면 되냐?" 성준은 "네" 하고 답했다. 어머니는 "더 보내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기다렸다. 보내지 않으면 전화가 왔다. "이번 달은?" 그것이 어머니의 애정 표현이었는지, 재촉이었는지, 성준은 구분하지 않으려 했다.
이십대 후반에 자기 회사를 차렸다. 디자인 스튜디오. 직원 두 명으로 시작했다. 처음 이 년은 적자였다. 그래도 송금은 멈추지 않았다. 삼십만 원, 오십만 원, 백만 원. 회사가 커질수록 금액도 커졌다. 지금은 매달 삼백만 원을 어머니에게 보내고, 큰누나에게 백만 원을 따로 보냈다. 큰형에게는 연락이 올 때마다 보냈다. 고정 금액이 아니라 변동하는 금액. 형의 사정에 따라, 아니, 형의 요구에 따라.
어머니에게 보내는 돈은 성준에게 일종의 의무이자 자격 증명이었다. 돈을 보내야 아들이었다. 돈을 보내야 막내가 아닌 가장이었다. 어머니도 그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성준에게 웃어 보이는 이유가 사랑 때문인지 돈 때문인지, 성준은 구분하지 않으려 했다. 구분하면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큰누나에게 보내는 돈은 또 달랐다. 간병비라고 부르기엔 너무 적고, 용돈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많은 금액. 큰누나는 "고맙다" 했지만, 그 고맙다 뒤에 뭐가 있는지 성준은 묻지 않았다. 큰누나가 어머니 곁에서 보낸 삼십 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성준은 돈밖에 보낼 게 없었다. 시간은 보낼 수가 없었다. 시간은 서울에 있었고, 서울에는 회사가 있었고, 회사가 돌아야 돈이 나왔다. 돈을 보내려면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시간을 보내려면 돈을 보낼 수 없었다. 이 모순 속에서 성준은 늘 돈 쪽을 택했다.
형에게 보내는 돈은 다른 성격이었다. 형이 갚겠다고 말하니까 빚이었고, 갚지 못하니까 시혜가 됐고, 시혜가 쌓이니까 형의 자존심을 매번 깎는 칼이 됐다. 돈을 보낼 때마다 형은 한 뼘씩 작아졌다. 성준은 그것을 알면서도 보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형이 어디서 구할지 모르는 돈 때문에 더 큰 사고를 칠 것 같았으니까.
돈. 성준의 삶은 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돈으로 어머니의 웃음을 사고, 큰누나의 수고를 보상하고, 형의 자존심을 빼앗고, 누나들의 인사를 받았다. 디자인회사 대표 이성준. 사물의 표면 아래를 읽는 남자. 하지만 자기 가족의 표면 아래는 읽지 않으려 한 남자.
오후, 의사가 나와서 경과를 설명했다. 뇌부종이 조금 줄었다고 했다. 아주 조금. 희망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악화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다섯 남매가 의사 앞에 나란히 서서 들었다. 큰누나가 가장 많은 질문을 했다. 약 이름, 부작용, 재활 가능성. 성준은 옆에서 들으면서 생각했다. 큰누나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묻고 있었다. 의사에게 묻는 게 아니라, 동생들에게 들려주려고 묻는 것이었다.
큰형이 의사에게 물었다. "다 나을 수 있습니까."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의식이 돌아오면 재활을 통해 일상생활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완전히 같기는 어렵습니다."
큰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과 같기 어렵다. 그 말을 형은 어떤 마음으로 들었을까. 형 자신도 예전과 같지 않은 사람이었으니까.
저녁, 셋째누나가 식당에 돌아가야 한다며 일어섰다. 넷째누나도 내일 아침에 가겠다고 했다. 하나둘 빠지면 대기실에는 결국 세 사람이 남을 것이었다. 큰누나, 큰형, 그리고 성준.
셋째누나가 떠나면서 성준에게 봉투를 건넸다. "병원비 보태."
성준이 받으려 하자 큰누나가 말했다. "내가 받을게." 그리고 봉투를 가져갔다.
성준은 잠깐 놀랐다. 평소의 큰누나라면 "나중에"라고 했을 것이다. 오늘은 직접 받았다. 뭔가가 달라지고 있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성준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큰누나의 손이 봉투를 받아 가방에 넣는 동작이 단호했다. 더 이상 '나중에'로 미루지 않겠다는 손이었다.
넷째누나가 떠나면서 성준에게 조용히 말했다. "오빠가 좀 이상해. 잘 봐줘."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넷째누나도 알고 있었다. 큰형이 요즘 좋지 않다는 것을. 이 가족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큰형의 불안정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만 아무도 직접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내야 하니까. 답이 없는 것을 말하는 건 잔인한 일이니까.
4장 균열
월요일 아침, 병원이 조용했다. 주말의 문병객들이 빠지고 복도에는 직원들만 오갔다. 넷째누나도 떠났다. 대기실에 세 사람이 남았다. 큰누나, 큰형, 성준.
세 사람. 이 조합은 오래전에도 있었다. 성준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어머니가 시장에 나가면 집에 남는 것은 이 셋이었다. 큰누나가 밥을 짓고, 형이 마당을 쓸고, 성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막내였으니까.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다. 지금은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시간이 부끄러웠다.
성준은 노트북을 펴고 메일을 확인했다. 리조트 미팅은 실장이 대신 갔다. "잘 됐습니다, 대표님. 돌담 틈새 콘셉트로 갔어요. 클라이언트가 좋아합니다." 성준은 "수고했어" 하고 답을 보냈다.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회사가 자기 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이 안도가 아니라 불안이 됐다. 불안의 정체를 성준은 알고 있었다. 이 가족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가 돈이듯, 회사에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가 필요했다. 필요 없는 자리에 있는 것이 성준에게는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면회 시간에 큰누나와 들어갔다. 어머니의 얼굴에 혈색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았다. 아니면 성준이 보고 싶은 것을 본 것일 수도 있다. 간호사가 말했다. "오늘 좀 반응이 있었어요. 손을 쥐려는 움직임이요."
큰누나의 눈이 커졌다. "정말요?"
"아직 의식이 돌아온 건 아니지만, 좋은 신호입니다."
큰누나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 나야. 큰딸. 엄마, 들려?"
반응이 없었다. 큰누나는 계속 손을 잡고 있었다. 성준은 한 발 뒤에 서서 지켜봤다. 큰누나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삼십 년 동안 한 번도 떨리지 않던 그 손이.
면회를 마치고 나오자 큰형이 대기실 의자에서 일어났다. "나도 들어갈래."
"면회 시간 끝났어." 성준이 말했다.
"간호사한테 말하면 되잖아."
"형, 규칙이야."
형의 눈이 좁아졌다. "넌 들어갔잖아."
"면회 시간에 들어간 거야."
형이 한 발 다가섰다. "나는 면회 시간에 못 들어갔으니까 지금 들어가겠다는 거야."
큰누나가 사이에 섰다. "오빠, 오후에 한 번 더 들어갈 수 있어. 그때 가."
형이 큰누나를 봤다. 잠시 눈이 마주쳤다. 큰누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형이 먼저 시선을 돌렸다. 의자에 다시 앉았다. 하지만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분노인지 불안인지 모를 떨림. 사고 전의 형이라면 참았을 것이다. 지금의 형은 참는 기능이 고장 난 사람이었다. 다만 큰누나 앞에서는 겨우, 아슬아슬하게, 멈추는 것이었다.
성준은 커피를 사러 갔다. 자판기 앞에서 동전을 넣다가 손이 멈췄다. 형에게 화가 난 건지, 형이 안쓰러운 건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형은 아프다. 머리를 다친 이후로 감정 조절이 안 된다.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과 받아들인다는 것은 달랐다. 알고 있다는 말은 머리에서 끝났고, 받아들인다는 말은 가슴까지 내려가야 했다.
커피 세 잔을 들고 돌아왔다. 큰누나에게 하나, 형에게 하나, 자신의 것 하나. 형은 커피를 받아 마셨다. 아까의 날카로움은 사라져 있었다. 화가 빨리 오고 빨리 가는 것이 사고 이후 형의 패턴이었다. 돌풍 같았다. 갑자기 불어오고, 지나간 자리에 먼지만 남기고. 먼지를 치우는 건 늘 주변 사람의 몫이었다.
"형, 이따 오후에 같이 들어가자." 성준이 말했다.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이 아니라 수락이었다. 형은 원래 말 대신 고개를 움직이는 사람이 됐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감정이 먼저 나와버리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쪽이 안전했을 것이다. 형 나름의 방어였다.
오후 면회 때 큰형이 먼저 들어갔다. 성준은 밖에서 기다렸다. 형이 나오고 나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다만 눈이 빨갛다는 것을 성준은 보았다. 본 척하지 않았다. 형의 자존심이 필요로 하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모른 척이었다.
화요일.
오전에 의사가 경과를 설명했다. 뇌부종이 계속 줄고 있고, 자발 호흡이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큰누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첩에 뭔가를 적었다. 큰누나는 어머니의 약 이름, 복용 시간, 의사의 코멘트를 전부 수첩에 적었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어머니가 처음 무릎 수술을 받았을 때부터 시작된 기록. 그 수첩을 성준은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었다. 큰누나의 수첩은 큰누나의 영역이었고, 성준은 그 영역에 들어가지 않음으로써 편안했다.
그날 저녁, 문제가 터졌다.
큰형이 간호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 링거를 교체하는 타이밍이 늦었다며 따졌다. 간호사가 설명을 했지만 형은 듣지 않았다.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복도까지 울렸다.
"왜 이렇게 느려! 환자가 기다리고 있잖아!"
성준이 달려가 형의 팔을 잡았다.
"형, 그만해."
"이런 식으로 하면 엄마가 어떻게 돼!"
"간호사 선생님이 설명하고 있잖아. 들어."
형이 팔을 뿌리쳤다. 성준의 손이 허공을 짚었다. 형의 눈이 불었다. 불 속에 두려움이 있었다. 어머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화로 바뀌어 튀어나온 것이었다. 성준은 그것을 봤다. 하지만 형은 그다음 말을 했다.
"넌 맨날 남 말만 들어. 엄마 편은 안 들고."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성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의 말만 듣는다. 그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성준은 늘 중재자였다. 어머니와 형 사이, 큰누나와 어머니 사이, 형제들 사이. 양쪽의 말을 듣고, 양쪽에 돈을 보내고, 양쪽을 달래는 자리. 그 자리가 편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자리 말고는 설 곳이 없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것이 성준의 생존 방식이었다.
큰누나가 와서 형을 데리고 복도 끝으로 갔다. 큰누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형의 어깨가 조금씩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돌아왔을 때 형의 얼굴은 풀려 있었다. 큰누나는 표정 없이 의자에 앉았다. 형의 돌풍을 잠재운 것은 큰누나였지만, 그 대가는 큰누나의 에너지였다. 성준은 간호사에게 사과했다. 간호사는 "가족분들 마음이 급하신 거 이해합니다"라고 했다. 친절한 말이 더 부끄러웠다.
밤, 큰형이 먼저 잠들었다. 의자 두 개를 붙여놓고 몸을 구겨 넣은 채. 성준과 큰누나가 남았다.
"누나." 성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형 요즘 어떻게 지내?"
큰누나가 한참 뜸을 들였다. 천장을 보다가, 잠든 형을 보다가, 다시 천장을 봤다.
"버스 운전 그만뒀어."
"언제?"
"석 달 전에. 회사에서 잘렸어. 승객이랑 싸웠나 봐."
성준은 이마를 짚었다. 몰랐다. 석 달 동안 몰랐다. 형이 말을 안 한 것인지, 자기가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 둘 다였다.
"지금 뭐 해?"
"일용직 나가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 말을 안 하니까."
"누나가 어떻게 알았어?"
"엄마한테 들었어. 엄마가 걱정은 안 하셨어. 그냥 '형이 또 잘렸다더라' 하고 말씀하셨어. 그게 다야."
그게 다. 어머니에게 큰형은 '그게 다'인 존재가 된 것이다. 기대를 접은 뒤의 무관심. 그것이 형에게는 어떤 무게였을까. 성준에게 보이는 웃음과 형에게 보이는 무표정 사이에 어머니의 삶이 있었다. 성준은 웃음 쪽에 서서 무표정 쪽을 본 적이 없었다.
성준은 잠든 형을 봤다. 잠든 얼굴은 고요했다. 관자놀이의 흉터가 형광등 아래서 희미하게 빛났다. 이 사람이 전교 오등이었다. 이 사람이 서울 가는 대학에 붙었다. 이 사람이 합격 통지서를 접어서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그 서랍을 다시 열지 않았다. 형의 인생에서 닫힌 서랍이 얼마나 많은지 성준은 알 수 없었다.
수요일 오전.
어머니가 눈을 떴다.
간호사가 급히 알려왔다. 세 사람이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눈이 열려 있었다. 초점이 흐렸지만 열려 있었다. 입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입 모양이 보였다.
성준아.
어머니가 가장 먼저 찾은 이름은 막내의 이름이었다.
큰누나의 손에서 수건이 떨어졌다. 성준은 그 소리를 들었다. 축축한 수건이 리놀륨 바닥에 떨어지는 작은 소리. 그 소리가 중환자실 전체를 채우는 것 같았다.
"엄마, 나야. 성준이야." 성준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기쁨 때문이 아니었다. 기쁨과 죄책감이 동시에 차올라서 목이 떨린 것이었다.
어머니의 눈이 성준에게 멈춰 있었다.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웃음이었다. 팔십삼 년의 얼굴에 겨우 번지는 웃음. 그 웃음은 성준만을 위한 것이었다. 항상 그랬듯이.
큰누나가 방을 나갔다.
성준은 어머니의 손을 잡은 채 큰누나의 뒷모습을 보았다. 큰누나의 어깨가 흔들리지 않았다. 울지 않았다. 다만 발걸음이 빨랐다. 삼십 년을 곁에 있었다. 매일 와서 밥을 짓고, 약을 챙기고, 이마를 닦고, 빨래를 널고, 병원에 데려가고, 수첩에 적고. 삼십 년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눈을 떠서 처음 찾은 이름은 자기가 아니었다.
큰형은 침대 발치에 서 있었다. 어머니의 눈이 큰형에게는 가지 않았다. 형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 한 발 뒤로 물러섰다. 형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다 삼킨 것인지, 아니면 할 말이 없어서 입만 움직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형은 조용히 방을 나갔다.
성준은 혼자 남았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기쁨과 죄책감. 어머니가 눈을 떴다. 살아 있다.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드러난 것은 이 가족의 기울어진 지형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수평이 아니었다. 한 번도. 그리고 그 기울어짐의 가장 높은 곳에 성준이 서 있었다. 높은 곳에 서 있으면 아래가 보여야 하는데, 성준은 아래를 보지 않으려 했다. 아래에 큰누나가 있고, 형이 있고, 어머니가 외면한 얼굴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복도로 나왔을 때 큰누나는 화장실에 가 있었다. 큰형은 대기실 끝에 혼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성준은 그 사이, 복도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큰누나에게 가야 하나, 형에게 가야 하나. 아니면 어머니 곁에 남아야 하나.
결국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복도에 섰다. 그것이 그의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한가운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모두에게 빚진 자리.
5장 느린 해동
목요일 새벽, 성준은 병원 옥상에 올라갔다. 문이 잠기지 않았다. 작은 도시 병원의 느슨함이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충주 시내가 보였다. 낮은 건물들, 드문드문 켜진 불빛, 멀리 산의 윤곽. 서울과는 다른 어둠이었다. 서울의 밤은 밝아서 어두운 것을 숨기지만, 이곳의 밤은 어두워서 오히려 모든 것을 드러냈다.
성준은 난간에 기대 서서 생각했다. 어머니가 눈을 떴다. 다행이다. 하지만 다행이라는 말이 전부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눈을 뜨면서 이 가족은 다시 원래의 형태로 돌아갈 것이었다. 어머니가 성준을 찾고, 큰누나가 뒤에서 돌보고, 큰형이 밖에서 서성이는 형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형태.
바꿀 수 있을까. 성준은 자문했다. 어머니의 사랑을 고르게 나눌 수 있을까. 팔십삼 년 동안 기울어진 땅을 수평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마 못할 것이다. 어머니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는 건 주변 사람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성준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최소한 큰누나의 삼십 년을 인정할 수 있을까. 인정이란 뭘까. 돈인가. 말인가. 아니면 그냥 아는 것인가. 돈은 이미 보내고 있었다. 말은 해본 적이 없었다. 아는 것은 — 알기는 알았다. 하지만 아는 것과 아는 것을 표현하는 것 사이에는 수십 년의 간극이 있었다.
모르겠다. 답을 모르겠다. 오십이 넘도록 이런 것에 답을 모르는 자신이 한심했다. 클라이언트의 브랜드 전략은 한 시간 만에 읽어내면서, 옆에 앉은 큰누나의 마음은 삼십 년이 지나도 읽지 못하는 남자. 하지만 한심한 것도 사실이고, 모르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과 사실 사이에 서 있는 것이 성준의 인생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옥상에서 내려왔다. 대기실에서 큰누나가 깨어 있었다.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눈 밑에 그림자가 짙었다. 큰누나는 수첩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펜을 쥔 채로 잠들었다가 깬 것 같았다.
"누나, 나 잠깐 나갔다 올게."
큰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보지 않았다. 어디 가느냐고 묻지 않는 것이 큰누나의 방식이었다. 묻지 않는 것이 배려인지 무관심인지, 큰누나 자신도 모를 것이다. 오래 그렇게 해왔으니까.
성준은 차를 몰고 어머니 집으로 갔다. 이십 분 거리였다. 이른 아침이라 도로가 비어 있었다. 논밭 사이로 난 이차선 도로. 삼월이지만 들판은 아직 회색이었다. 겨울이 채 가지 않은 색. 하지만 자세히 보면 논둑 아래로 풀이 올라오고 있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초록.
어머니 집은 오래된 단층집이었다. 슬레이트 지붕을 몇 년 전에 기와로 바꿨다. 성준이 돈을 보냈다. 마당에 화분이 줄지어 있었다. 큰누나가 놓은 것이다. 어머니는 꽃에 관심이 없었다. "그 화분 돈이 얼마냐"고 한 적은 있었다. 큰누나만 매번 새 꽃을 가져다 놓았다. 아무도 안 봐도 꽃은 피었고, 큰누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 같다.
열쇠는 큰누나에게 받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관에 어머니의 고무신이 놓여 있었다. 단정하게, 나란히. 큰누나가 놓은 것이다. 어머니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는 사람이었다. 큰누나가 매번 가지런히 놓았다.
부엌에 냄비가 놓여 있었다. 금요일에 어머니가 국을 끓이려다 쓰러진 그 냄비. 큰누나가 치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치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구급차를 부르고, 병원에 따라가고, 밤을 새우고 — 그 사이에 냄비를 치울 틈은 없었을 것이다. 냄비 안에 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이틀 된 물.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만지다 만 물.
성준은 냄비를 들어 씽크대에 놓았다. 물을 틀어 씻었다. 물이 차가웠다. 손가락이 시렸다. 서울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차가움이었다. 서울 아파트의 수도꼭지에서는 따뜻한 물이 바로 나왔다. 여기서는 한참을 틀어야 겨우 미지근해졌다.
냉장고를 열었다. 큰누나가 만들어놓은 반찬이 줄지어 있었다. 깍두기, 멸치볶음, 시금치나물, 계란말이, 콩자반. 날짜를 적은 테이프가 각 용기에 붙어 있었다. 3/5, 3/6, 3/7. 매일 와서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금요일에도 왔다. 반찬을 만들어놓고, 어머니가 쓰러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성준은 냉장고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이것이 큰누나의 삼십 년이었다. 반찬통에 날짜를 쓰고, 약을 챙기고, 이불을 갈고, 병원에 데려가고, 의사 말을 수첩에 적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화분에 물을 주고, 냉장고를 채우고. 하루하루가 쌓여서 삼십 년이 된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전에 생각했다. 맞다. 하지만 더 정확히는, 돈으로 환산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환산하면 자신이 얼마나 적게 해왔는지가 드러나니까.
성준은 쌀통을 열었다. 쌀이 반쯤 있었다. 밥을 지었다. 밥솥 버튼을 누르는데 손가락이 어색했다. 서울에서는 밥을 짓지 않았다. 식당에서 먹거나 배달을 시켰다. 밥을 짓는다는 행위가 이렇게 손이 가는 일이라는 걸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쌀을 씻고, 물을 맞추고,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것. 그 기다림이 밥이 되는 것.
밥이 되는 동안 마당에 나왔다. 화분을 봤다. 큰누나가 심은 것이 뭔지 모르겠지만, 아직 피지 않았다. 삼월이니까. 흙이 말라 있었다. 큰누나가 며칠째 못 왔으니까. 성준은 수도꼭지를 찾아 호스를 연결했다. 화분에 물을 줬다. 차가운 물이 마른 흙에 스며들었다. 흙이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났다. 작은 소리.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
밥이 됐다. 냉장고에서 큰누나의 반찬을 꺼냈다. 깍두기와 멸치볶음, 시금치나물. 찬장에서 밀폐 용기를 찾아 밥을 덜어 담았다. 세 개의 도시락을 만들었다. 큰누나 것, 큰형 것, 자기 것. 반찬을 고르게 나눠 담았다. 이 가족에서 고르게 나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반찬통에서는 할 수 있었다.
차에 도시락을 싣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대기실에 큰누나와 큰형이 앉아 있었다. 형은 편의점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큰누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었다.
성준은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엄마 집에서 밥 해왔어."
큰누나가 도시락을 열었다. 안을 보더니 잠시 말이 없었다.
"반찬이 내 거네." 큰누나가 말했다.
"응. 누나가 만들어놓은 거."
큰누나의 손이 멈춰 있었다. 밀폐 용기의 뚜껑을 연 채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기가 만든 반찬을 자기가 먹는 것. 그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담아준 것은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큰누나가 숟가락을 들었다. 밥을 한 숟가락 떴다. 먹었다. 그리고 또 한 숟가락. 조용히, 천천히 먹었다.
큰형도 컵라면을 내려놓고 도시락을 열었다. 아무 말 없이 먹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대기실에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큰누나의 반찬으로, 성준이 지은 밥으로. 편의점 삼각김밥이 아니라, 처음으로 집밥이었다. 맛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밥은 약간 질었다. 물을 많이 잡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성준이 용기를 정리할 때, 큰누나가 말했다.
"성준아."
"응."
"엄마가 너를 제일 좋아하는 거, 너도 알지."
성준은 손을 멈췄다. 큰누나를 봤다. 큰누나는 정면을 보고 있었다. 복도 끝의 벽. 아무것도 없는 벽.
"알아." 성준이 말했다.
"그거 때문에 내가 서운한 것도 알지."
"……알아."
큰누나가 고개를 돌려 성준을 봤다. 눈이 마른 사람의 눈이었다. 울 수 없어서가 아니라, 울 만큼의 에너지조차 다른 데 써온 사람의 눈.
"근데 있잖아." 큰누나가 말했다. "서운한 거랑 미워하는 건 달라. 나는 서운한 거야. 미워하는 게 아니라."
성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면 울 것 같았다. 쉰두 살 먹은 남자가 병원 대기실에서 울 수는 없었다. 아니, 울어도 됐다. 다만 울면 이 순간이 감정으로 덮여버릴 것 같았다. 큰누나가 처음으로 꺼낸 말을 감정이 아니라 사실로 받고 싶었다.
"누나." 성준이 겨우 말했다. "미안해."
큰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밀폐 용기의 뚜껑을 닫았다. 딸깍,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마침표 같았다. 미안하다는 말에 대한 수락도 거절도 아닌, 그냥 들었다는 표시. 큰누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지, 아니면 충분하지 않은 것을 충분하다고 여기는 데 익숙한 것인지, 성준은 알 수 없었다.
큰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만지작거리더니 성준에게 화면을 내밀었다. 카카오톡 화면이었다. 성준과의 대화창. 글을 쓰다 만 흔적이 있었다.
'성준아 미안하다 형이' — 거기서 멈춰 있었다.
"보내려다 못 보냈어." 형이 말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어제 간호사에게 소리를 지르던 목소리와 같은 사람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성준은 형의 핸드폰을 잠깐 보다가 돌려줬다. 형이 미안하다고 한 것이 무엇에 대한 미안함인지 — 어제 소리 지른 것인지, 평소에 돈을 요구한 것인지, 아니면 더 오래된 무언가에 대한 것인지 — 묻지 않았다.
"안 보내도 돼, 형."
형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말했다. "나 오늘 가야 해. 일 나가야 돼."
"그래, 형."
"엄마 깨면 전화해."
"깨셨어. 어제." 성준이 말했다.
"알아. 그러니까 …… 다음에 또 깨면. 완전히 깨면."
성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원하는 것은 어머니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요구할 수 없으니까, '전화해'로 대신한 것이다.
"형." 성준이 말했다. "밥 먹고 가."
"먹었잖아."
"더 먹어. 도시락 남은 거."
형은 잠깐 서 있다가 다시 앉았다. 남은 밥과 반찬을 먹었다. 먹는 모습이 급했다. 형은 원래 빨리 먹는 사람이었다. 공사판에서, 농장에서, 버스 쉬는 시간에 — 형에게 식사는 늘 급한 것이었다. 느긋하게 먹어본 적이 있을까. 성준은 형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 앉아 있었다.
형이 일어섰다. 복도를 걸어 나갔다.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왼쪽 어깨가 살짝 기운 채로. 그 뒷모습이 작아지는 걸 성준은 지켜봤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형이 한 번 돌아봤다. 눈이 마주쳤다. 형이 고개를 까딱했다. 성준도 까딱했다. 그것이 인사였다.
오후 면회 시간. 성준과 큰누나가 함께 들어갔다.
어머니가 눈을 떴다. 어제보다 초점이 또렷했다. 이번에도 어머니의 눈은 성준에게 먼저 갔다. 성준의 이름을 부르려는 입 모양이 보였다. 하지만 성준은 한 발 옆으로 비켰다.
"엄마, 큰누나야. 큰딸." 성준이 큰누나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머니의 눈이 천천히 큰누나에게로 옮겨갔다. 초점이 맞는 데 시간이 걸렸다. 큰누나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입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입 모양을 성준은 읽을 수 있었다.
밥.
어머니가 큰누나에게 한 첫 마디는 "밥"이었다. 밥 먹었느냐는 뜻이었을 수도 있고, 밥을 달라는 뜻이었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큰누나와 어머니 사이에는 늘 밥이 있었다. 삼십 년 동안 큰누나가 차려온 밥. 어머니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었다.
큰누나의 눈에서 물이 흘렀다.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흘렀다. 큰누나가 울고 있었다. 성준이 아는 한, 큰누나가 사람 앞에서 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큰누나는 늘 울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열다섯 살의 큰누나는 울지 않고 부엌에서 손님상을 차렸다고 한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장례식이 끝나고 바로 어머니 집에 와서 반찬을 만들었다고 한다. 울 시간이 없었던 것인지, 울면 멈출 수 없을까 봐 시작하지 않은 것인지.
지금, 어머니의 "밥" 한 마디에 큰누나의 삼십 년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성준은 방을 나왔다. 큰누나와 어머니에게 시간을 주고 싶었다.
복도 의자에 앉았다. 창밖으로 삼월의 햇살이 들어왔다. 차가운 바람이 불지만, 빛은 따뜻했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었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목요일 오후, 성준은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머니의 상태가 안정되었고,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다고 했다. 큰누나가 남아 있겠다고 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성준은 이번에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누나, 주말에 다시 올게. 그때 누나 좀 쉬어."
큰누나가 성준을 봤다. "뭐?"
"내가 주말마다 올 테니까, 그때는 누나가 집에 가서 좀 쉬어."
큰누나가 한참 성준을 보다가 말했다. "……그래."
약속인지 인사인지 모를 대답이었다. 하지만 큰누나가 '그래'라고 한 것은, 성준이 기억하는 한, 이번이 처음이었다. 큰누나는 늘 "안 돼" 아니면 "괜찮아"였다. "그래"는 그 사이에 새로 생긴 말이었다.
떠나기 전 성준은 어머니 집에 한 번 더 갔다. 냉장고의 반찬을 확인했다. 부족한 건 없었다. 큰누나가 만들어놓은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 마당에 나와 화분을 봤다. 아침에 물을 줬던 흙이 아직 촉촉했다.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삼월이니까. 꽃은 사월에 피겠지. 큰누나가 물을 주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병원 주차장을 나서기 전에 큰누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누나, 간다. 뭐 필요하면 말해."
답이 왔다. "그래."
평소라면 여기서 끝이었다. 하지만 성준은 한 줄을 더 썼다.
"누나가 만든 반찬, 맛있었어."
한참 뒤에 답이 왔다. "뭘."
그 한 글자가 충분했다. 충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한 글자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라디오를 켜지 않았다. 창문도 닫았다. 조용한 차 안에서 성준은 생각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성준을 제일 먼저 찾을 것이다. 큰누나는 여전히 곁에서 돌볼 것이다. 큰형은 여전히 불안정할 것이다. 돈은 여전히 한쪽으로 흐를 것이다. 기울어진 땅은 수평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큰누나가 말했다. 서운하다고. 서운한 거지 미워하는 게 아니라고. 그 말을 듣기까지 삼십 년이 걸렸다. 듣고 나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준은 이제 큰누나의 서운함을 알고 있었다. 아는 것이 해결은 아니었지만, 모르는 것보다는 나았다. 모른 척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형이 보내지 못한 카톡이 떠올랐다. '성준아 미안하다 형이.' 거기서 멈춘 문장. 형은 그 뒤에 뭘 쓰려 했을까. '형이 못난 형이라', '형이 잘못했다', '형이 아프다' — 어떤 것이든 형은 끝내 쓰지 못했다. 하지만 쓰려고 했다. 화면에 글자를 올려놓고 지우지 않은 채 간직하고 있었다. 그것은 보내지 못한 편지와 같았다. 보내지 못한 편지도 편지다.
어머니가 입 모양으로 말한 "밥"이 떠올랐다. 어머니에게 큰누나는 밥이었다. 밥을 차려주는 사람. 밥을 차려주는 사람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 어머니. 사랑이라는 말을 배운 적 없는 어머니. 하지만 의식이 돌아왔을 때 큰누나에게 한 첫 마디가 밥이었다면, 그것은 어쩌면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밥을 묻는 것. 밥을 걱정하는 것. 밥이 어머니의 사랑이라면, 어머니는 평생 큰누나를 사랑한 것이었다. 다만 그것을 큰누나도, 성준도, 아무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삼월의 해는 기울면서 붉어졌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추었을 때, 형에게 카톡을 보냈다.
"형, 엄마 많이 좋아졌어. 다음에 같이 가자."
답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읽음' 표시가 떴다. 형은 읽었다. 읽고 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읽고 답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 성준은 생각하기로 했다. 보내지 못한 카톡을 간직하는 사람이니까. 답은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올 것이다. 성준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강남으로 접어드는 길에 회사를 지나쳤다. 을지로 골목이 보였다. 금요일에 떠나기 전, 후배들에게 "돌담이 아니라 틈새를 봐"라고 했었다. 일상의 틈새. 그 말을 자신에게 되돌려보았다. 성준에게 틈새는 무엇이었을까. 돈과 돈 사이, 의무와 의무 사이, 서울과 충주 사이. 그 틈새로 자라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오늘 아침에 지은 밥 같은 것이었다. 서툴고, 약간 질고, 특별할 것 없는. 하지만 직접 손으로 한 것.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둡고 조용한 아파트. 혼자 사는 집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할 여유가 없었다 — 고 스스로에게 말해왔지만,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여유를 다른 곳에 쓴 것이었다. 돈은 가족에게 갔고, 시간은 회사에 갔고, 감정은 어디에도 가지 않고 쌓였다.
신발을 벗고, 불을 켜고, 냉장고를 열었다. 텅 비어 있었다. 어머니 집 냉장고와는 달랐다. 큰누나의 반찬이 줄지어 있던 그 냉장고와는. 성준의 냉장고에는 날짜를 적은 테이프가 붙은 용기가 없었다. 누군가가 매일 와서 채워주는 냉장고가 아니었다.
성준은 냉장고 문을 닫았다. 내일은 쌀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밥을 지어야겠다고. 그것이 시작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작은 것이었지만, 너무 작은 것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성준은 이번 주에 배웠다.
밖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삼월의 바람. 아직 차갑지만, 어제보다는 덜 차가운 바람. 언 땅이 풀리려면 시간이 걸린다. 빠르게 녹으면 갈라진다. 느리게 녹아야 스며든다.
느린 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