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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라 Dec 08. 2020

인문학으로 바라보는 갈림길의 역사

주사위는 던져졌다!



 기원전 49년 줄리어스 시저는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로마 원로원이 갈리아를 정복한 그를 로마로 부른 것이다. 당시 로마법에 따르면 공화국 로마의 영내에 들어올 때에는 무장을 해제하여야 했는데, 무장을 해제하고 가면 그를 견제하는 원로원에게 살해당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무장을 해제하지 않고 가면 반역자가 되는 것이었다. 법에 따라 무장을 해제하고 무방비 상태로 로마로 갈 것인가, 법을 어기는 반역자가 되어 로마로 갈 것인가.


 절체절명의 순간!

 '목숨을 건 복종이냐', '모든 걸 건 반역이냐'의 순간에 그가 던진 한 마디.



 “주사위는 던져졌다(Alea iacta est)!”





 시저는 무장한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로마와 갈리아의 경계)을 건너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시저를 로마의 1인자로 만들었다.

 위화 회군을 선택한 이성계가 조선의 초대 임금이 된 것처럼.


 역사는 반복되며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지난 브런치 글 <젊은 나폴레옹이 해임된 이유>에서 보듯이, 기회는 때를 놓치면 다시 붙잡을 수 없다.

 충분히 고민했다면 고민은 그만하고 결단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물론 시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일부는 그를 공화정을 위협한 ‘독재자’였다고 평가했다. 셰익스피어는 (시저를 죽인) 브루투스를 ‘모든 로마인 가운데 가장 고귀한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저를 그저 독재자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브루투스에 의해 암살되는 시저


 반면에, 일부는 시저를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고 로마제국의 기틀을 쌓은 위대한 리더로 평가하기도 한다. 단테는 사후세계를 그린 《신곡》에서 브루투스를 최악의 배신자라 칭하며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한다고 묘사했으며,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도 시저를 위대한 지도자라 평가했다.




 평가는 나뉘지만 그가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1) 서구권에서 그의 이름 카이사르(시저)는 권력자를 지칭하는 보통 명사로 자리잡았다. 황제를 의미하는 슬라브어의 차르, 독일어의 카이저 등은 모두 카이사르라는 이름에서 나왔다.


 2) 또한 그는 로마의 달력을 태양력(율리우스력)으로 바꾸었는데,

 카이사르가 11월 1일 새로운 달력을 공포하며 기존의 11월(문의 수호신 야누스의 이름을 딴 Januarius)을 1월 1일로 바꾸었다. 이에 따라 라틴어로 7, 8, 9, 10월을 뜻하는 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가 카이사르의 달력 재정비로 2개월씩 밀려났다. 라틴어 septem, octo, novem, decem이 각각 7, 8, 9, 10의 뜻이라는 것은 이 말을 어근으로 삼는 영어 단어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Octopus, 문어는 다리가 8개다).

 여기에 더해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죽고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존경의 뜻에서 그가 태어난 7월을 율리우스의 이름을 따 July로 바꾸었고, 8월은 원로원이 옥타비아누스에게 수여한 존칭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따 August로 바꾸었다(나머지 2월에서 6월까지의 이름은 로마에서 섬기던 신이나 축제의 이름을 딴 것이다).


 3) 카이사르의 영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배를 갈라 아기를 낳는 수술을 라틴어로 ‘섹티오 카이사레아(영어로는 Caesarean section)’, 동양에선 ‘제왕(帝王)절개’라고 하는데, 옥스퍼드 사전은 카이사르가 이 방법으로 태어났다는 이야기에서 이 표현이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젊은 나폴레옹이라 불리며 전도유망하던 총사령관 조지 맥클레런은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며 남북전쟁을 마무리짓지 못했고,

 <홍문지회>에서 보듯 초나라 왕 항우의 우유부단함은 자신보다 열세였던 유방을 코앞에서 죽이지 못하며,

 후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목숨을 끊는 운명을 초래했다.


 반면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단할 줄 알았던

 율리시스 그랜트는 남북전쟁을 마무리 짓고 50달러 지폐에 자신의 얼굴을 영원히 박제시켰고,

 군대를 이끄는 결단을 내린 시저(카이사르)와 이성계는 권력의 1인자가 될 수 있었다.


 차이는 간단하다.

 

 결단의 순간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자와 결정을 내릴 줄 알던 자.


 작은 차이가 모든 걸 바꾸었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등장    

브루투스 : 자, 그럼 우리 일을 성사시키려면 지금 당장 빌립보로 진격해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소?    

카시우스 :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소.    

브루투스 : 이유가 무엇이오?    

카시우스 : 우리가 적에게 가는 것보다, 적들이 우리에게 오도록 만드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오. 그렇게 되면 적들은 물자를 소모하고, 병사들도 지쳐 체력이 소모될 것이오. 그동안 우리는 가만히 누워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힘을 기르면 되오.     

브루투스 :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내 말도 들어보시오. … 적들의 수는 매일 증가하고 있고, 우리의 군사는 지금이 가장 많으니 곧 줄어들 것이 뻔하오. 사람의 일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는 법이오. 밀물을 만나면 승리로 나아갈 수 있지만, 밀물을 놓치면 인생의 항해는 비참함의 수렁 속에 갇히고 말 것이오. 우리는 지금 만조 위에 두둥실 떠 있소. 우린 이 물살이 들어왔을 때 올라 타야만 하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이오.    

카시우스 : 그럼, 당신의 뜻에 따라 따르겠소.

-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우스 시저(Julius Caesar)」      
  4막 3장 (Act4, Scene3)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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