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한번 제대로 해보기라도 했나?
‘신이 내린 목소리’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류의 자산’
‘금세기 최고의 콜로라투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성악가 조수미의 별칭이다. 조수미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조수미가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리라고 믿었다. 조수미가 17살 때 그녀의 아버지는 런던 로얄 오페라 하우스를 무작정 찾아간다. 그리고 다짜고짜 극장장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2시간을 기다려 극장장을 만난 아버지는 물었다.
“우리 딸이 10년 후에 여기서 데뷔를 할 건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
딸이 몇 살이냐고 묻는 극장장의 질문에 아버지는 “아직 고등학생”이라 답한다. 그러자 극장장은 “아직은 시간이 많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하면 우리 극장에도 설 수 있다”고 격려했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말처럼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당신 생각이 옳다. 왜냐하면 미래는 당신의 생각대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가 조선사업에 성공하면 내가 손가락에 불을 켜고 하늘로 올라가겠다.”
1968년 현대중공업이 조선사업을 하겠다고 나서자 한 정부 고위 관료는 이렇게 호언 장담했다. 당시 한국 조선업계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조선소 건설에 필요한 돈도 없었다.
하지만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할 수 있다’ 생각했다. 남들이 “안 된다”고 말할 때 그가 입버릇처럼 말한 이야기.
“임자, 해봤어?”
현대는 당시 영국 최고의 은행이던 바클레이은행과 차관을 협의한다. 하지만 바클레이 측은 아시아 변방에서 온 현대의 조선 능력과 기술수준에 의구심을 표하며 거절했다.
물론 이대로 포기할 정주영이 아니다. 바클레이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컨설턴트 회사 애플도어의 롱바텀 회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롱바텀 회장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때 정회장이 지갑에서 꺼낸 지폐 한 장. 거기에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었다.
“우리는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었소.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서 있었는데, 산업화가 늦어져서 아이디어가 녹슬었을 뿐이오. 한번 시작하면 잠재력이 분출될 것이오.”
이렇게 한 편의 소설같은 이야기로 차관을 도입하여 한국의 조선 산업이 시작됐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었다. 당시 세계 조선시장 점유율의 1%에도 미치지 못했던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조선 최강국이다.
가끔 폭풍, 안개, 눈이 너를 괴롭힐 거야.
그럴 때마다 너보다 먼저 그 길을 갔던 사람들을 생각해봐.
그리고 이렇게 말해봐.
‘그들이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어.’라고.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