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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ong Sep 21. 2019

<월드워Z>를 왜 4번이나 봤을까

영화 월드워Z(World War Z, 2013) 

*일부 스포가 있습니다.


좀비 영화 중에서 월드워Z((World War Z, 2013)를 가장 많이 봤다. 이유도 모른 채 그랬다. 


영화 주인공이 그 옛날 잘생긴 브래드 피트여서? 좀비가 사정없이 죽는 게 통쾌해서? 

영화 짜임새가 매끄러워서? 영상미가 흘러넘쳐서? 답은 모두 아니다. 


영화를 4번째 보던 날 답을 찾았다. 영화채널에서 익숙한 제목을 발견하곤 홀린 듯 빠져들 때였다. 공부해야 하는 취준생이기에 죄책감이 밀려오던 차이기도 했다. 주인공 제리(브래드 피트가 연기했다)는 어느 영화의 주인공과 다름없이 해결사처럼 문제를 풀어 나간다. 몸으로 이기는 건 아니다. 상대와 치열한 머리싸움으로 승부를 겨루는 것도 아니다. 


제리는 좀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인간이 살아나갈 방도를 찾는다. 이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이지도 않고, 현실과 밀착한 대안으로 말이다. 말하자면 현실에 적용 가능해서 '오 이런 생각을?'이라고 할 만한 방안. 그걸 자기 머리로 여러 사례들을 종합해 찾아내고야 만다.

영화엔 이렇게 어떤 현장을 보고 머리를 굴리는 듯한 제리의 모습이 자주 나온다. (출처: 다음 영화)

나는 극한 상황에서 통찰력을 발휘한 제리가 부러웠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찾은 대안의 효과까지 증명해낸다. 그 순간 제리에 빙의해 희열을 느꼈다. 영화 속 핵심 문제가 풀리는 데 대한 카타르시스와는 달랐다. 포기하지 않는 용기, 희망적 메시지 뭐 그런 아름다운 결말에 감동한 것도 아니다. 그저 '두뇌'가 탐났다. 


주인공 제리는 UN 조사관이다. 세계 곳곳에서 조사하고 밝혀내고, 그런 일을 해왔다. 라이베리아 등 내전으로 위험한 곳들이 주 무대였다. 갑자기 좀비가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국가는 원인을 밝히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능력 있는 조사관 제리가 전면에 나선 이유다.

자신이 생각한 대안을 직접 증명하러 나선 제리 (출처: 다음 영화)

영화 <부산행>은 좀비 떼의 습격을 받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남는 과정을 그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은 추악한 권력의 이면을 말하는데 좀비를 활용했다. 이처럼 좀비물의 면면은 모두 제각각이다. <월드워Z>에서도 사람들은 좀비를 헤쳐 나가고, 그것들과 맞서 싸운다. 차이는 '어떻게'다. 제리의 빛나는 두뇌가 없다면 <월드워Z>는 앙꼬 없는 찐빵이다.


근 몇 년간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내내 고민하는 일상의 연속이다. 모두를 납득시킬 답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너무 이상적이거나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 적당히 타협 가능하고 현실 가능성이 있는 대안을 찾는 일이 그렇다. 그러니 좀비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홀로 문제를 풀어낸 제리가, 아니 제리의 두뇌가 탐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따지고 보면 제리는 타고난 천재라고 보긴 어려웠다. 저만한 두뇌회전이라면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좀비의 습격이 아니라 제리의 문제풀이 과정이 궁금하다면 <월드워 Z>를 추천한다. 단, 보고 나도 별 감흥은 없을 수 있다. 제리의 두뇌가 탐나는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

그러고 보니 두뇌가 탐나는 이들이 나오는 영화에 자주 흥미를 느꼈다.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을 다룬 <이미테이션 게임>, 언어학자가 문제를 푸는 <컨택트>, 경제 덕후가 환장할 <빅쇼트>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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