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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ong Oct 25. 2019

내 생애 MBC 인생드라마 모음집

“어제 궁 봤어?” 학교 아니면 학원을 오가던 학창 시절, 새로울 것 없는 일상에 ‘드라마’는 늘 화제의 중심이었다. 어제 본 드라마의 감상 소감을 털어놓다 보면 쉬는 시간은 금세 끝나 있었다. 주인공 대사가 어땠다느니 서브 주인공이 더 마음에 든다느니 돌이켜보면 별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그때 그 시절엔 그게 우리들의 소확행이었다. 매번 한 바탕 유행처럼 한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다음 드라마를 기다렸다. 여기에 부응하듯 매해 인생드라마가 한 편씩은 꼭 나왔다. 그래서 소개해본다. 그때 그 시절, 우리들의 성장과 함께한 드라마를 말이다. 


-2001~2005년: MBC 드라마가 만든 톱스타

2000년대 초반 무려 초등학생 때부터 드라마를 봤다. 지금도 그때의 MBC 드라마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바로 배우들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톱스타들의 신인 시절이 그때 드라마에 박제돼 있다. 2001년 방영된 <맛있는 청혼>이 대표적이다. 그때만 해도 손예진은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예쁘지?’ 내내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드라마는 초대박이 났다. 분명 손예진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소지섭, 권상우까지 포함해 화제의 캐스팅 드라마로 언급되지만, 기억 속에 남은 건 사실상 손예진이 유일하다. 손예진 때문에 드라마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2003년 명대사와 명배우를 남긴 드라마가 있다. 바로 <다모>와 <대장금>이다. 이서진, 하지원 주연의 <다모>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조선 형사 ‘다모’를 다룬 픽션 사극이다. 지금도 회자되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 대사가 바로 여기서 나왔다. 처음 드라마를 볼 때만 해도 기존 사극과 다르게 여자 주인공이 직접 검을 들고 싸우는 모습에 눈길이 갔었다. 하지만 ‘아프냐’ 대사 이후로 시청 포인트가 달라졌다. 극 중 서로 마음을 대놓고 표현할 수 없는 이서진과 하지원의 관계로 말이다. 당시 신인 배우였던 이서진이 이 드라마로 톱스타 반열에 오른 건 이 대사 한 줄에 공을 돌려도 될 정도다. 

MBC 드라마로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발돋움한 스타도 있다. <대장금>의 이영애다. 드라마는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40~5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이른바 ‘국민 드라마’가 됐다. 극을 이끌어 간 이영애의 힘도 크지만, 초반 인기몰이를 담당한 건 아역이었다. 지금도 ‘홍시맛’이란 연관검색어가 뒤따르는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난다 하였는데...’ 대사가 기억난다. 극 중 이영애의 아역이 남긴 대사다. 아역의 찰진 연기가 드라마 초반 몰입도를 높여줘 이영애가 연기하는 어른 장금이도 자연스럽게 기대가 됐다. 이영애는 무언가 호기심 섞인 눈빛으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며 주인공 서장금을 완성시켰다. 

2005년엔 ‘현빈’이란 이름을 시청자에게 각인시킨 <내 이름은 김삼순>을 봤다. 지금으로 치면 현빈은 츤데레 스타일의 까칠한 남자 주인공을 연기했다. 그 때문인지 현빈이 멋있게 보이기보단 여자 주인공인 김삼순 편에서 드라마를 봤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현빈이 까칠한 연기를 제대로 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 역시 안 보는 친구들이 없었던 대박 드라마였다. 이후 현빈은 이 드라마를 계기로 스타가 됐다. 이쯤 되면 2000년대 초반 미래 톱스타를 픽(pick)한 MBC 드라마의 안목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2006~2008년: MBC 드라마 러브라인 절정기

한때 한국 드라마는 ‘연애’하는 게 전부라는 디스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의학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하고, 학원드라마는 학교에서 연애하고, 사극 드라마는 조선시대에 연애한다는 등등 드라마가 장르를 불문하고 러브라인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창 감성이 풍부했던 중학생 시절엔 러브라인에 빠져 드라마를 보는 게 우리들의 낙이었다. 

한국 드라마 러브라인 절정기는 2000년대 중반 MBC 드라마로 확인할 수 있다. 2006년 주지훈, 윤은혜 주연의 <궁>은 친구들 사이에 단연 화제였다. 지금 보면 다소 오글거리는 대사와 설정에 공감하기 어렵지만 그때만 해도 학교 안에서 연애하는 게 판타지처럼 다가왔다.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설렘을 드라마로 대신 채운 셈이다. 학원 마치자마자 ‘궁’ 보려고 집에 달려오기도 했다. 같은 학교에 왕족이 다니는 것도 모자라 왕족과 연애한다고 하니 없던 설렘도 생겨날 때였다. 지금 봤다면 분명 그만큼 설레진 않을 것이다. 그때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다.

2007년 <커피프린스 1호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드라마는 아예 대놓고 남자 주인공들을 내세웠다. 공유, 김재욱, 이선균 등 친구들과 누구를 픽(pick)할지 고민하곤 했다. 단연 1등은 ‘공유’였지만 말이다. 넓은 어깨와 왠지 편안히 안길 수 있을 것 같은 품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흔들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의 대표주자는 2008년 <뉴하트>다. 김민정, 지성 주연으로 두 배우가 열정 충만한 흉부외과 의사로 나왔다. 극 중에서 처음엔 정말 정반대의 성격이라 친구조차 될 수 없을 것 같은 둘이었다. 내내 티격태격하더니 미운 정이 고운 정 된다고 그 말이 딱 맞았다. 결국엔 서로 마음을 열고 연인이 된다. 치료받으러 가는 병원에서 의사들이 연애할 줄은 꿈에도 모르는 중학생 때였다. 두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관계 변화에 설렐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한국 드라마의 러브라인 공식엔 2000년대 중반 MBC 드라마가 크게 한몫했는지도 모른다. 


-2009~2012년: MBC 드라마 개그 담당은 ‘하이킥’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이란 관문을 앞두고선 남모를 긴장감이 내내 커질 때였다. 그다지 웃을 일도 없던 그때 웃음을 되살린 건 ‘하이킥’ 시리즈였다. 2009년 <지붕뚫고 하이킥>부터 2011년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까지 빼놓지 않고 챙겨봤다. 공부에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덴 하이킥 한 편 보는 것 만한 게 없었다. 레전드 편을 꼽기 어려울 만큼 매회 웃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기억나는 최애 편을 떠올려봤다. 

먼저 <지붕뚫고 하이킥> 73회 이른바 홍어편이다. 준혁 학생이 빵꾸똥꾸 해리의 식탐 퇴치에 홍어를 이용하는 게 주 내용이다. 신애가 뭘 먹으려고만 해도 해리가 다 뺏어먹는 버릇을 홍어로 고치려고 한다. 피자, 치킨, 케이크에까지 홍어를 숨겨놓고선 아무것도 모르는 해리가 먹게 한다. 나 역시 홍어는 아직도 먹지 못하는 넘사벽의 음식이기에 보기만 해도 절로 감정이입이 됐다. 홍어에 된통 당한 해리를 직접 영상으로 봐야 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빵꾸똥꾸 해리의 귀여운 절규에 절로 웃음이 날 것이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선 남매인 안종석과 안수정이 싸울 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실제 오빠가 있어서인지 남매의 환상을 깨뜨리는 장면에 절로 공감이 됐다. 다들 남매라 하면 사이좋은 오빠 동생의 모습을 생각하니 말이다. 46회에선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학교에선 슬리퍼로 오빠의 얼굴을 때리고, 집에선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운다. 둘이서 살벌하게 싸우는 모습이 꼭 현실 남매 같았다. 하이킥 시리즈의 묘미는 현실에 가까운 설정에 물 흐르듯이 장면 장면에 집중하게 된다는데 있다. 웃음은 현실 공감에서부터 나온다. 



지금까지 MBC 인생드라마로 추억팔이를 해봤다. 아마도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멋있고, 설레고, 웃기고 할 수 있는 것 다 했던 MBC 드라마 덕분에 학창 시절엔 심심할 틈이 없었다. 인생드라마를 되돌아보며 그때의 감정도 함께 느껴졌다.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 공감된다면 MBC 인생드라마 한 편 정주행하며 추억에 잠겨 보는 건 어떨까. 그 시절에 그랬듯 일상을 소소한 행복으로 채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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