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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ong Nov 07. 2020

질투의 노예

*7월 17일에 쓴 일기


'자기 매트 안으로만 집중하세요' 

괜스레 놀라 속이 뜨끔한다. 일주일에 3번 아침 요가를 다닌다. 종종 요가 선생님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 듯한 말로 놀라게 한다. 요가는 남이랑 경쟁할 게 없다. 자기 매트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숨을 따라 동작을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남과 나를 비교한다. 저 사람은 되는데 나는 왜 못하지, 나는 왜 이 자세를 완벽하게 못 하는 걸까. 이를 꽉 깨물고 안 되는 자세를 애써 하려 들면 선생님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입이랑 눈에 힘 풀고, 숨 쉬세요' 몸과 마음 수련이 동시에 되는 매직. 요가에서 나는 비교하지 않는 법을 익히고 있다.


나는 늘 비교하고 질투하고 부러워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마른 애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했더니 몸무게는 줄었으나 키도 덩달아 크지 않았다. 아주 작은 키는 아니지만, 부모님이 물려준 유전자를 따라가지 못했다. 형제들은 다 키가 크니까. 잠재적인 가능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중학교 때는 공부였다. 눈에 띄게 나를 싫어하는 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만은 이기고 싶어서 용을 썼다. 처음엔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그 아이는 이미 나를 상종하기 싫은 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된 후로는 미치게 그 아이가 미웠다. 그 아이가 틀린 문제를 내가 맞힐 때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도 기뻤다. 내가 너를 이겼다니, 고작 시험 문제 하나로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경쟁자가 생기면 눈에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그 기세로 중학교 때 성적이 수직 상승했다.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공립학교를 나왔는데, 우리 지역에서 사립과 공립은 교육 격차가 컸다. 사립학교엔 입시 경쟁이 치열했고 그만큼 아웃풋도 좋았다. 사립학교를 지망했던 나는 지망 7순위로 쓴 공립학교에 배정되고 말았다. 그날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아직도 친구가 기억할 정도다. 지나고 보니 그 일은 내 인생을 바꾼 최고의 순간이었다. 내가 우리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면, 내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니까. 


공부 잘하는 애, 엄친딸, 선생님이 좋아하는 애 소위 말 잘 듣는 모범생 캐릭터가 나였다. 서울에 오고서야 우물 안 세상이었음을 느꼈지만, 그때는 그랬다. 매번 부러워만 하다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분이 이상했다. 좋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한편으론 부담스러웠고 어떨 때는 의문을 가졌다. 내가 뭐라고, 대체 뭐라고. 타고난 복과 행운을 인지하게 된 것도 그 시절을 겪으면서였다. 그간 나만 바라보기도 바빴던 내가 그제야 남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가졌고, 듣고 싶었고, 공감하고 싶어 노력했다. 사는 곳의 차이는 꿈의 크기로 이어지고, 생각의 차이는 환경의 차이에서부터 비롯되는 현실. 그 시절 나는 부채감을 크게 느꼈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대체 왜 이런 걸까. 이게 당연한 일이라고? 차마 웃으며 넘길 수 없는 질문이었다. 


대학에 와선 참 비슷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고등학교 우리 반에서 홀로 서울에 있는 학교를 왔으니, 비슷한 친구들이 많다는 게 신기하면서 한편으론 슬프기도 했다. 동기들은 대부분이 엇비슷한 환경에서 그럭저럭 공부도 곧잘 하며 대학까지 큰 고난 없이 도달했다. 힘들다면 힘들었겠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우린 모두 복을 잘 타고났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공부하면서 즐거웠다. 그때 그 시절, 어른이 됐다는 기쁨을 함께 만끽했고 한 뼘씩 더 어른이 되어 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 줬다. 기쁘고, 짜증 나고, 즐거운 순간을 셀 수 없이 함께했다. 대학에 와서 원하는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좋았지만, 그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동기라는 이름으로 동반자들을 만나서 즐거웠다. 물론 그 시절에도 자그만 질투, 부러움의 순간이 있었을 테지만, 문제라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친구가 기쁘면 기뻤고, 슬프면 슬펐고 그런 순간들이 더 많았다. 행운이었다. 


다시 비교의 늪에 빠져 질투의 노예가 된 건 취업준비생이 되고부터였다. 내가 준비하는 시험에서 누가 붙고 떨어지느냐에 온 신경이 쏠리면서다. 공무원 시험이나 공공기관 NCS와는 달리 정성평가에 가까워 정확한 점수를 알 길이 없다. 붙어도 왜 붙었는지 모르고, 떨어지면 더더욱 모르는 게 이 바닥이다. 저마다 역량이 있고, 장점이란 건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니까 이유를 꼽아보자면 일부터 십까지 다 이유가 될 수 있고 반대쪽으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무수한 경쟁자들을 쳐다보며 비교하고 또 비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떨어진 시험에 이름만 아는 사람이 붙었을 때도, 잘 봤다고 생각한 면접에서 톡 하고 떨어진 후 옆에 앉았던 사람이 된 걸 알았을 때도 패인을 찾다가 지쳐 질투하고 부러워하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잠을 못 이루고 고통스러웠다. 중학생 시절처럼 질투의 대상이 미워서는 아니었다.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질투하는 내가 못나 보이고 또 화가 났기 때문이다. 내가 미치게 싫어지는 정점에 도달하고서야 다시 정신을 차린다. 이대로 죽을 순 없지. 울적한 목소리로 부모님한테 전활 걸고선 조금이나마 회복한다. 어릴 때 안 한 징징거림을 이제야 하냐며 엄마 아빠는 다시금 나를 바로 세운다. 질투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자기혐오의 늪에서 벗어나도록 말이다. 우리 집 귀한 자식이라는 걸 확인시켜주면서. 저마다가 빛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질투는 자기혐오의 다른 말이다. 남을 질투하면서 정작 내가 가진 장점을 놓치곤 한다.


질투, 경쟁심 때문에 중학생 시절 성적은 좋아졌지만, 나는 그때가 가장 불행했다. 떠올리면 끔찍하고 벗어나고 싶다고 여긴 날들이 더 많았다. 친구 아닌 경쟁자와 매일매일을 겨루고, 또 서로 견제하며 어떻게 이길지만 골몰하던 때였다.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며칠 새 다시 질투하고 부러워하느라 밤낮을 지샜다. 그리고 무력해졌다. 이렇게 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 싶었다. 격정적인 감정의 동요도 없이 무력감에 허우적대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래서 다시 정신을 차리려 글을 쓴다. 질투의 역사를 써 내려가면서, 질투하느라 끔찍했던 시간과 질투 없이 행복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말이다. 


'생각을 바꾸면 귓가에 윙윙거리는 파리도 신경 쓰이지 않게 되더라고요.' 어제는 무력감에 빠져 요가도 빼먹었다. 언젠가 선생님이 해준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질투하고 부러워하느라 놓치고 있는 나를 붙잡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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