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첫 운전 도전기
아빠는 늘 말했다. 수영과 운전을 배워놓으면 까먹지 않고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그 말을 들으며 자란 나는 수능을 보고 당연한 듯 면허를 땄다. 운전은 쉽지 않았다. 나는 땅에 발이 닿지 않는 탈 것을 웬만하면 모두 무서워한다. 내 발 말고는 무엇 하나 믿을 만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배, 자전거, 비행기 등등 탈 것엔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다. 그런 내가 운전을 하다니. 학원의 가르침 덕분인지 수능을 막 끝낸 19살의 패기였는지 결국엔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7년, 운전에 손을 놓고 살았다. 차를 타고 대학에 다니는 것도 아닐뿐더러 서울은 대중교통의 도시가 아닌가. 굳이 운전해야 할 필요성도, 그렇다고 운전할 수 있는 차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면허를 딸 때도 그랬다. 막연하게 10년 뒤 직장인이 되고 신입 생활을 지날 때쯤 차를 몰게 되지 않을까. 19살의 면허는 10년 후를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었다. 그런데 운전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10년 지기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면 서다. 그래도 제주도는 운전하는 게 편하다는 데, 우리도 운전하며 여행해보잔 호기로운 마음이었다. 장롱 속 묵히다 못해 발효 수준인 내 면허도 멀쩡하니까, 답은 '예스'.
'모 아니면 도'의 계획이었다. 그 계획이 도박이란 걸 알게 된 건 도로연수를 미리 받게 되면서다. 호기롭게 '예스'라고 했지만 사실 겁이 났다. 10시간의 방문도로연수는 제주도 운전을 위한 일종의 보험이었다. 연수를 통해 두 가지의 사실을 알게 됐다. 1. 생각보다 운전에 겁이 없다는 것 2. 사주경계가 잘 안 된다는 것. 2번은 치명타다. 옆 차선과의 거리부터 앞뒤 차와의 간격 등 눈은 하나지만 시야는 360도 트여 있어야 했다. 강사님은 조수석에 달린 브레이크를 몇 번이나 밟았다. 그래도 나름 시외로 나가보며 사고 없이 연수를 마쳤다. 중요한 건 이대로 제주도에서 운전해도 될까란 불안함은 여전했다는 점이다.
걱정은 뒤로 한채 봄 날씨가 반기는 4월의 제주도로 향했다. 결국, 운전하는 첫날부터 실수를 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나가는데 시동을 완전히 켜지 않은 것이다. 액셀이나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할리 없었고, 게스트하우스 앞 도로 정중앙에 차를 멈춰 세우는 대형 실수를 저질렀다. 결국 전날도 운전하느라 고생한 친구가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이대로 운전은 어려운 걸까' 자존심이 상했다. 한적한 동네의 카페를 들른 게 기회였는지 오후가 되어서야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기다리는 차도 없으니 침착하게 시작하기엔 제격이었다. 늘 처음이 어렵다는 데 겨우겨우 시작은 한 셈이다.
제주도의 도로는 반 이상이 렌터카라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 너도나도 제주도 여행을 핑계 삼아 장롱면허를 꺼내 든다는 말도 많았다. 정확히 우리도 그랬으니까. 막상 운전을 시작하고 나니 '운전을 한다'는 쾌감이 있었다. 연수 때 강조한 부드럽게 브레이크 밟기, 차선과 앞차와의 간격 유지하기 등등 기본을 따르며 운전했다. 기분 좋게 쌩쌩 달릴 만큼의 속도 내기는 무서웠다. 체감상 시속 60km도 100km 넘게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의 느낌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도로 위를 처음 달리는 이 기분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첫 발은 언제나 두렵지만 설렌다. 다행히 제주도 운전은 무사고로 '해피엔딩'이었다. 나를 믿어준 너그러운 친구들 덕분이다. 도로 위는 서투른 운전을 감내해줄 만큼 자비롭지 않다. 물론 서투른 운전 탓에 다른 운전자가 피해를 본다면 그만큼 폐를 끼치는 일도 없을 테다. 가족들은 여전히 운전을 못한다며 혹평을 서슴지 않고, 서울에 돌아와선 도로 위에서 욕 한 사발과 귀 따가운 클락션 소리를 듣기도 했다. 언젠가 살벌한 서울 도로 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든 운전자에겐 자기만의 속도가 있다며, 규정 속도를 준수해도 된다고 말해준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너무 빠르지 않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도로 위에 적응하는 일이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