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yong Mar 04. 2019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요즘 알바 광고와 알바 경험기

한 시간의 노동에 얼마의 돈이 적당할까. 그런 과학적이고, 어쩌면 철학적인 질문의 답은 모른다. 한창 논란인 최저임금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최근 TV를 보다가 한 알바 광고를 봤다. IOI 출신 소미와 스카이캐슬의 차파국 김병철이 나오는 광고다. 재밌는 건 이들 광고모델이 아니었다. 김병철이 '요즘엔 알바도 프로정신을 가지고 일만 해야지'라고 외치면 소미가 나와 '그건 님 생각이고'라며 대꾸한다. '알바는 알바답게'가 슬로건이었다. 재밌다는 생각 반 놀랍다는 생각 반이었다. '알바는 열심히 일하는 게 미덕'이란 고용주의 생각에 맞춰 일하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알바 광고의 한 장면, 통쾌한 문장이다(출처: 알바천국 블로그)

대학 시절, 두 차례 알바를 했다. 한 번은 브런치 카페에서 서빙을, 한 번은 카페에서 제조와 손님 응대를 했다. 두 번의 알바에서 내 모토는 '열심히 일하기'였다. 그 해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했는데, 그만큼의 돈을 받으면 어느 정도 일해야 할까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는 잘 모르겠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회와 학교의 가르침에 순응하며 자라서인지 모른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알바를 하다 보면 그날 하루 기분을 망치는 손님을 만나기도 하고, 반나절 가량 서 있는 탓에 다리가 퉁퉁 붓는 등 몸과 마음 중 어느 하나는 성치 않기 마련이다. 그땐 그렇게 곧이곧대로 '열심히 일'을 했다.


'넌 알바할 때도 열심히 할 것 같은 타입이야'

대학 동기의 정확한 평가다. 그런데 동기는 '돈 받은 만큼만 일한다'고 했다. 다른 알바들과 달리 내 타임에만 일이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최저시급을 받는다면 그만큼, 얼마가 됐든 자기가 받는 만큼 '적당히 일'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받은 만큼만 일한다'는 생각을 한 순간도 해본 적이 없었다. 당시 시급 6030원은 내가 손님으로부터 받는 짜증과 수십 잔의 커피 주문, 그 외의 지시와 몸의 피곤함을 모두 포함하는 돈이었을까. 일을 열심히 할수록 되레 일은 늘어났다. 나의 시급에 대해 고찰해보지 않은 채 무작정 '열심히 일하기'에 빠졌던 셈이다.


커피를 보면 빨리 달라고 짜증내던 손님이 떠오른다



그래서 요즘의 알바 광고는 과거의 나 같은 알바생에겐 각성제가 된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열심히 일하는 데 빠져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충고. 그렇다고 농땡이 부리는 게 미덕이란 말은 아니다. 내 몫만큼 일하기. 무작정 열심히 일하다 다치는 몸과 마음을 '시급'이 제대로 보상해주는지 따져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소미처럼 '그건 님 생각이고'라고 호방하게 말할 수 있는 알바가 늘어나길 바라며,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수많은 알바생을 떠올려본다. 우리 모두 '적당히'를 미덕으로 하는 쿨한 노동현실은 아직 먼 얘기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과 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