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초보 엄마, 아이와 둘이 유럽을 건너다

아홉 살 아이와 17박 19일, 무너지지 않는 여행 기준

by 여운

프롤로그



여권에 도장 하나 없던 엄마에게도 출발은 왔다


아이 여권을 펼쳤을 때, 지금보다 지나치게 어린 사진보다 먼저 보인 건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빈 페이지였다. 도장 하나 없는 여권. “언젠가는 가겠지”라는 말로 만들어두고, 그대로 시간이 지나버린 여권이었다. 그 빈 페이지 앞에서 문득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아이와 어디까지 가본 엄마였을까.


아이와 여행을 간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늘 “언젠가”로 미뤄졌다. 아이가 좀 더 크면, 내가 영어를 더 잘하게 되면, 덜 불안해질 것 같을 때. 이유는 많았지만 핵심은 하나였다. 확신이 없었다. 해외에서 아이가 아프면? 길을 헷갈리면? 기차를 놓치면? 소매치기를 당하면? 그 순간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이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직은 아니야. 준비가 안 됐어. 사실은 불안하다는 말이었다.


아이 만 9세가 되던 해, 생각이 동시에 올라왔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아이를 너무 안전한 범위 안에만 두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 여행은 아이를 위한 결정이기보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에 더 가까웠다.


출발은 오래 준비한 계획이 아니었다. 복직을 앞두고, 2주 전에 갑작스럽게 결정했다. 정보도 확신도 충분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걱정이 먼저 쌓였다. 그래서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그럼에도 떠났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지금이 아니면 결국 안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발 이후, 질문이 바뀌었다. 잘 다녀오는 방법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이 여행에서 필요했던 건 더 많은 정보도, 더 촘촘한 계획도 아니었다. 흔들리는 순간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준이었다.


이 책에는 아이와 둘이 유럽에서 실제로 흔들렸던 순간들과, 그때마다 바로 써먹었던 문장과 기준, 체크리스트를 그대로 담았다. 이론이나 조언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했던 것들이다.

무엇을 볼지보다 먼저 하루의 흐름을 세우는 순서, 이동과 변수가 생겼을 때 중심을 되찾는 판단의 구조, 상황을 키우지 않기 위해 미리 정해두었던 최소한의 기준들. 이 책은 여행을 잘하는 방법을 설명하지 않는다. 흔들려도 다시 세우는 방법을 기록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아마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나 같은 엄마도 가능할까.

이 책은 용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두려운 상태에서도 선택할 수 있도록 기준을 건넨다. 여행은 잘 해내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끝까지 가보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제부터, 그 기준이 만들어진 과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