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자리

엄마만 없는 방

by 여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집 안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나뉜다. 아이 방이 생기고, 남편이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는 작은 서재가 생기고, 가족이 함께 쓰는 거실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이 집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사람은 엄마인데, 정작 엄마만을 위한 공간은 없는 경우가 많다.

엄마는 집 안의 모든 공간을 사용한다. 주방에서 밥을 하고, 거실에서 아이 숙제를 봐주고, 세탁실에서 빨래를 돌리고, 아이 방에서 장난감을 정리한다. 그래서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온전히 머물지 못한다. 엄마에게 집은 ‘내 공간’이라기보다 ‘일하는 공간’에 가깝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게 크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가 너무 바빴고,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나만을 위한 공간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설령 그런 공간이 있어도 제대로 사용할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아이가 편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아이가 조금씩 자라면서 집 안의 시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스스로 시간을 보내는 순간들이 생긴다. 집 안에 잠깐의 조용한 시간도 생긴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 ‘엄마의 자리’가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거창한 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의자 하나면 충분하다. 햇볕이 들어오는 창가에 편한 의자를 놓고, 그 옆에 작은 테이블을 두는 정도.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잠깐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자리. 그 작은 공간이 생기면 집 안의 풍경이 조금 달라진다. 엄마에게도 ‘돌아갈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의 일을 돕고, 집안일을 하다가도 잠깐 앉아 숨을 고를 수 있는 곳. 집 안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허락받는 느낌이 든다. 엄마가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이 하나 생기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속도가 조금 느려진다.

지금은 의자 하나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공간도 조금씩 커질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면 엄마의 시간이 더 늘어나고, 언젠가는 방 하나를 통째로 쓰게 될지도 모른다. 책이 쌓이고, 식물이 놓이고, 오래 앉아도 편한 의자가 있는 방.

엄마의 공간은 사치가 아니다. 가족을 돌보는 사람이 편안해야 집의 분위기도 편안해진다. 엄마의 마음이 안정되면 집 안의 공기도 조금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요즘 집 안의 작은 의자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집에도 이제 엄마의 자리가 하나 생겼다고. 그리고 그 작은 자리가 언젠가는 더 넓어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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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해내는 방법보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방식을 고민해왔습니다. 삶의 부담을 줄이는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풀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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