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전 마지막 일탈

by 여운

복직이 정해지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일이었다. 보통은 회사에 제출할 서류를 챙기거나, 출근 후 일정을 정리하거나, 아이들 돌봄 계획부터 세울 것 같은데 나는 항공권 검색창부터 켰다. 이상하게도 복직 날짜가 찍히는 순간, 시간이 갑자기 유한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이렇게 길게 비워진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혼자 훌쩍 떠나고 싶었다.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그냥 나로 며칠쯤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혼자 가려니 마음이 복잡했다. 집에 남을 남편도 걱정됐고, 아이들도 눈에 밟혔다. 무엇보다 혼자 먼 나라까지 가는 결심을 끝까지 밀어붙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첫째 아이와 단둘이 떠나기로 했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엄마보다는, 옆에서 같이 걸어줄 아이 한 명이 있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둘째에게 자리를 많이 내주느라 첫째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이 어려서 자연스럽게 손이 더 많이 가고, 그 사이 첫째는 씩씩한 척 자기 몫을 덜 요구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게 고맙기도 하고 마음 아프기도 했다. 이번 여행은 어쩌면 유럽을 보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첫째를 오래 들여다보기 위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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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해내는 방법보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방식을 고민해왔습니다. 삶의 부담을 줄이는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풀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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