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 안 해도 쇼핑은 즐겁다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기대를 산다

by 여운

나도 여느 다른 사람들처럼 인터넷 쇼핑을 좋아한다. 어느 날 저녁,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광고를 따라 자연스럽게 쇼핑 앱을 열었다. 특별히 필요한 물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구경이나 할 생각이었다. 예쁜 티셔츠도 하나 보고, 어울리는 바지도 보고, 가방도 보면서 장바구니에 몇 가지를 담았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결제를 하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이미 좋아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쇼핑의 즐거움은 물건을 손에 넣는 순간보다 그 전과정에서 더 크게 느껴진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의 뇌는 아주 오래전부터 자원을 찾는 행동에 보상을 주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숲과 들판을 돌아다니며 열매를 찾던 시절, 먹을 것을 발견하면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출됐다. “좋은 자원을 발견했다”는 신호였다. 현대의 쇼핑몰은 그 옛날 숲과 비슷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는 순간 뇌는 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

재밌는 점은 보상이 실제로 이루어질 때보다, 보상을 기대할 때 도파민이 더 많이 분비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쇼핑의 즐거움은 물건을 받는 순간보다, 택배를 기다리며 상상하는 시간에 더 크게 느껴진다. 새 옷을 입고 나갈 날을 상상하고, 새 접시에 플레이팅을 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우리는 이미 만족을 얻는다. 실제 물건이 도착하면 생각보다 감흥이 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뇌는 이미 충분히 즐거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소비를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물건을 사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굳이 결제까지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쇼핑 앱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아두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다음 날 다시 보면 그 물건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기대감은 하루만 지나도 상당히 식어버린다.

나는 이 원리를 절약 습관으로 조금 활용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 바로 결제하지 않고 장바구니에 하루 정도 넣어두는 것이다. 처음에는 꽤 사고 싶었던 물건도 하루 지나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그 사이 “굳이 없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물건이 절반 이상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소비가 걸러진다.

또 하나 바꾼 것이 있다.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던 간편 결제를 모두 삭제했다. 예전에는 지문 한 번으로 결제가 끝났지만, 이제는 카드를 직접 가져와 카드번호와 유효기간을 입력해야 한다. 아주 사소한 변화지만 효과는 꽤 크다. 결제 과정이 번거로워지면 쇼핑의 매력이 갑자기 줄어든다. 인간의 뇌는 즐거움을 얻는 행동에는 민감하지만, 번거로움이 끼어들면 쉽게 흥미를 잃기 때문이다.

절약은 의지를 시험하는 일이 아니라 환경을 바꾸는 일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다. 쇼핑을 쉽게 만드는 환경에서는 소비가 늘어나고, 조금 번거롭게 만드는 환경에서는 소비가 줄어든다. 장바구니에 하루 넣어두기, 간편 결제 삭제하기 같은 작은 장치들이 가계 지출을 자연스럽게 줄여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쩌면 절약은 쇼핑을 완전히 끊는 일이 아니라, 쇼핑의 즐거움을 조금 다르게 사용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기대감만으로 충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절반쯤 절약에 성공한 셈이다. 그리고 다음 날 장바구니를 다시 열어보면, 어제 그렇게 갖고 싶었던 물건이 생각보다 조용히 식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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