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만 미완성 소설을 공개합니다.
한 백 만 년 전 쓰다만 소설들이 A4용지로 오조오천장 정도 됩니다. 가끔 공모전에 넣어도 봤지만 빛의 속도로 광탈 된 나의 애증의 소설들을 미완성이란 이름으로 브런치에 공개를 하고자 합니다.
소설이란 것을 그적거리지도 않았던 시간이 무려 10여년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 새끼들이 음침한 하드디스크 안에서 허벅지나 긁고 있는 것이 불쌍해서, 이곳에 머리채 잡고 끌고 나와 봅니다.
이곳에 올리는 미완성 된 소설들은 언제 완성 될지 모르는 오래된 나의 늦은 청춘과 같은 녀석들이니깐······. 너무 욕하진 말기!
2003년 쓰기 시작 후, 아직 미완성
생명과 환경 그리고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은, 진시황이 꿈꿔왔던 것의 일부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의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표하고 2003년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됨으로 인간은 생명에 관한 획기적인 진화의 문턱에 다다랄 수 있었다. 영원을 위한 열망. 혹자들은 뱀파이어를 꿈꾸는 철부지 소녀라는 표현을 사용하기까지 했지만, 여전히 낙관적인 사람들은 메치니코프가 주장했던 대로 인간은 생명연장의 꿈을 이루어 낼 거란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결론이란 말을 사용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보았고 느꼈다시피 과학발전에 있어 한계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무의미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다루는데 있어 신의 영역이라고만 불러 왔던 그것을, 우리들은 공학의 수준으로까지 끌어 내렸던 것만 해도 지구상에 태어난 수많은 생명들 중에 또는 지구에서 한 때를 풍미하고 사라진 그 어떤 생명체 보다 뛰어나다는 반론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렇다고 제가 인간 우월주의자는 아닙니다. 다만 격의 차이는 인정하자는 것이지요. 실제로 동물과 인간을 같은 차원에서 놓고 생각한다면 웃기지 않나요? 솔직히 연애상대로서 침팬지는 그리 달갑지 않을 것 같군요.”
마지막 말에 마주보고 앉아 있던 이십 여명의 젊은 남녀들은 미소를 지었다. 진중한 수업시간이긴 하지만 그것은 강의자가 원하던 바이기도 했다. 분명 그것이 농담이었기 때문에.
“자. 그럼 오늘 수업을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까지 창조와 진화에 대한 리포트 써 오는 것 잊지 마시고요. 혹시 여기서 말하는 창조가 신에 의한 창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겠죠? ‘공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요. 그럼 다음 주에 봐요.”
선은 강의를 마치고 출석원을 ID카드에 체크했다. 오늘은 7명의 학생들이 결강을 했다는 사실이 ID카드에 기록되어지고 자신의 출강과 수업 기록이 학교 메인컴퓨터를 통해 학과 시스템에 바로 전달됐다.
아이디카드와 태블릿을 가방에 챙기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아직도 교실을 나서지 않은 학생이 있음을 발견했다.
'저런 학생이 내 수업을 들었던가?'
선이 잠깐 갸웃거리며 생각하자, 그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이선 선생님. 잠시 저와 함께 가 주셔야겠습니다. 그리고 강의는 매우 흥미롭더군요. 가면서 그에 대해 조금 더 깊은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만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자신이 어떤 잘못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며칠, 몇 달 전의 불쾌했던 수많은 기억들을 소환하고 있었다. 그 중 지난 달 운전하다가 강아지를 치고 뺑소니를 친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 선은, 혹시 그 강아지가 어떤 재력가의 손녀가 애지중지하는 강아지 일지도 모른다고 비관했다.
“변호사를 구해야 하나······.”
혼잣말. 아니, 일종의 신음이었다. 분명 자신이 강아지를 치고 가긴 했지만 그 곳은 자동차 전용 도로였다. 설사 사람이라도 ‘나에겐 어떤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사고 현장으로 가면 DNA샘플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고심해 봤다. 그러나 이런 한 여름에 체세포의 DNA는 급격히 부패해 버려서 뼈라도 찾지 않는다면 DNA채취는 힘들 것 같았다. 따라서 복제는 힘들 듯 싶다는 생각까지 이르렀을 때 불안한 상념을 파고드는 목소리는 인공수정용 미세유리관의 뾰족한 바늘과 같이 날카로웠다.
“걱정거리라도 있습니까.”
강의실에 있던 남자였다. 선은 예의 없게도 못 볼 것을 봤다는 듯이 큼직한 동작으로 흠칫했다. 물론 의도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마치 자신의 생각을 들키기라도 한 듯 매우 부끄러웠다.
하지만 당당하리라.
“전, 같이 갈 이유가 없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특히나 왜 제가 그쪽을 따라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말씀도 없는 상태에서는 더 그렇고요.”
“독특한 대화 자세군요. 되도록이면 저를 보고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선은 다시 한 번 흠칫 했다. 은연중 그 사내의 시선을 피한 다는 것이 마주보고 서서는 고개를 90도 가까이 오른쪽으로 돌려 버린 꼴이 된 것이다. 아마 얼굴은 홍당무보다 더 빨개져 있을 것이다.
선은 간신히 고개를 돌려 그 사내를 바라봤다. 강의실에선 벗고 있던 선글라스와 검은 정장 상의를 걸치고 있었다. 옷은 세련 되 보였고 상표는··· 『아르마니』였다. 자신이 그동안 상상했던 것들이 점점 더 사실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은 점점 더 굳어져 왔다.
'재력가의 손녀딸······.'
“뭐라고 하셨습니까. 재력가의 손녀딸이요?”
또 무의식중에 신음 같은 말을 흘렸나 보다. 선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되도록 자신의 범죄(?)를 합리적으로 변호하려고 했다.
“저, 저기요. 그러니까 제가 일부러 그 강아지를 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그 곳은 자동차 전용 도로였단 말이에요. 저에겐 책임이 없어요. 귀한 영애令愛분의 상심이 클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저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요. 혹시 시신 -제기랄, 강아지에게 시신이라니- 찾는다면 제가 복제는 해 드릴 수 있는데······.”
선은 말을 마치고 비비꼬고 있던 손을 자유롭게 해주며 떨어트렸던 고개를 들어 사내를 바라봤다. 그 남자의 키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아래로 향했던 고개는 한참을 들어 올려서야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사내는 웃고 있었다.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시나 보군요. 예, 저번 달 14일 이선 선생님. 아니, 이 박사님께서 마르티스종의 강아지 한 마리를 동부간선도로에서 차로 들이 받은 것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아, 그렇게 인상 쓰지 마십시오. 저희 목적은 그것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이니까요. 의외로 유니크한 상상력이 깊다는 평가에서 조금 의아해 했는데 이젠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선은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사내의 마지막말에 브라우스를 덜컥 잡아버렸다. 어쨌거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평가 당하고 있었다는 대목에서 머릿속에 박혀 있던 미세 유리관이 산산이 폭발해 버린 듯 한 기분이었다. 그는 그런 선의 마음을 아는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겁니다. 다만 저희는 이 박사님께 어떤 자문을 구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참고로 저는 기관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기관? 사내의 말하는 뉘앙스에서 풍기는 미묘함이 그저 산업협동조합이나 생물학회, 증권회사 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상황과 사내의 옷차림 등을 종합해 보았을 때 가장 유력하게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밖에 없었다.
“아, 안기부에서 나오셨나요?”
사내의 얼굴이 금세 도돌아졌다. 선은 자신이 어떤 실수를 했음을 눈치 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어떤 실수인지는 눈치 채지 못했다.
“흠― 역시 국가안전기획부國家安全企劃部의 악명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서 그 명성을 이어가는군요. 박사님정도 되시는 분께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관 홍보차원에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뭐,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안기부는 역사속의 기관이지요. 1999년 1월 국가정보원國家情報院으로 명칭을 바꿨으니 말입니다.”
선은 솔직히 마음속으로 자신이 실수했음을 인정했다.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관습과 관용구가 가지는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특히 요즘 근현대사를 주제로 만든 영화에 꽂혀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내는 조용히 자신의 지갑을 펼쳐 보였다.
“제 신분증입니다― 처음부터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강의를 꽤 재미있게 듣다보니 결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되도록 시끄럽지 않게 모셔오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지금 박사님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계시는 일종의 납치 형태는 아니지만, 국가 안보상 박사님의 신분은 지금 저희 기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사내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안도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느끼던 선은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의 여주인공을 자신과 오버랩 시키는 상상을 하다가 그의 마지막 말에 또 한 번 흠칫하고 말았다.
잠시 잊고 있던 머릿속에 박힌 유리관의 파편들이 생물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학교의 정문 앞에 검은색 세단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자 앞자리 조수석에서 사내와 비슷한 복장을 한 다른 사내가 내려 차의 뒷문을 열어주었다.
턱― 하는 소리와 함께 차문이 닫히고 좌회전 깜빡이를 점등한 검은 세단은 미동도 느껴지지 않게 차선에 진입했다. 차의 방음과 최신 AI드라이빙 장치를 장착한 것으로 보아 수소연료로 달리는 최신형 세단인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어디로 가나요?”
물어보나 마나한 질문인지도 몰랐다.
“내곡동입니다.”
짐작했던 대로다. 서초구의 국정원이 있는 내곡동으로 가기 위해 차는 좌회전 신호를 받아 잠시 멈춰 섰다. 그때 사내가 입을 열었다.
“불편하시진 않을 겁니다. 보시다시피 운전은 국정원의 메인 컴퓨터『하와』가 하고 있고 이 차는 그녀석의 요구에 100% 반응 할 수 있는 녀석이죠.”
“아― 네.”
“그리고······.”
사내는 잠시 뜸을 들이다 선팅이 잘 된 차내에서 선글라스를 착용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한 듯 거칠 게 그것을 잡아내려 양복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선을 바라봤다. 그의 눈은 꽤 진지해져 있었다.
「혹시, 이 사람······. 나한테 반······.」
“대체 창조와 공생이 어떻게 연결 될 수 있는 거죠?”
“네?”
“아까 수업시간에 말입니다. 학생들에게 과제로 창조와 진화에 대한 리포트를 제시하셨잖습니까? 그러시면서 창조가 신에 의한 창조가 아닌 공생이라니··· 전 아직 이해가 안 갑니다. 죄송하지만 도착하기 전까지 여기서 보충 수업 좀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매우 궁금하군요.”
선은 이 이상한 정보원을 보면서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엔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이유인 즉슨.「아직 내 나이 45살 밖에 안됐는데 날 빤히 보다가 겨우 한다는 이야기가 창조와 공생의 관계? 이거 꽤 자존심 상하는 걸. 제길」이런 것이었다.
“자네의 행동이 옳았다고 보는가?”
전형적이란 말로 표현하면 가장 적합한 모습의 취조실에선, 이젠 거의 사라져 보기 어려울 것 같은 백열등이 천장에서 늘어져 내려와 있었다. 그리고 튼튼해는 보이지만 싸구려재질로 만든 넓은 테이블위엔 작은 노트북이 백열등과는 또 다른 창백한 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노트북 앞엔 기록관이 앉아 있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심문이 스피커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뫼는 이곳이 치안 유지대의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고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의 저 목소리도 변조된 목소리라고 확신했다. 어릴 적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장면, 그러나 이제는 사라졌다고 믿어 왔던 그 영화 속의 한 장면 속에 자신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당시, 아담의 판단을 듣고 싶습니다.”
- 나는 자네의 판단을 물었네. 물론 질문한건 나고. 자네는 대답을 해야지, 다시 질문을 하면 곤란하네.
은근한 협박이 묻어 있었지만 상대에 대해 최대한 예의바르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타닥, 타다닥. 그리고 엔터키를 치는 소리가 이전의 소리보다 조금 더 크게 탁- 하고 울렸다.
- 잘 모른다고 했나?
“네······.”
잠시의 침묵.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긴 한숨소리와 조금 맥이 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알았네. 자네의 신원은 당분간 우리가 맡을 걸세. 이곳에 있게.
그렇게 대화가 중단 될 것 같던, 중단되었어야 할 대화가 뫼의 갑작스런 외침으로 되살아났다.
“잠시만!”
- 질문은 받지 않는다.
뫼는 스피커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물론 큼직하게 펼쳐진 거울 반대쪽으로 심문관이 서 있을 것을 알면서도 스피커를 바라봤다. 마치 목소리가 보이기라도 한다는 듯이.
“체, 체리와 처크는 어떻게······.”
말을 다 잇지는 못했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다. 뫼가 묻고 싶은 것이 뭔지를. 그리고 그는 고민했다. 이 사실을 말해도 될 것인가에 대해서. 이럴 줄 알았으면 심리과 직원을 한명 대동하고 들어 올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 자네에게 알려 줄 계제는 아닌 것 같네.
단호하게 거절하고 스피커를 끊었다. 그러나 여전히 취조실을 바라봤다.
잠시 동안 타이핑을 하던 기록관이 노트북을 접었다. 그리고 그는 자연스럽게 취조실을 나갔다.
목소리의 중인공은 기록관이 나가자 창문 앞에 붙어 있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밖에서 두 명의 보안원이 들어왔다. 뫼를 데리고 나가기 위해서였다.
담배. 그러나 윗주머니엔 멀건이 볼펜만이 뽑혀져 나올 뿐이었다. 취조실엔 이제 아무도 없었다. 그저 물을 닫을 때 불어온 미풍에 백열등이 까닥까닥 고개를 흔들며 노란 빛을 던져내고 있을 뿐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참을, 볼펜을 가지고 불안한 듯 주춤거리더니 결국 그것을 입에 꼬나물었다. 그리고 약간의 평정심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그 평정심을 찾기 위함인지 모를 말을 내뱉으며 창문 옆에 붙어 있던 단락 스위치를 아래로 내렸다.
취조실의 백열등이 마치 탁, 하는 소리를 내듯이 꺼졌다.
“정말, 저 녀석이 열쇠인가······.”
곧이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조용히 관찰실을 빠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