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만 미완성 소설을 공개합니다.
한 백 만 년 전 쓰다만 소설들이 A4용지로 오조오천장 정도 됩니다. 가끔 공모전에 넣어도 봤지만 빛의 속도로 광탈 된 나의 애증의 소설들을 미완성이란 이름으로 브런치에 공개를 하고자 합니다.
소설이란 것을 그적거리지도 않았던 시간이 무려 10여년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 새끼들이 음침한 하드디스크 안에서 허벅지나 긁고 있는 것이 불쌍해서, 이곳에 머리채 잡고 끌고 나와 봅니다.
이곳에 올리는 미완성 된 소설들은 언제 완성 될지 모르는 오래된 나의 늦은 청춘과 같은 녀석들이니깐······. 너무 욕하진 말기!
2003년 쓰기 시작 후, 아직 미완성
바람을 이 분다면 그 바람과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산에서부터 불어 온 바람은 나무의 이야기를 전함과 동시에 상쾌했고, 바다에서부터 불어 온 바람은 오래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되돌린 종족의 노랫소리와 함께 비릿한 그리움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바람과 대화 하고 있는 한 사내의 머릿속에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전해주고 있던 바람은 급히 몸을 돌려 산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곳에 바람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무수한 바람의 꼬리들이 사내를 간질이고 있었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사내는 이런 상황이 조금 못마땅한지 자신의 얼굴 높이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기다란 판자가 들려 있었는데 좀 특이한 구석이 있다면 그 나무 판 가운에 수평하게 늘어진 줄이 매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 줄은 실인지 금속인지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고 나무판 위아래 끝 부분에 박혀진 작은 못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 길이가 모두 달랐다. 나무판은 상당히 매끈한 것이 오랫동안 수많은 손질을 했음을 알 수 있었고 옆면을 항아리 모양으로 깎아 넣으면서 새긴 작은 구멍들이 각각의 크기로 매우 조화롭게 나열되어 있었다.
사내는 눈을 감은 채 그 물건을 조심스럽게 바람에 걸었다.
키이이잉. 이건 아니군.
쿠우우웅. 이것도 아니야.
피히이이이. 하······.
좋은 녀석들도 가끔 심술을 부리곤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최소한 지금, 이 순간. 그에게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티리리링~”
정확히 원하던 바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단 세 개의 현絃이 내는 소리는 완벽히 조화롭게 노래했다. 사내는 그 소리에 매우 만족해했다. 그렇게 조화로울 수 있다는 것은 땅 위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지성체가 가지는 최고의 덕목이란 생각은 어제도, 그제도, 10만 년 전에도 다름없었다.
맑은 소리는 계속 되어 왔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갈대밭은 어느새 물결치는 황금의 대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뻗어가는 바람의 꼬리는 작은 속삭임을 남기고 있었다.
스스스스.
바람이 내는 노래와 신음 같은 속삭임에도 사내를 방해 할 수는 없었다. 마치 태고적의 고요가 이러하다는 듯이 드넓은 갈대숲에 서서 두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방금 그가 입을 열기 전까지 말이다.
「그동안 격조 했네. 친구.」
그리고 조용히 감았던 눈을 떴다. 비록 햇살은 없었지만 그보다 더 따스한 대지의 황금물결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황금물결을 따라 사내를 중심으로 가히 그 수를 짐작 할 수도 없는 인간들의 띠가 죽 늘어서 있었다.
끝도 없이 늘어서 있을 것만 같은 그들의 머리는 대부분 산발이었으나 간혹 땋거나 말아 올리거나 의도적으로 삭발한 형태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알몸이었고 많지는 않지만 가죽을 기워 입거나 모직물을 이용해 만든 천으로 어떤 식式에 따라 걸친 모습을 볼 수 있었다.그 광경은 일장 장관이었다.
황금의 갈대밭 넘어에는 푸른 해원海原이 있었다. 푸른 바다는 황금의 대지와 비교되어 보이는 것을 부정하듯 검은 무엇인가를 꾸역꾸역 땅 위로 올려놓고 있었다. 검고 윤기 있으며 선한 눈을 가진 생물들. 오래전 이 땅에 먼저 난 또 하나의 주인이었으며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바다로 돌아간 배신자이자 인간들의 콤플렉스. 바로 고래족들 이었다.
사내는 친구에게 황혼에 묻히는 향수nostelgia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게 오랜 친구와의 그리움을 그렇게 풀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전을 갓 지났을 뿐이다. 이미 올라온 그들에게 황혼을 선물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그러나 사내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에겐 그 사실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티리리링~”
원하던 녀석은 아직도 순순하게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들판을 뛰놀고 있었다. 더 없이 선선하고 좋은날.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 새들이 노늬는 소리, 바람이 갈대와 살을 비벼 내는 색정어린 소리까지. 모두 인간의 오랜 친구를 환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이었던가. 그 검고 윤택하며 순진한 눈망울을 가진 슬픔의 종족들이 거세게 돌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검은 파도와 닮은 모습이었다. 신의와 우정을 바탕으로 하는 담론이 오갈 것 같았던 그 갈대밭은 순식간에 불안과 긴장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말이란 도구는 이제 영영 쓸모없어 진 듯했다.
바닷가와의 거리가 꽤 넓어 보이던 앞 들판은 고래족들의 광폭한 전진에 절반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티리리링~”
사내는 그 모습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친구에게 보낼 선물을 건넬 차례였다.
「이 사람, 급하긴. 자네가 그리워했을 것 같은 황혼을 준비했네. 부디 신의로 받아 주게」
그리고 현을 들고 있던 왼손을 내려놓으면서 동시에 오른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잠시 후. 사내의 손은 단호하게 내려왔고 순간 사내가 서 있던 곳을 중심으로 갈대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불길은 마른 갈대를 순식간에 스치듯 타고 나갔고, 불꽃은 하늘에 황혼의 선홍색 빛을 정교하게 수놓았다. 물론 거대한 불꽃을 태우고 달린 것은 바람이었다.
고래족들은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이미 돌아가긴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재빨리 불길을 통과하기로 마음먹은 듯 보였다.
오히려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 고래족들은 피부에 습기가 마르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는 와중에 쓰러 넘어져 불의 식사가 되어버린 고래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절반정도는 인간들이 서 있는 곳에 근접해 왔다.
「선물이 마음에 들었나보군.」
사내는 즐겁게 미소 지으며 방금 전 동작을 그대로 반복했다. 그러자 넓은 들판에 정렬해 있던 헤아릴 수 없는 인간들이 시위를 떠난 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고래족에게 박혀 버렸다.
칼을 들어 그 검고 윤기 있어야 할 그을음투성이의 피부를 갈랐다. 고래들은 그 거대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인간들 위로 쓰러졌다. 그러면 달라붙어 있던 대여섯 명의 인간들은 깔려 죽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위로 다른 인간들이 올라타 거대한 장도長刀를 휘둘렀다. 새빨간 살이 보이고 드문드문 하얀 뼈들도 들어났다.
사내는 지금 것 서왔던 그 자리에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현에선 아직도 맑은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 맑은 소리를 내는 현에는 일견 비장함도 묻어 있었다. 사내는 눈을 감고 그 소리를 즐겼다. 그리고 입을 열어 작게 중얼거렸다.
「친구, 내 선물이 어땠는가. 마음에 들었는가. 황혼을 선물하기 위해 노력한 내 공을 좀 치하해주게. 꽤 힘들었다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하지 않나? 이 현 말이야. 비장한 맛도 있지만 내 귀엔 즐거움이 더 많이 묻어나거든. 자네들의 힘줄로 만들어 졌다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할 걸세.」
그렇게 대혼란속의 일인의 고요는 계속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