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로미어
생명의 시계 - 02

쓰다 만 미완성 소설을 공개합니다.

by ADBADA




한 백 만 년 전 쓰다만 소설들이 A4용지로 오조오천장 정도 됩니다. 가끔 공모전에 넣어도 봤지만 빛의 속도로 광탈 된 나의 애증의 소설들을 미완성이란 이름으로 브런치에 공개를 하고자 합니다.

소설이란 것을 그적거리지도 않았던 시간이 무려 10여년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 새끼들이 음침한 하드디스크 안에서 허벅지나 긁고 있는 것이 불쌍해서, 이곳에 머리채 잡고 끌고 나와 봅니다.

이곳에 올리는 미완성 된 소설들은 언제 완성 될지 모르는 오래된 나의 늦은 청춘과 같은 녀석들이니깐······. 너무 욕하진 말기!



2003년 쓰기 시작 후, 아직 미완성







“스스스스.”


잠자리!?


“KMH-30이다!”


다행이었다. 든든한 지원력이 있다는 것은 심적 안정에 도움이 됐다. 체리는 즉시 잠자리와의 교신을 시도했다.


“첵, 잠자리! 여기는 진압조다.”


-체··· 그러··· 들··· 다.


“대체 뭐라는 거야!”


-부적··· 프로··· 격··· 령··· 다.


체리는 미칠 지경이었다. 뭔지 모를 방해전파에 이 주위가 휩싸여 있는 듯 했다. 그러자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등골의 끝, 꼬리뼈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오싹함이 머리끝까지, 그리고 팔과 목의 솜털에까지 전달되어졌다.


밤은 매우 깊었다. 나트륨등의 희미한 빛마저 어둠과 그리 다를 것이 없었다. 깊고 검은 홀. 그 안에서 밀려나오는 원초적인 공포. 체리가 딱 주저 앉고 싶어질 때, 거의 소리 없이 등장해 있던 KMH-30에서 고압축 에어 탄이 다량으로 발사됐다.


“퉁퉁퉁퉁퉁퉁.”


'고압축 에어탄'이란 일반 공기를 그러모아 특수한 화학약품으로 질량을 늘려준 후 엄청난 힘으로 압축 발사하는 개념의 화기였다. 아니, 사실 화기란 개념을 사용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긴 했지만 우선 총알이나 화약 같은 소모품을 보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에어탄의 위력을 몇 단계로 조절 할 수 있어서 '진압용', '살상용', '폭격용'으로 다양하게 사용 할 수 있었다. 지금 KMH-30에서 발사한 에어탄의 위력은 거의 폭격용에 가까웠다.


“퍼버벙!”


청력에 심각할 정도의 소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충격이 다 가시기도 전에 엄청난 후 폭풍이 날아왔다. 다행인 것은 전투슈트의 자체 방어기제 덕분에 심각한 충격은 뒤로 흘러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고하고 두 대원의 몸을 바닥에서 30cm 정도 띄운 후 약 1.5m 뒤로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만약 슈트를 입지않고 이 자리에 있었다면 온 몸은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을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털썩.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지만 슈트덕분에 충격은 그리 심하지 않아 빠르게 일어 날 수 있었다. 두 대원은 KMH-30의 엄청난 위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보아 온 것은 기껏해야 진압용정도의 위력이었다.


“제길, 폭격 때문에 아직까지 눈에 보이는 게 없어!”


아직도 폭격에 의한 사방에 퍼진 짙은 먼지들은 흩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체리는 괜히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소리를 질렀고 처크는 그 말에 뭔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체리를 불렀다.


“왜?”


“에어 라이플을 쓰면 되지 않을까?”


“에어 라이··· 그래 그거야!”


체리는 처크의 헬멧을 손바닥으로 딱 하는 소리가 나도록 때리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그리고는 재빨리 에어라이플의 공격단계를 최저로 설정했다. 그리고 처크와 함께 타겟들이 있던 곳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12mm 에어라이플은 바람을 뿜는 소방호수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시위 진압 시 민간인들의 공격적인 접근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유일한 방어 시스템이었다. 이 단계 바로 위로는 아무리 낮은 단계라도 사람이 맞았을 경우 심한 타박상을 입을 정도의 공격 시스템이었다.


대충, 먼지들이 걷히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뚜렷한 시야는 확보 할 수 없었다.


“그 검은 구멍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그건 뭘까?”


“나도 몰라. 하지만 섬뜩했어. 마치 시골집에 놀러가서 달도 없는 밤에 혼자 재래식 화장실에 가는 기분이었어··· 아! 그렇지!”


처크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에어라이플을 작동하면서 체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고글의 적외선 탐지기로 보면 그 이상한 구멍이 사라졌는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랬다. 만약 아직도 그 구멍이 있다면 주위의 온도는 아직도 상당히 낮은 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체리는 고글을 켰다. 이곳의 온도는 한 여름 밤의 온도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곳은.


“서, 섭씨··· 3도!”


그때 KMH-30에서도 먼지들 때문에 기동이 불편했던지 90mm 압축 에어탄으로 강한 바람을 뿜어 먼지들의 확산을 촉진시켰다. 그러자 시야가 점점 확보되어져 갔다. 그리고 두 눈으로 아직도 그 검은 구멍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한 체리와 처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천천히 그곳으로 접근해 갔다. 불안함과 두려운 마음을 달래는 방법은 유지대 훈련과정에서 수없이 훈련했다. 찜찜한 점이 있다고 도망 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최소한 사람이 8명이나 저온현상을 보이는 검은 홀 주변에 있었다. 그들의 목숨을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그때, 앞장서 전진하던 처크가 제자리에 덜컥 서버리고 말았다. 체리는 그 때문에 처크의 등에 살짝 부딪혔다.


“왜, 왜 그래?”


“저, 저기······.”


“뭐?”


체리는 자신이 아직도 적외선 모드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글을 일반모드로 전환했다. 그리고 처크를 살폈다. 고글을 통해 보이는 처크의 두 눈엔 강한 불신이 가득했고 얼굴은 한밤중에도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새 하얬다. 체리는 그런 처크의 몸을 흔들며 그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대, 대체. 무슨 일이···?”


그러다 순간, 체리는 처크의 눈동자에서 뭔가를 본 듯 했다. 갈색 눈동자에 비치는 검은 뭔가를. 체리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검고 깊은 홀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헉!”

“저, 저거 손··· 맞지?”


손. 다섯 개의 손가락과 손바닥을 가지고 손목에 붙어 있어 관절을 이용해 굽히거나 물건을 집을 수 있는 손이.


약간의 경사를 지니고 있는 검은 홀의 아랫부분에서 불쑥 튀어 나왔다. 검은 홀의 색과 매우 닮아 있는 검은 색을 지니고 손톱하나가 인간의 주먹만 하며 마디들이 거칠게 튀어 나온 손.


아주 어릴 적 동네 미치광이 무당 할머니의 그 삭 마른 손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 손은 정확히. 그리고 아주 거친 동작으로 홀의 아랫부분을 잡고 서서히 그 본체를 들어 올리려 하고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또 다른 손이 검은 홀에서 튀어 나왔다. 그러나 그 손은 이전의 손이라 불리는 것보단 팔이라 불러야 정확한 표현이 될 듯싶었다. 그 팔은 휘적휘적 검은 홀을 빠져 나와 그 홀 뒤편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검은 홀로 돌아온 그 손엔 인간이 들려 있었다. 노란 머리카락에 반쯤 풀렸지만 감기지 않은 눈이 보였고 팔엔 다이아몬드처럼 보이는 문신이 보였다. 아마도 약에 취해 있던 타겟들 중 한명인 듯싶었다.

점점 홀 안으로 들어가는 팔에 타겟은 속수무책으로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떤 저항을 하기엔 이미 그 몸은 꽁꽁 얼어붙어 있으리라. 그리고 타겟의 몸을 한손에 움켜쥐고 있던 검은 팔은 어느새 홀에 다가와 있었다.


“푸카칵!”


그리고 들려온 소리였다. 타겟의 단단해 보이던 신체는 그 검은 홀에 끌려 들어가는 순간 마치 쇠를 가는 소리를 내며 산산이 찢어졌다. 피가 튀지도 않았다. 그저 그 사내의 살점이었다고 생각되어진 부분들이 몇 점씩 하늘로 튀어 올랐지만 결국엔 다시 검은 홀로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다.


체리와 처크는 순간 핏빛 안개를 본 듯싶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안개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사람이 죽는 장면을 그렇게 많이 보진 못했지만 일반인들보다는 많았다.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인만큼 총에 맞아 죽는 사람, 자유를 향해 열심히 도망치다 트럭에 치여 죽는 사람까지, 꽤 많은 인생의 꽤 지저분한 종말을 보아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에도 면역이 있다고 태연히 말하는 화장터 장의사들의 담담하게 뒤틀린 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의 내성은 지니고 있다고 믿었던 두 사람은 방금 목격한 그 장면이 구역질을 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은 별이 보일 정도로 맑았다. 비록 구 서울의 밝은 야경 때문에 보통은 별을 볼 수는 없지만, 환경 보호 정택 덕택에 조금 빛이 덜한 곳에선 -날씨가 좋다는 전제하에- 별들이 듬성듬성 보이기도 했다.


체리는 하늘을 한번 바라보며 두개의 반짝이는 별에 처크와 자신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처크는 체리의 행동에 신경 쓰지 못한 채 헬멧의 전면부를 개방하고 본격적으로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 검은 홀에서는 세 번째 남자의 육신이 검은 팔에 잡혀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그때 체리가 뛰쳐나갔다. 이성이 있는 사람의 행동이라고 하기엔 상황파악을 너무 쉽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고 그렇다고 뭔가에 홀린 듯 한 모습도 아니었다.


정확히 목표지점을 10m남겨두고 앉아 쏴 자세를 취한 체리의 움직임은 마치 교본을 보는 듯 했다. 날쌔고 정확한 그 동작은 목표물을 향한 에어라이플의 총구에서 발사 된 압축 에어탄이 정확히 검은 홀로 빠져 들어가게 해주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냈다.


“투둥 투두둥, 투투투투투투둥!”


에어라이플의 최고 공격모드. 공기를 압축해서 발사한다는 단순한 개념의 탄환이 어떻게 12cm의 철근 콘크리트 벽을 뚫을 수 있냐고 회의적인 물음을 던져 본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건 그냥 담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LG정밀의 한 관계자는 군사 잡지인『KDR』의 인터뷰에서 그 ‘비밀은 특수한 화학약품에 의한 질소의 증량 증가’에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여튼, 개인화기가 그런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변국에서 우려를 표명하던 말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체리에게 매우 든든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퍼벙, 퍼버버벙. 큰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강렬한 진동과 바람이 앉아 쏴 자세를 하고 있던 체리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바람을 볼 수 있을까?


세상에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는 상당히 불필요한 질문이겠지만 체리는 지금 그 바람을 보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느낌? 느낌이라고?


“휘익.”


그 순간 체리는 자신의 몸을 옥죄며 감싸 안는 무언가를 느껴야했다. 그리고 땅과 맞대고 있어야 할 무릎과 발바닥이 허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점점 하늘로 들려지고 있다고 깨닫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시야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체리는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다. 그나마 홀 속에서 튀어나온 검은 손에 잡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행이란 말은 아니었다. 온 몸은 알 수 없는 바람 -이때 체리는 바람이라는 표현 외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진짜 바람이었다- 에 결박되어 있었고 점점 그 죄어옴의 강도가 거세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를 끝까지 참담하게 만드는 것은 그 바람의 끝자락이 검은 홀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고 그것이 점점 당겨지고 있다는 데에 있었다.


“풍풍풍풍!”


별로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상황에선 희극적이기까지 한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체리는 약한 충격을 느껴야 했다. 에어라이플의 최저 공격모드로 발사된 압축탄이었다. 온 몸에 바람으로 둘려 쌓인 그에게는 그저 그런 진동정도가 간신히 느껴질 뿐이었다. 체리는 보이진 않았지만 그 에어라이플을 발사한 사람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소심한 성격에 혀를 몇 번 차고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처-크! 최고 모드로 놓고 갈겨버려!”


“하, 하지만!”


대답이 돌아오길 바라서 말을 잠시 멈췄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바람이 죄어옴이 더 강해지자 숨을 고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는데 처크의 망설임이 들려오자 체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이마에 주름살을 잡았다.


“야! 난 지금 전투슈-트를 입고 있단 말이야! 걱정 말고 갈- 크······.”


말을 다 있지 못한 체리는 극심한 고통에 기절해 버렸는지 고개가 축 늘어져 버렸다. 처크는 어쩔 수 없이 에어라이플을 최고모드로 전환하고 사정없이 갈겨 버렸다. 압축공기가 총구를 지나 체리가 들려 있는 거리까지 날아가는 동안 들려온 소음들이 공사장 부근에 심하게 울려 퍼졌다. 더불어 처크의 처절한 외침소리까지.


수 십 발의 압축탄을 발사한 처크는 충혈 된 눈으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압축탄의 최대의 장점이라 한다면 높은 압축으로 형성된 공기가 목표물과 접촉하는 순간, 강한 바람 되어 흩어진다는 점이었다. 단만 이번에는 이 장점이 단점이 되어 주위의 먼지들과 가벼운 물체들이 그 바람에 휩쓸려 시야를 가렸다.


그러나 처크의 그런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려짐을 느껴야 했다. 고통은 잠시 후에 뒤따라 왔고 두려움은 선물이었다. 더 이상 무언가에 기대한다는 것은 바랄 수 없을 상황. 5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과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 머릿속에 떠올 났을 때에는 아까 전 하다만 토악질이 다시 올라오려는 듯 했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바람의 죄어 옴이 더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단발마의 비명조차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 점점 시야가 흐려졌다. 체리도 이 과정을 겪었을 것을 생각하니 조금 위안이 되긴 했다.


흐려지는 시야로 자신이 점점 그 검은 홀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마침 먼지들이 가라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손은 아직도 그래도 검은 손으로 있었고 검은 팔은 검은 홀 뒤로 돌려진 상태였다. 그러나 체리는 보이지 않았다. 처크는 눈물이라는 것이 자신의 눈을 타고 흐른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뜨거운 무엇이었다. 단순히 눈물이라고 표현하기엔 자신의 삶에 있어 매우 낯설고 생소한 것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검은 홀 속으로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