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사진 : 한 장의 사진으로 들려주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 / 030
비에 젖은 추억
한 겨울.
눈이 아닌 비가 내리는 날들이 있다.
그럴 때면 도로 옆으로 쌓인 시커먼 눈덩이들 때문에
지저분해 보이는 겨울의 풍경을 잠시 재정리하는 시간이 된다.
눈 때가 묻은 창문도 비에 씻겨 나고 나면
희뿌옇던 세상도 조금 밝아지는 기분이다.
6년 전,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
산을 오를 생각도 없고,
그저 겨울 바다가 보고 오고 싶었다.
그런 2월 어느 날의 강원도는 여전히 추웠다.
늦은 저녁이라 어느 펜션에서 하루를 묵고
신 새벽에 출발한 차안은 우리들의 하얀 입김으로 가득 찼다.
바다로 향하는 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기대했지만
질척질척한 싸라기눈은 운전을 방해할 정도였다.
급할 것 하나 없는 우리는
잠시 차를 멈춰 카페를 찾았다.
마침 야외 테라스가 예쁜 카페를 발견했다.
딱 봐도 따듯해 보이는 난로가 있었고
눈을 피할 수 있는 천장이 있었다.
차와 커피를 시켜 놓고
한참을 말없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내리던 눈은 어느새 비로 바뀌어 있었다.
땅에 쌓인 지저분한 눈들이 조금씩 녹고 있었고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들도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자.
거기에 가을이 남긴 추억이 있었다.
하얀 무채색의 강원도에
여전히 남아 있는 빠알간 가을의 추억이.
말이다.
그리고 그 가을의 추억은 겨울에 내린 비에 젖어버렸다.
사진을 찍고 우리는 다시 바다로 향했다.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을까?
바다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도가 철썩였고,
바람이 달랐고,
짠 바다 냄새가 그리움의 조각처럼 나타났다.
한참을 그렇게 추적거리는 빗속에서
바다를 듣고 맡으며 말없이 서 있었다.
또 시간이 흐르고 지나면
우리의 추억도 이렇게 비에 젖어
낯선 사진 한 장처럼 바래 질 지라도
언제든 떠올릴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에게도
비에 젖은 추억들이
하나 둘 꺼내 보며 살게 되는
그런 날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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